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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용산 미8군 안의 레스토랑 타운하우스를 가기 위해서는 항상 후암동 언덕을 지나가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후암동 국방부청사 뒤에 있는 미군 부대 입구는 여러 개의 출입구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출입구가 어린 나에게는TV만화에서 차원이동을 하기 위해서 꼭 통과해야 하는 하나뿐인 입구처럼 느껴졌다. 문만 열면 한국이 아닌 외국이 바로 시작되는 것처럼 미군부대는 그 안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타운하우스의 기름진 음식과 미국 청소년이 가득한 오락실은 어쩌면 어린 내가 느낀 첫 번째 문화적 충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미군부대에 대한 기억은 설명하기 힘든 이국의 정취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수도권 주변의 군사시설에 대한 작업은 자연스레 미군부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데 경기북부에서 마주친 미군부대는 오래 전 기억 속의 미군부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미8군사령부가 위치한 용산의 잘 꾸며진 부대분위기와는 달리 실전 전투부대인 경기북부에 위치한 미군부대의 첫 인상은 한국군부대 못지않은 삭막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 미군이 떠나고 남겨진 미군부대는 모든 것이 말소된 장소로 그들의 예전 모습을 상상해 보거나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폐허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유휴지로 남은 미군부대는 다양한 감정과 욕망이 투사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

이번 작업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파주는 파주시 전체면적의96%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며 시 전체면적의22%인4,483만평(147,939천㎡)이 군용지로 사용 중이다. 이중 미군이 소유한 땅이14%인2,823만평이며 이 가운데2600만평이 민통선 지역으로 정부에 의해 공여돼 사실상 군사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지역이다. 2003년 이라크전 발발 이후 파주에 위치한10여개의 부대들은 점차적으로 축소되어2006년을 전후로 모두 철수하기 시작했는데 일부분은 이라크로 떠났다가 본국으로 소환됐으며 대부분은 평택으로 옮겨간 상태이다. 경기북부의 미군들이 경기남부로 옮긴 이유는 전쟁 시에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미군은 한국의 지역경제에 있어서도 중요한 존재인데 미군이 떠나간 후로 기지촌의 풍경은 빠른 속도로 변해간다. 내가 미군에 대한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은 미군이 떠난2008년이었는데 부대주변은 이미 미군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뒤바뀌어 있었다. 을씨년스럽게 낡은 부대 옆의 기지촌 주민들은 미군부대자리에 대학을 유치할거라는 기대와 함께 앞으로 닥쳐올 부동산광풍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미군에게2사단을 돌려받은 파주는 지역주민과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정부가 파주를 주는 대신 평택의350만평을 미군에게 내주기로 한 사실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의 부동산 및 지역경제가치는 미국의 한반도, 넓게는 동북아 국방정책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것은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이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된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주는 것에 불과하다. 파주에서 미군의 이주는 잠재적 경제가치의 상승을 주었고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었던 불편과 고통은 파주에서 평택 주민들에게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이주와 함께 따라오는 불편과 고통만큼 평택의 경제적 가치도 상승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인기와 함께 평택을 비롯한 경기도지역에 유행하기 시작한 연립주택단지 타운하우스는 새롭게 이주할 주한미군과 한국인을 위한 단지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종의  뉴 타운하우스가 조성되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일부 평택 주민들에게 인정 못할 사실이라면 평택시 입장에서는 대외적인 투자유치에 있어 환영할만한 소식인 것이다. 한국에서 빈 공간이란 모든 상상력이 욕망으로 투사되어 꽉 찬 공간으로 변모하고는 하는데 해방 이후 군사시설로 지정되어 토지가 강제 몰수되는 과정이나 뉴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현재의 재개발처럼 공간을 움직이는 욕망이란 어떤 존재도 피해갈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자본의 힘이라고 할 수도 있고 자본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뭉쳐진 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개발독재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미군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이번 사진작업은 사실상 미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군이 얼마 전까지 파주에 있었음을 증거하는 증명으로서의 사진이 되고 있을 뿐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 이번 작업은 파주에 주둔했던 미군의 군사적 지표를 뒤쫓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상은 텅 빈 공간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풀처럼 설명하기 힘들며 설명할 정보도 별로 없는 텅 빈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 텅 빈 공간에 담겨진 것이란 파주에서 한국의 평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군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고 부대 깊숙한 곳 어딘가에 인심 좋게 흘려놓은 기름유출의 흔적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진을 통해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듯 미래 또한 어느 정도 상상 할 수 있다면, 나의 사진을 통해 예측 가능한 미래란 평택의 미래이며 용산의 미래 그리고 통일된 미래일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사진들은 미군과 공존하는 과거와 미래 그 어느 중간 지점의 기록인 셈이다.

최원준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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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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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g2 흥이롭습니다 여기서 처음 보는 접하는 작가인데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2010.11.11 14: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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