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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nuts_돌아버리겠네" 이 적나라한 제목은 포장에 익숙한 우리에게 차라리 솔직함에서 오는 쾌감을 전해 준다. 한손을 머리에 지그시 기댄 여인이 빙글 돌고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마치 일차원적 형식처럼 보인다. 분명 기술방식은 시각 예술적 수사를 시원하게 생략하였다. 그러나 작품의 구조에서 발생된 통쾌한 솔직함으로 박소영의 작품을 모두 다 보았다고 하면 그 또한 오산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말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대체적 윤곽뿐 그 세밀한 부분은 의식으로만 다다를 수 있다. 덩어리. 박소영이 명명한 일련의 작업이다.

 

박소영의 관찰 대상은 실존의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형과 무형의 시공時空 속 미묘한 찰나를 포착해 내듯 그의 행위는 절묘한 타이밍에서 대상을 잡아 형상화 시킨다. 그가 산출한 것은 즉물卽物의 묘사가 아닌 무에서 도출되어 작가의 손에 의해 적절한 때에 멈춘 유일 뿐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유이면서 무이며, 미적 직감에 따른 창조는 외형을 부여하는 동시에 본질을 부여한다. 따라서 덩어리는 유형有形으로 존재하나 그 배아胚芽는 무형無形이 된다.

 

예술적 직감과 유무형의 구조조차 선택적으로 다루고 있는 박소영의 시각이 관찰을 너머 응시라는 또 다른 국면과 만나면 새로운 포즈pose를 탄생시킨다. 무형의 것을 탐구하는 것이 아닌 유형의 인체를 박소영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아스라한 굴곡이 적나라한 데생dessin보다 더한 현실적 인물로 탄생된다. 내러티브narrative 구조가 강해진 이 덩어리는 보는 이에 따라 돌아버릴 심정의 인물이나 성모상, 혹은 기존 작업의 덩어리 등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게다가 360° 회전을 통해 거죽의 다양한 미적 질감과 음영의 미묘함을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가미된 연극적 요소는 멈춘 공간에 움직이는 시간을 보태어 보다 실존적 의미를 부과해 낸다. 그래서 'Going nuts_돌아버리겠네'는 적나라한 동시에 은유적이며, 노골적이지만 빤하지 않게 된다. 덧붙여 창작의 고통과 번뇌, 혹은 개인적 괴로움은 작품의 큰 외형과 섬세하고 고운 외피로 표현되어 무거운 심경과 예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장치되었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박소영 작업사作業史의 숨겨졌던 레이어layer를 목격하게 되는데 '하얀 수석'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덩어리'와 '반복하다'의 교집합적 위치 정도로 해석되는 이 작업들은 가치 재발견과 창조적 행위를 동시에 보여준다. 채택된 수석받침은 작가의 유기체적 선택과 버려진 가치에 대한 상징물로 활용되며 그 위에 추상적 미감으로 얹어진 덩어리의 기감機感과 유사한 형상은 일시적으로 수석의 모습을 갖으며, 동시에 박소영 식 표현의 변별을 유지해 낸다.

 

직감적 현물 속 선입견을 분리시켜 내는 작업과 최소한의 정보를 유지시키는 긴장의 행위는 공간과의 유기적有機的 구성을 통해 더욱 두드러진다. ‘그것’이라 불릴 덩어리들이 서사적 공간으로 들어가며 새로운 스토리로 상응相應된다. 낱개의 덩어리들이 오브제를 통해 ‘하얀수석’으로 다른 면모를 갖추는가 싶더니 보안여관이라는 공간과 만나 수줍은 여인(수석시리즈10), 뒤엉킨 사람의 모습(수석시리즈9), 남성의 성기(수석시리즈2) 등 다양한 해석을 도출시킨다. 또한 원래 방 안의 풍경 같은 수석의 위치-창틀에 놓은 작품(수석시리즈13)이나 창밖의 풍경(수석시리즈12)을 옮긴 듯한 작품-는 작품만의 가치가 아닌 작품이 놓여야만 완성되는 공간이라는 설정과 공간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을 불편함 없는 구성력으로 설정해 놓는다. 이렇게 사용된 여관방이라는 공간은 작품의 그릇 역할을 하며 ‘하얀수석’의 현상학적 해석을 무한대로 펼쳐 놓는 기능을 부여하게 된다. 이로써 일반적인 전시공간과의 차별화 및 공간과 작품의 유기적 전시 서를 열어 놓는데, 사유적 작품과 유기적 공간의 이 절묘한 접합점은 전시의 스펙트럼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좋은 예가 된다.

