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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밥

송호은의 드로잉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는 나에게 어떤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8년 전쯤의 일일 것이다. 학부 교양수업의 첫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각자의 전공과 관심사를 돌아가며 말하게 하였다. 그 때의 나는 왠지 뾰루퉁하여 '특정 매체 편향의 전공 구분은 찬성할 수 없으므로 전공은 그냥 미술이고, 관심은 그저 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있다'라는 식의 두리뭉친 회피성의 대답을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넌 밥은 먹고 사니?'라고 되물었는데, 한동안 나는 그 질문의 저의에 사로잡혀 마땅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두고 두고 답답해하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도 자연스레 세상만사에 이리저리 치이는 동안 그 날의 되물음은 적당한 선에서 자체 수습되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당돌한 학생을 한풀 내려놓으려는 장난기 섞인 고단수의 선문답 내지, 위험한 고민에 뒤덮여있는 학생을 바라보는 우려와 안타까움의 표현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누구나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 역시, 밥보다는 술을 가족보다는 우주를 걱정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일수록 더욱 더 희망에 목말라하고 강한 신념에 시달리곤 하였다. 그러한 시기에 쫒았던 희망, 그리고 신념은 스스로 탈각되어지고 우고(愚考)의 진통에서 벗어나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이는 바로 그러한 신념과 희망을 갈구하는 자로 하여금 밥맛과 살맛을 점점 잃어가게 한다는데 그 난처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여기 송호은은 방황이 무르익을 대로 익어 기승을 부릴 이십대의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라며 태연하게 미리 선수를 치고 있으니 그 영민함의 전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요이상의 진지함과 무거운요소를 배제하면서 드로잉이라는 가벼운 형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정확한 메커니즘을 요구하는 사회와 그 사회 속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나, 그 사이의 간극을 나타낸다. 성인(Adult)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한눈을 팔고 싶은 마음,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사회인의 상상력 너머에 있는 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생각들의 대리적인 표출인 셈이다. _ <드로잉 단상> 송호은

자신의 설 자리를 드로잉에서 찾아내고 있는 송호은은 스스로가 설명하는 가볍고 간단한 조형언어의 곳곳에 자신만의 탭을 달아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송호은의 드로잉들에는 즉흥적이거나 심사숙고이거나의 과정을 거친 그가 엄선한 미완의 문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저도 이젠 지쳤어요, 그만 할래요', '나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의 경우처럼 앞뒤 맥락을 모르고서는 정확한 상황파악이 안 되는, 그래서 더욱 미묘한 여운과 암시를 던져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지 '작가 특유의 치고 빠지는 작전'이라거나 더불어 '관객의 상상력을 위해 남겨진 자리이다'라고 서둘러 결말을 짓기에 아직 그의 전술에 관한 수사가 끝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신념의 밥을 되새김질하다
신념의 희망항체 1번으로서의 송호은은 이제껏 자신이 어떠한 신념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검토부터 거쳐야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희망과 어떻게 결부되어있는지 또한 살펴보아야 했다. 늘
상 자신의 드로잉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의 놀이들, 게임 매뉴얼 모으기, 따조 100개 모으기, 장난감 종이상자 모으기, 우표 모으기 등등의 수집욕을 지속시키기 위한 뛰어난 정리습관, 그리고 청년으로의 성장 이후에도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항상 위시 리스트로 정리시켜놓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 등을 떠올리며 그러한 행위들이 자신의 더 나은 삶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희망의 증언물임을 거부하며 자신의 가슴을 죄어오기 시작하는 각종 수집된 보물들, 성취된 것들보다 누락된 것들로 더 많이 채워져가는 초라한 위시 리스트를 보게 되면서, 자신의 정리벽이 단지 더 많을 것을 얻고 더 높이 쌓아가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그가 득도하여 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보물 1호와 2호를 처분하던 날의 홀가분한 경험이 말해주 듯, 자신의 정리가 '비움'의 행위와 직결되어 있음을 간파한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비움' 또한 어떤 것을 버리고 청산하는 지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공간을 준비하는 과정, 불모의 땅을 개척하기 위해 정든 터를 떠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송호은은 여기에 다시 '이동'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이고 있는데 여기서 또 한 번의 탈각의 과정이 뒤따른다.
새로움을 향한 대비정신이 낳은 그의 정리벽, 자신의 인생에 각별하게 들어앉은 '청소'의 개념은 다시 한 번 반성의 과정을 거치면서, 낡고 고달픈 것을 모조리 쓸어내고 새로움으로 치장된 희망에의 탐닉이 아니라 그리고 꼭 이루어내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무장하는 것을 멈추고 '나의 청소는 다만 여기서 저기로 옮겨간 것뿐이다'라는 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다만 여기서 저기로 옮겨간 것뿐이라는 다분히 자조 섞인 그의 말이 나에게는 그가 다시 저기서 거기로 옮겨갈 것이고 또 거기서 여기로, 여기서 저기로 옮겨갈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어쩌면 무책임하고 무의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어조는 하지만 정처 없는 방랑과 부랑자의 고단함과 덧없음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유의미한 삶의 진행이 분명히 있으며 자신이 걷고 있는 뚜렷한 길과 그 걸음 자체를 들여다보는 시도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청을 듣기위해 두 눈을 가리기전에 '행위 자체' 즉, 끊임없는 반복된 행위의 무모함을 극복하고 오히려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힘으로써 기능하는 일, 또한 바로 그곳에 그의 신념이 희망의 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는 의지로의 제 역할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다시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로 돌아가자. 이 드로잉은 송호은의 청소가 자기모순과 나르시스의 문을 통과한 후에 제작되었다. 아니 거의 동시에 발화되었다. 작가로서의 점프능력은 이런 데서 통쾌히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영민한 전술 뒤에 숨어있는 지난한 경로들을 짐작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드로잉들에 마치 비수를 품고 웅크리고 있는 듯한 흔적들은 그의 다른 그림에서 '미술은 내공이 문제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힘겨운 내공쌓기의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엑기스들일 것이다.
엑기스의 질, 내공의 깊이가 문제가 되는가. 지금 송호은은 'save the earth!'를 외치는 한 젊은이로서 젊은 내공을 펼쳐내고 단련시키는 열정으로 분주하다.

송호은은 허망자와의 대화 도중 '드디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줄 알겠다'라는 말을 은연히 비친 적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고민하고 길고 긴 인생의 항로에서 어디쯤에 있다라는 예감을 갖는 일, 이것은 비단 작가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이 아닐 것이다.
나는 송호은이 되새김질하여 삼키는 신념의 밥이 좀 더 밝은 희망에 근접하도록 해준다라는 낙담을 애써 하고 싶지 않다. 건강한 신념은 보다 자신을 계속해서 반추하고 게워냄을 버틸 수 있는 힘, 그 멈추지 않는 토악질을 더욱더 부드럽게 연마하는 기름으로 쓰일 때 그것만으로도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_ 류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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