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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활동이 활발한 작가들 조명

작가 양아치가 최근 3 년여 동안 집중했던 작업은 <미들 코리아>다 .

다소 의미심장해 보이는 ‘미들 코리아’라는 말은남한(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 사이의 국가를 의미한다. 그 국가는 분단된 영토의 통일이나 화합의 초석을 다지는 ‘중간 나라’가 아니다. 기존의 국가, 정부, 경제 등의 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국가를 파괴하고 만드는 새로운 국가다.

‘미들 코리아’에는 김씨 가족이 살고 있다. 김일수와 그의 두 아들 김이수와 김두수, 딸 김영이 주요 구성원이다. 이 가족은 미들 코리아 내에 ‘김씨 공장’을 세워 50 년째 바이크(오토바이)를 생산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김씨 가족은 좀 특별한 바이크를 만든다. 할리 데이비슨을 훨씬 넘어설 만큼 정교한 수공 작업이 요구되는 최상급의 바이크를 소량씩 생산한다. 이 바이크에는 인공위성을 탑재할 수도 있고, 미사일을 장착할 수도 있다.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 I>에서는 김씨 공장에서 생산한 ‘가미가제 바이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미들 코리아에 국적을 ‘등록(신청)’한 가미가제 라이더들이 각자 파괴하고픈 시스템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린다는 줄거리다.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 II>에서는 가미가제 바이크 대신 ‘루머 건(rumor gun)’이라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저격수 차지량’ 등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마지막으로 바로 얼마 전에 선보인 <미들 코리아: 에피소드 III>에서는 거대한 ‘황금 바다’를 통해 김씨 가족과 더불어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싶어했던 이들의 이상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3 부작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이 모든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작가는 실컷 농담만 늘어 놓은 것이다!

특히 완결 버전과 다름없는 최근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가짜 금박지를 사용해 만든 황금 바다, 황금 바위, 황금 버섯, 황금 폭포 등은 싸구려 재질의 표면에 비친 빛처럼 눈부시지만 지극히 황망한 감정을 선사한다. 기존의 시스템에 대해 정체와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파괴라는 극단적 선택을 통해서라도 갈구했던 신세계, 즉 ‘미들 코리아’의 모습은 결국 ‘가짜 황금’처럼 가볍고 조악한 몸이자, 동시에 <미들 코리아> 말고도 또 다른 작업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엉성하게 쌓아 올린 기념비처럼 직립조차 불안해 보이는 몸을 가졌다. 이러한 외형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헛헛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실 양아치는 작가 활동을 웹을 기반한 미디어아트 작업으로 시작했다.

당시 그는 웹을 사용하면서도 미디어 환경을 찬양하기 보다는 그 속에 숨겨진 통제, 허위, 왜곡, 집단성 등을 공격하는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양아치조합(Yangachi Guild)>, , <하이퍼마켓> 등을 제작하며 점점 그는 웹의 가상성과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점점 논픽션과 픽션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미들 코리아>에서 무한한 연속성을 가진 스토리텔링이라는 방식으로 작업의 전개를 이어가는 개념 뿌리이자 해석을 위한 단서를 제공했고, 여기서 파생된 시각적 결과물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꽤 그럴 싸 해 보이는 ‘허구의 풍경’을 조성했다. 그 풍경은 센티멘탈하면서도 강렬하고, 어눌하면서도 팬시하다. 가상의 영토 위에서 벌어지는 민족적 경제적 정치적 갈등, 그리고 개인과 집단 사이의 어긋난 욕망을 상징화시킨 듯한 오브제들은 하나하나 보면 낯익지만, 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매우 생경하다. 이는 각각의 오브제의 내부에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아이러니하게 대구를 이루며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저 위 조명>에서는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는 위를 쳐다보고 있다.

양아치의 작업이 흥미를 끄는 지점은 이러한 가시적 형태들이 작가의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근저에 <미들 코리아> 외에 보여준 <감시드라마> 시리즈나 일련의 프로젝트 형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업이 그의 태도를 완성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태도가 작업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과거 웹에서 기대했던 ‘가상성의 잠재적 힘’의 믿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작가는 하루 24 시간 내내 무엇인가를 수용하고, 또 다시 전달하면서 거기에서 발생하는 루머와 반응을 살핀다. 양아치는 스스로를 대상화 구체화 실제화시키는 것을 반복 운동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에서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에게 관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있을 법 하지만 진짜가 아닌 이야기, 다시 말하자면 없는 이야기를 그럴 싸하게 지어내기 위해 작가는 더욱 열심히 현실을 관찰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매우 현실지향적이지만 단, 거기에 대한 발언이나 개입은 일체 없다. ‘양아치’라는 가명에서부터 묻어 나는 하위문화적 정서와 작품에서 드러나는 비겁해 보일 만치 치고 빠지는 듯한 태도는 그의 정체성을 회색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로 위치시킨다. 작가는 흑과 백, 좌와 우의 경계를 긋거나 혹은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결국 양아치는 세상에서 가장 온전한 ‘가운데’에 자리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끊임없이 교란시키려고 하며, 이때 그가 즐겨 하는 방식은 다름아닌 ‘새로운 농담’이다. - 호경윤 (아트인컬처 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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