 

공간과의 유기성은 껍질 작업에서도 보여 진다. 골조만 남은 낡은 공간에 박소영의 껍질은 그 낡은 골조를 작품의 틀처럼, 액자처럼 사용해 낸다. 이는 공간을 읽은 작가의 눈이며 바로 그 힘으로 가능한 결과다. 그렇게 날개를 달은 껍질은 더 이상 껍질이 아닌 실제 날개처럼 공간을 비상飛上한다. 그 결과 겉과 속이라는 경계를 부숨은 두말할 나위 없고 작가가 껍질작업에 임하는 유연한 자세는 오롯이 서게 된다. 이로써 박소영의 껍질은 태생 같은 경계 허물기에 한 겹 더 힘을 싣게 되었다.

 

유명과 무형의 공존으로 덩어리(Going nuts_돌아버리겠네, 하얀수석)작품을 구조적으로 보았다면 껍질은 숙과 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에서는 예술작품을 함에 있어 먼저 생동감이 있고 나중에 익숙해져야하며, 이미 익숙해지고 난 뒤에는 다시 생동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익숙해져 완성된 작품의 구성과 밀도가 박소영의 숙이라면, 껍질만 남기고 비워져 새롭게 열리는 공간이 바로 생인 것. 익숙함에도 구분은 있다. 혹여 숙이 시간과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해질 수 있다고 본다면, 더 중요한 것은 창의성에 바탕을 둔 실험정신인데 박소영의 경우 숙 이후의 생에 과연 어떤 식의 내용을 채울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결국 채움이 아닌 비움으로, 숙 이후의 생이 아닌 숙과 생이 공존하는 변화로 작품의 새로운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유명과 무형, 채움과 비움, 숙과 생이라는 철학적 용어들이 박소영에게 조형언어로 녹아들면 구분이 아닌 공존의 시각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사용하는 주된 조형언어의 코드는 유형과 무형, 남겨진 것과 버려진 것을 통해 작품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작품이 한정된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에피소드episode를 탈피해 확장된 공간마저도 서사적敍事的으로 이끌어 낸다. 때문에 박소영의 껍질 작품은 말 그대로의 단순한 껍질인 의미가 아닌, 나아가 팽팽한 긴장의 구도까지 형성해 내는 것이다.

 

이렇듯 공간에 대한 사유와 필연까지도 놓치지 않고 작업과의 상관관계를 유기적으로 이끌어 낸다. 여관이라는 속성을 갖은 공간은 개인의 익명성을 전제조건으로 하지만 동시대인의 구성원들이 머물며 시간을 소요한다는 점도 가지고 있다. 박소영이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익명의 개인과 동시대인의 교집합이 되는 시대적 고민과 사유들 말이다. 이렇게 접근된 개인의 현상과 사유는 개별공간의 익명성으로 대변되는 오늘의 역사를 발견하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과 재발견으로 발전된다. 박소영에게 있어 예술의 진짜 의미일지 모를 덩어리들은 누군가에겐 새로운 모양의 수석이 될지도 모르며, 혹은 그 수석이 잊혀 질 익명인 자체를 대변할 지도 모른다. 개인과 익명의 시간, 남겨짐과 버려짐의 행태 등 수많은 이야기가 박소영의 작업에는 담겨 있다. 그리고 오늘 박소영의 ‘껍질’과 '하얀 수석', 그리고 'Going nuts_돌아버리겠네'는 보안 여관 각 방에 들어 앉아 새로운 서사로 귀결되며, 온전히 완성되는 극적劇的 결말을 맺는 당위성을 갖는다.

 

게다가 다행스러운 한 가지는 그가 보여주고 있는 예술작품은 다분히 아름다워 그것을 해석하기에 급급한 노력 따위는 이차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일단 박소영이 던져놓은 이야기를 바라보고 즐기다가 어느날 그 속에 유형과 무형, 채움과 비움, 숙과 생의 논리를 발견하게 되는 덤을 얻으면 그뿐이니까 말이다.


김최은영 / 미학, 자하미술관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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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tmdrl 아~실제로 한번 보고 싶은 전시이네요. 그래야 구석구석 숨겨진 작품의 뜻을 알수 있지 않을까 생각 됩니다. 2010.10.27 15: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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