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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관계맺기


먼 항해를 향해 이제 첫 발을 딛고자 하는 이명진의 관심은 주체과 타인 혹은 대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이명진을 둘러싼 광범위한 세상과의 관계로 비춰진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개인의 필연적으로 맺어져야 하는 세상과의 관계라는 것은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 어려운 관계맺기에 대한 주제를 이명진은 현상적인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가 복잡한 세상사와 관계를 맺는 현상을 마치 작은 단의의 조각들이 이어지는 모습으로 파악해 작업의 기본적인 구조로서 제시한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 조각 하나하나는, 이명진이 여러방식으로 대상세계와 만나는 ‘개별적 공간’일 수 있다. 작가는 매일 작은 조각을 만들어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작가가 만났고 쉬었던 개별적인 공간이 또 다른 개별적인 공간들과 계속 패치워크되어 만들어지는 현상은 마치 이질적 세계가 서로 맞물려 관계를 맺어가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이명진의 개별적 공간에서는 인물, 계단, 문의 이미지 등이 자주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 개별적 인물들은 익명성을 띤 것이기도, 사진을 이용한 것은 작가 가족들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다소의 자전적인 요소의 삽입은 바로 인간관계를 집약하는 것으로서 가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관계의 의미들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준다. 인물 외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계단과 문의 이미지는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매개체이자 표식 그 자체이다. 특히 계단을 오르락하는 인가의 이미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욕구와 열망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이 익명의 형상들과 계단의 이미지가 묘하게 만남으로써 미지의 세계와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 출발점에서 선 인간의 불안한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다른 세상과의 관계성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바로 문의 이미지이다. 문이라는 것은 다른 세상 대한 신비이다. 이명진이 특별히 문의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이유 또한 자신의 익숙한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그것을 통해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관람자에게 타인과 혹은 미지의 공간에 속해있는 다른 세상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을 유쾌한 부담으로 남기는 듯하다. 이명진 작업은 일정하지 않는 작은 단위들로 구성된 부조물처럼 보여 진다. 작가는 그것을 ‘퍼즐 조각’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의도적으로 계획된 완전한 퍼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퍼즐이라고 한다면, 형상이나 일정한 숫자들을 꿰맞추어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명진은 어떤 의도된 모형도를 계획하지 않고, 그 개별적 단위를 만드는 것에 우선해서 집중했다. 그리고 조각들이 어느 정도 모아지면 그것을 이어간다. 이것을 나는 유연한 관계성이라 부르고 싶다. 한 조각이 다른 조각들과 만나는 과정은 작가의 상당한 직관과 순간적인 판단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 때문에 이명진의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될 것 같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개별적 조각의 단위에 집중했을지라도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는 구조로 파악된다. 그 이유는 질감과 색채의 유사한 효과에서 비롯되었다. 기본 재료로서 모두 나무 패널이 사용된 점과 파스텔조의 비슷한 채도의 색감이 사용된 점이 그 것이다.
유연한 조작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명진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건축적인 구조물로 보여 진다. 2차원과 3차원의 이미지, 환영과 실제 이미지가 결합됨으로써 다양한 시각적 효과가 창출되고 있다. 이 건축적 효과는 다양한 방법으로 모색되었다.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원근법적 선을 그려 환영을 일구기도, 한 패널 위에 다양한 크기와 두께의 조각을 이어 미묘한 공간감을 드러내기도, 실제 계단의 모형도와 문을 만들어 입체적인 건축성을 구현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이 각양각색의 수공예적인 개별적 단위들이 모아짐으로써 전체적으로는 통일감 있는 구조물로 느끼게 한다. 이명진은 다양한 관계들이 만나면서 일어나는 충돌을 유쾌하게 들기고 있다. 그의 작업을 관계의 유연한 법칙을 알려주는 조화로운 조감도이다.

김지영 /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원




Relationship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그리는 것 보다 훨씬 더 삼차원적이다. 나는 그리는 것보다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못질, 톱질, 사포 질을 하면서 난 가구를 만들듯 정성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못질해서 문을 만들고 공간을 만드는 노동은 때로 무척 힘이 들지만 무언가 구체적인 형태가 만들어져 나가는 것을 보면 뿌듯한 성취감 마저 느껴진다. 내가 만든 삼차원의 공간 위에 난 또 무엇인가를 그린다. 흑판에 낙서를 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긁적이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내 앞에 나타난다.  
  작업은 내게 마치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내가 쉴 수 있는 공간,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나는 매일 만들어나간다. 아주 작은 문 속에 난 숨기고 싶은 기억들, 부끄러운 내 모습을 넣어둔다. 그 공간은 내게 치유이고 화해이며 지난 기억들에서 떠나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방이다. 마치 퍼즐 맞추기 처럼 혹은 블록 쌓기 처럼 진행되는 그 작업 전체의 결과물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하나 하나가 완성되어 언젠가는 그것 자체가 나를 지탱하는 커다란 공간이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곧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의 이유라는 것. 다만 그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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