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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적인 허상
 
 
브레인 팩토리에서의 지난 개인전에서 안경수는 장난감 군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들은 전쟁놀이의 소모품인 장난감 군인을 소재로 한 연작들 중 일부였다. 브레인 팩토리 전시 이후 최근까지 지속된는 장난감 군인들을 원래의 매뉴얼과 다르게 엉뚱하게 조립하고 배치한 후 그린 작업이었다. 여기에서 기이한 형태로 접합되거나 절단된 장난감 군인들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나 잔해로 남은 영웅상과도 같이 모뉴멘탈하면서도 동시에 황폐한, 기묘하게 이중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작품들에는 연극적인 내러티브가 모호하게 잠재된 듯한데, 움직임이나 시간적 흐름이 없이 완전히 정지된 상황처럼 보이기에 어쩐지 종말론적으로 느껴진다. 장난감 군인들은 이 상황 속의 주인공이면서도 사건을 움직이는 주체가 아니다. 전쟁 놀이의 대상으로 소모된 후 버려진 생명 없는 사물들의 무대이기에, 장면 안에 시간의 개입은 차단되고 행위의 인과관계는 배제된다. 사건이 모두 종결된 상황이기 때문에, 병정들의 잔해는 몰락한 문명의 마지막 유물을 바라보는 듯한 거리감과 허무함을 자아낸다. 전쟁의 대체물인 전쟁놀이의 소모품으로서, 이들의 존재는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은유가 된다.

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보여진 작업들은 인공산을 소재로 한 연작들이다. 장난감 군인 연작들과는 외견상 전혀 달라졌지만, 인공적 대용품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 인공산은 입장료를 내고 즐길 수 있는 ‘에버랜드’ 같은 가짜 파라다이스의 단골 장식물이다. 놀이공원 뿐 아니라 동물원, 갈비집 앞마당의 인공폭포나 전철역 안 인공동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기이한 풍경을 형성하는 인공 자연이 도처에 있다. 이 양식화된 자연물은 진짜 자연의 태생적 노화와 소멸과정을 삭제시킨 관념적 자연이다. 도시개발업자의 이상향인 이 관념적 자연은 냄새도 벌레도 없고 위협적이지도 않은 모습으로 자연에 대한 도시인들의 통속적 기호를 만족시키면서, 조악한 영구불멸함을 무기로 진짜 자연을 침식해간다. 안경수는 이러한 인공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면서도 어딘지 어색한 지점을 은밀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정교하게 재현된 표면효과로 인해서 언뜻 보면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진 자연 풍경처럼 보이지만, 상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배수구멍, 지지대와 같은 인공적 장치들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사실적으로 재현된 인공산의 볼륨감과 실재감을 허망한 것으로 전환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시도한 블랙라이트 박스 작업에서는 박스 안 모형 자연 위에 형광조명을 설치하여 인공 자연물의 키치적 속성을 부각시켰다. 대체물로서의 가짜 자연의 조악함에 대한 직접화법이다. 그러나 이 보다 좀더 흥미로운 것은 회화작업의 간접화법이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료와 기법의 변화인데, 대부분 드로잉을 한 후 그것을 먹지로 다시 옮겨 그리는 방식으로, 마치 탁본과도 같은 시각 효과를 내고 있다. 먹지 작업은 흑백이라는 점 때문에 얼핏 동양화의 먹선과도 유사하게 느껴지지만, 찬찬히 보면 선의 흔들림이나 번짐이 전혀 없어 먹선 보다는 복제된 판화에 가까운 효과이다. 이러한 효과는 분위기 보다는 형태를 더 부각시키고, 화면의 깊이 보다는 표면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흔들리는 선이나 번짐 혹은 얼룩 같은 요소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마련인 작가의 신체적 혹은 심리적 흔적들은 배제되고, 결과적으로 대단히 비개성적이고 중성적인 화면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화면 뒤에 숨어서 어떠한 직접적 의견도 은닉한 채, 인공산의 겉모습을 복사하듯이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정서적 개입이 차단되면서 풍경의 인공성은 더욱 부각된다. 이렇게 완성된 인공산들은 표면 질감의 정밀한 재현으로 인해 사실감이 강하면서도, 묘하게 주위 배경과의 균형이 어그러짐으로써 실체감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모뉴멘탈한 존재감을 지니면서도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구현되는가가 새롭게 시작한 연작의 발전에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역설을 통해서 도시 공간들을 점유하지만 정작 삶의 공간에 참여하지 못한 채 섬처럼 겉도는 인공 자연물들의 어색한 위치가 효과적으로 상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주 / 전시기획자, 미술사




-Artificial Nature-
 
풍경과 사물들이 만들어낸 사이에는 무수하게 발생된 모호한 풍경들이 있다. 그 안에서 발견된 인공자연물은 사람과 사물 또는 사람과 풍경과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인공자연 조형물들은 일상 공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물이다. 이것은 어떤 특정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레 나타나 지루한 풍경과 충돌한다. 때로는 형상이 매우 조악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낡고 부서진 외형에서 오는 혐오감 마저 느낄 수 있다. 그런 조악한 풍경 안에서 사람들은 무감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것은 사람들과 관계하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불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이 풍경들은 지루한 일상적 풍경 안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이상적 장소와 연관되는 풍경을 가리키며 또 다른 유토피아적 풍경으로 끌어들인다. 내가 말하는 지점은 이런 부조화하게 만들어진 모형자연을 통해서 어떤 이상적인 풍경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모순된 행위에 있다.자연의 모습으로부터 과장되고 교묘하게 위장된 도시 속 인공자연물은 사람들이 연상하게 되는 이상적 풍경으로 끌어들이고 관망하게 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안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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