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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을 반추하는 자연의 베일


박형근의 사진에는 다양한 세부들이 살아있는 농밀한 자연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은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관조적인 자연 경관이라기보다는 사진으로 그려낸 내면 풍경에 가깝다. 장소들은 작가의 시선에 의해 겹쳐 보이는 비전과 정조로 물들어 있으며, 이로 인해 자연은 풍경을 넘어 또 다른 차원으로 변모한다. 건물 같은 인공적인 장면이 등장할 때에도 오랜 시간의 켜를 둘러 쓴 중층적 표면과 흔적을 간직한다. 보이지 않는 장막에 둘러싸인 은폐된 장소들은 작가가 첨가한 약간의 장치에 의해 극적으로 변모한다. 그 효과는 강렬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작품은 오랜 기다림과 대화의 결과이며 순간적인 영감과 인상에 의해 포획된 산물로,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호소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 제목들인 ‘A Voyage’, ‘Tenseless’, ‘Untitled’는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작품의 경향을 가늠케 한다.
박형근의 작품 속에 자연은 매우 신비하고 이국적으로 보이지만, 그 장소들은 오지나 원초적인 자연이 아니라, 길섶이나 공원 같이 인공과 자연이 혼합된 지역들이다. 유학생활을 했던 영국에서는 ‘동양적’이라는 평가를, 한국에서는 ‘서양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고향이 제주도인 그는 개인전에서 하와이를 닮은 제주도를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실자체가 혼성적이다. 뭉뚱그려진 현실을 포착하려는 감각의 총괄적인 노력에서, 추상적 언어와 개념적 갈래 잡이들은 결국 말소되고야 만다. 마찬가지로 사진이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하는 투명한 매체라고 보지 않는다. 중성적일 수도 있는 장소에 주관성을 개입시키는 장치는 소품의 첨가와 자연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에 가해지는 약간의 수정이다. 그는 완전한 주관성의 산물인 픽션도 거부한다. 그의 작품에서 사실과 환상은 뒤섞인다. 장소의 사실성과 소품과 세트, 색감 연출이 가미된 환상성은 박형근의 사진을 혼성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를 통해 장소는 작가가 말하듯이, 보여 지는 세계라기보다 보고 싶은 세계로 변화한다. 그가 풍경에 첨가하는 소품들은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한 장소를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가령 작품 [Tenseless-51, A silhouette](2007)에서 명암이 극적으로 엇갈리는 숲 속에 드리워진 가느다란 커튼 줄은 갈망하는 시선에 의해 살짝 장막을 걷어낸 자연의 모습을 예시한다. 작품 [Untitled-4, Hidden](2003)에서 숲속에 드리워진 꽃무늬 커튼은 어두운 숲 바닥에 흩어져 있는 꽃들을 반향 한다. 자연은 닫혀 지며 서로를 반향 하는 상징적 우주로 변모한다. 동물이나 인간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관객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작품 [Tenseless-59, Black Bird](2008)에서 각각 그림자를 떨구고 있는 세 마리 새는 실존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작품 [Untitled-6, A paper horse](2004)에서 낙엽 쌓인 숲 속 연못에서 핏줄기를 뿜어내는 말의 실루엣은 비장미를 풍긴다.
박형근의 작품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적 장치는 색채이다. 2007년 작 [Tenseless] 시리즈에서 풀밭으로 나서는 입구에 떨어진 하얀 물감이나, 흔해 빠진 길 위의 녹색 잡초를 선명하게 만드는 붉은 웅덩이, 금간 담벼락 밑자락에 노랗고 붉은 색조를 첨가한 작품 등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광경에 사건을 만들어낸다. 작품 [Untitled-1, Red hole](2004)에서는 숲 바닥을 붉은 구멍을 통해 자연에 강한 육감성을 부여한다.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풍경은 관객의 시선 앞으로 바짝 당겨진다. 자연은 부피감을 잃고, 작품 표면에 걸쳐진다. [Untitled-14, In the shallow surface](2004)가 전형적인데, 이 작품은 나무가 거꾸로 반영하는 수면과 그 위에 흩뿌려진 작은 별들로 인해, 면전에서 장면들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듯한 효과를 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모호한 공간에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상징인 소실점이 사라져 있으며, 거추장스러운 재현적 장치를 삭제하고 장면이 펼쳐진 공간과의 직접적인 조우만을 남겨둔다.
