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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어디로 날아가느냐/아무 곳도 아닌 곳으로/
누구로부터 떠나왔느냐/모든 것들로부터/
- 베르톨트 브레히트 Bertolt Brecht -


스무 살 즈음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이내 사건으로 기억되어 오래도록 계속 되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나와 당신 곁에 있었고, 지금 하려는 얘기는 그 오래된 이야기이다. 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지만 머릿속에 떠도는 실체를 상상하며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여러 가지로 이름 붙여져 있고, 많은 이들이 분단과 냉전이라는 단어 속에서 이해할 것이다. 오래전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이 시작이었지만 여기서 언급하진 않기로 한다. 나는 2년 넘게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이런 나의 행동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얼마 되지 않은 과거에도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의 목적 없는 행동도 예전이었으면 누군가가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기에 충분한 이유이다. 아마 모든 예술적시도가 목적이 없진 않겠지만 나에게 이 작업의 시작은 목적이 없었다. 일종의 감상자가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이것을 관찰하며 기능과 목적이 어우러진 풍경이 주는 새롭고도 차가운 기분을 즐겼는지 모른다.

장기간 휴식중인 이런 시설들은 대부분 공격에 대한 것이 아닌 방위가 주목적이며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을 기다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 성인남자라면 익히 알고 있을 벙커와 비트 그리고 방호벽과 방어선등이 내가 관찰한 주요 대상들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위장과 구축, 배열 같은 단어들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들 군사시설은 자신을 위장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일종의 허구적 파사드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진짜 실체는 감추고자 하는데 이것은 군사시설의 전통적 위장방법 중 하나이다. 또한 형태를 결정짓는 기능성은 단단한 콘크리트를 이용함으로써 나타나는데, 방호벽이 도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를 폭파함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여태껏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하고 있는 방호벽들은 그 자리에서 긴장된 시간들을 버티며 그 시간들은 위장 혹은 은폐라는 개념 속에 이미 시간성을 상실한 채 하나의 공간으로 구축되어 버렸다. 그것은 자연 속 군사시설인 벙커와 비트(비밀 아지트)에도 적용되어 마치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어버린 것 같은 실용적 위장술의 한 방법을 보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오래된 시간성이 주는 느낌은 장소의 표상과는 상관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아름다움은 어떤 미대출신군인이 벙커안의 지도를 그릴 때의 감정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그도 이런 역설적 아름다움을 자신의 벽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런 역설적 아름다움은 경제발전의 욕망아래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변두리 경제발전의 대표작인 뉴타운사업이 시행되는 은평뉴타운 공사현장은 마치 유물발굴의 현장처럼 땅을 파고 산을 깎을수록 감춰져있던 군사시설물의 내부구조가 드러나는데, 현장에는 고고학자 대신 군인들과 공사장의 인부들이 발굴을 하고 있다. 뉴타운이라는 새로울 것 없는 욕망과 맞물려 하나 둘 없어지는 군사유물들은 대북정책에 대한 정치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구축된 시간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욕망의 재구축으로 향하는 과정이며 그 풍경은 방어선처럼 늘 정돈된 배열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른 영역의 위장이며 은폐지만 많은 이들에게 부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미 국가안보의 논리를 뛰어넘은 욕망 앞에 사라지는 군사시설들은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소멸되어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든 파괴될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이제 본래의 목적이 아닌 다른 힘 앞에 파괴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한 콘크리트에 내재된 시대적 이념과 정치적 변화를 비롯한 그 모든 것들은 견고해 보이는 콘크리트 틈 어딘가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렇게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곳 어딘가로 가는 중이며 나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어떤 초월적 힘의 영향인지 아니면 시각화 할 수 없는 시간의 느린 걸음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언제고 그 빈자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며 그 새로움은 다시금 빈자리가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최원준 / 작가

* UNDERCOOLED : 화학에서 빙점(섭씨 0도)아래로 내려가도 아직 얼음으로 변하지 않고 액체로 남아 있는
상태, 즉 과냉각 상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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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jsqls 무조건적인 재개발 형식!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얻은건 무엇인가.. 2010.09.29 17: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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