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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이 자연이 아니라 일상사물의 세계를 참조하기 시작한 이래로 미술은 언제나 경계의 문제를 고민해왔다. 더군다나 산업사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미술의 도구이자 재료로 도입된 이래 이런 현상이 가속화 되자, 미술가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매체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 하고 미술의 종말을 푸념했다. 그러나 이런 푸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의 각 진영을 재편하려는 미술가들의 노력 덕택이었을 것이다.

박소영의 조각은 이런 재편의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전통적인 수공예의 원리와 산업사회의 원리를 한꺼번에 보여주면서 조각의 경계와 조각가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이율배반적인 원리에서 출발한 그의 양가적 작업은 미술가의 육체적 노동, 정신성 그리고 앞선 두 가지를 통해 생산된 물건이 미술의 조건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조금씩 비틀고 있다. 회화보다 조각에서 미술가들이 유난히 자기 정체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작업은 이런 고민을 유머러스하게 풀어가고 있다. <18년>(2000-2001)이라는 제목의 여인누드조각은 그의 유머러스한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2000-2001년으로부터 18년을 거슬러 올라간 대학교 재학 중에 만든 여성누드조각상에 모조 이파리를 붙인 이 작품은 제목의 발음에서 실소를 유발시킨다. 그는 조각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듯이 조각의 대명사인 여성누드조각상을 희화화함으로써 조각과 조각가의 상투성에 멋지게 일갈을 날린다. 이즈음부터 사용된 모조 꽃과 이파리는 조각의 도구와 재료가 풍기는 강인한 인상을 비틀었다.
그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기성품에 모조 이파리를 촘촘하게 붙여서 본래의 용도를 추측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 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면에 이파리를 붙이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배의 노처럼 보이는 것은 알고 보면 대형 선풍기의 날개이고, 밑이 뚫린 원통은 부서진 화분이고, 꽃병처럼 생긴 것은 거실용 분수의 일부분이고, 생물형태적 조각은 한때 중산층 가정에서 장식품으로 인기를 누렸던 고목이고, 기하학적 형태로써 세상의 본질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원형이나 직립형 구조물은 각각 안테나의 일부분과 직립형 옷걸이의 받침대이고, 가장자리의 울퉁불퉁한 문양이 돋보이는 구조물은 의자 등받이이다. 하나같이 더 이상 유용하게 사용되지 않는 버려진 일상용품들에 초록 이파리까지 덧입혀지니 간단하게 삼차원의 덩어리로 재탄생했다.

재탄생한 덩어리들은 산업사회의 공산품이라는 사물의 영역과 모조 이파리를 붙이는 작가의 수공예적 행위 사이에서 조각의 조건을 충족하기도 하고 충족하지 않기도 한다. 박소영은 여기서 미술의 조건인 반복된 행위와 이 행위의 조건 속에서 조각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는 덩어리를 문제 삼는다. 조각에서는 간혹 작가의 반복된 힘든 노동이 작품보다 더 앞에 내세워지는 경우가 있으며, 그 육체적인 노고를 조각의 무게와 부피가 증명하는 일도 종종 있다. 하지만 박소영은 그러한 상투적 조각의 급소를 쥐고 흔들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의 반복된 행위는 고단한 노동이긴 하지만 그는 힘을 앞세우지 않는다. 그 힘은 가볍고 작은 재료와 단순반복하는 행위 뒤에 은폐되어 있다. 그 힘은 전시장 벽에 직각으로 붙어 있는 한 쌍의 의자 팔걸이에도 은폐되어 있다. 그는 지게 멜빵처럼 벽에 붙어 있는 팔걸이에 팔을 끼우고 무거운 조각미술관을 짊어질 모양이다. 그는 조각미술관을 등에 메고 조각과 사물의 경계에서 조각의 배반과 긍정을 반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미술가란 그런 이율배반의 구조 속을 영원히 돌아다니는 처연한 존재인 것이다.

배수희 /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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