그는 원근법적 공간의 서열적 층위를 중층적 표면들로 압착시킴으로서 사진의 표면과 풍경을 일치시킨다. 이 얇은 공간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표면은 심연이 된다. 작품 [Tenseless-5, Swamp](2004)에서 녹색 늪 위에 떠 있는 둥근 공은 침몰과 부유 사이에 놓인 존재의 상황을 드러내며, 녹색조로 물들어 있는 작품 [Tenseless-60, The cosmic floor](2007)는 머나 먼 우주의 성운성단 같은 모습이다. 우주적 풍경은 머나먼 은하계 뿐 아니라, 일상적 현실에도 내재해 있다. [A voyage] 시리즈에서 금박 종이로 만든 달은 인과적인 시간과 공간의 질서를 해체하는 초현실적 풍경을 만드는 중요한 소품이다. 작품 [Tenseless-61, The third moon](2007)에서 평범한 바위들을 낯선 혹성의 표면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어두운 창공에 떠있는 여러 개의 달들이다. 그의 작품에서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는 인적이 끊겨 방치된 공간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작품 [Tenseless-19, The electric wires](2005)에서 오랫동안 버려진 건물의 벽 위, 또는 천장에서 쏟아져 내리는 붉은 전선줄은 마치 무기물의 혈관계, 또는 내장 같은 느낌을 주며, 작품 [Untitled-7, The resurrection](2004)에서 대지의 구멍들에서 솟아 나온 플라스틱 호수들은 불탄 대지를 부활시키는 자연의 흐름에 선명한 가시성을 부여한다. 폐허의 메마른 느낌은 숲과 늪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축축한 느낌과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축축함은 대상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감성이나 기질에 의해 적셔진 것이기도 하다. 자연 뿐 아니라 문명 자체가 이성에 의해 사막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러한 축축함은 예술을 비롯한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풍요를 제공해 준다. 이 풍요의 원천은 은폐되고 보호받는 자연인 비밀의 정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정원 자체가 자연과 인공의 결합이다. 이 비밀의 정원은 문명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회귀하여 원기를 충전 받을 수 있는 장소들이다.
풍경이 그 자체로 보호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전반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박형근은 공원이나 정원이 잘 보존된 영국에서 많은 소재를 얻었다. 영국의 공원이나 정원들은 애초부터 회화를 모델로 삼았다. 보호되어야 할 것은 이탈리아어로 ‘피토레스코pittoresco’, 즉 그림과 같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박형근의 작품 속 자연 역시 ‘픽쳐레스크picturesque’를 통해 재가공 된다. 그의 작품은 조각적인 볼륨이나 건축적인 원근감 보다는 풍부한 색채와 디테일이 살아있는 회화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명암이 엇갈리는 숲,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면이나 늪, 흩뿌려진 꽃잎, 종이로 만들어진 성곽, 우화적 인물, 무덤과 폐허의 이미지가 명멸하는 그의 작품은 낭만주의가 내재해 있다. 그러나 단순히 낭만적 자연회귀로 매몰되지는 않는다. 그의 작품은 경이와 신비를 추구하는 낭만적 자연성에 인공성을 가미함으로서 심미주의aestheticism로 기울곤 한다. 심미주의는 예술을 자연이나 인생 보다 우월한 반열에 놓는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리얼리즘이라 할만하다.
자연과 인간의 대화에서 주관적 색채가 강해진다는 것은 작가가 현대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진 자체가 강력한 현대의 매체이다. 박형근에게 포착된 자연은 관광이나 경제적 효용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시간대와 관련된다. 그것은 인간이 있기 전에도 존재했고, 그 이후에도 존재할 무한한 층과 겹을 가진 자연의 단편이며, 이 장기적인 시간대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즉시적 시간으로 포착해 낸다. 그의 작품에서 이 두 극단의 시간대가 만나면서, 그 중간 대에 존재하는 시간, 곧 현대를 지배하는 시간인 기호화, 추상화, 표준화, 사회화 된 시간을 따돌리고, 예술을 통해서만이 도달할 수 있는 독특한 시공간대에 안착하고자 한다. 이점에서 그의 사진은 포스트 모더니즘적이다. 2008년 개인전 부제 ‘imaginary journey’처럼, 여기에서의 여행은 역지대liminal zone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장소들은 ‘시간으로 가득 찬 장소이자, 시간 밖의 장소’(세네트)인 것이다.

이선영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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