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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Grandmother Tower 등록일자 2013.03.20
전시기간 2013.03.15 ~ 2013.04.04 전시장소 스페이스 캔

강서경, Grandmother Tower, 2013, Installation view

강서경, Grandmother Tower, 2013, Installation view

강서경, Grandmother Tower, 2013, Installation view


강서경 개인전 < Grandmother Tower >



○ 전시정보
 
전시명 : Grandmother Tower
작가 : 강서경
전시기간 : 2013.03.15 ~ 04.04
전시장소 : 오래된 집, 스페이스 캔
www.can-foundation.org
관람시간 : 월-토, 10:00 ~ 18:00


○ 전시소개
 
Grandmother Tower: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수직적 조응(照應)

- 황정인(독립큐레이터) -
 
지반이 내려앉은 것 같은 오래된 가옥. 얼추 눈높이와 비슷한 곳에 자리한 지붕을 바라보니 혹시라도 불어오는 강풍에 낡은 기와가 날아가 버릴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누군가 서툰 매무새로 지붕을 감싼 모양이다. 지붕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무거운 방수천은 그것의 육중한 무게로 금방이라도 이 오래된 단층집을 눌러버릴 기세다. 성북동 주변의 재개발열풍과 더불어 이 초라하고 낡은 집은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호기심에 쇳소리 나는 녹슨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기자기 문지방너머로 자리한 작은 방들 안에, 색색의 구조물이 집의 구석구석을 아슬아슬하게 받치고 있다. 마치 이 낡고 초라한 공간에 대한 위로 혹은 응원인양, 각각의 조형물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집안의 벽, 천정을 향해 높이 뻗어 있다. 작가 강서경의 손길이 거쳐 간 흔적들이다.
 
발견된 오브제로서의 공간, ‘오래된 집’
지난 몇 년간 작가는 주변의 오브제를 수집하고 이것을 이용한 공간설치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오브제들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버려지고 미천하고 불구적 형태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는 이를 발견, 수집하여 실을 감거나, 채색하여 쌓아올리는 조합방식을 통해 기억 속에서 잊혀진 사물들에 조각적 지위를 부여한다. 발견된 오브제들은 공간과 상황에 의해 다시 재활용되어 전혀 다른 새로운 조합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서경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택한 첫 번째 오브제는 바로 성북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공간, 바로 ‘오래된 집’이다.
 
앞서 소개했듯이, 이 오래된 단층 가옥은 주변 지역의 주택에 비해 높이가 매우 낮다.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만난 예전의 집주인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20년 정도 전에 아스팔트로 도로를 새로 포장하면서 집의 외벽이 지면으로부터 20cm 가량 가려졌다고 한다. 그로 인해 집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밖에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황에 처했지만, 도시개발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며 헛웃음을 짓는다. 지반이 내려앉은 것이 아니라 개발로 인해 지면이 올라와 집이 폭 파묻힌 형상이 된 것이다. 사연도 사연이거니와 실제로 작가는 이 공간이 처한 물리적 상황들을 살펴보면서, 무엇인가 이 가옥에 힘이 될 만한 지지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세월의 흐름과 주변의 모진 풍파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오래된 가옥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이번 작품에 이르렀으리라 생각한다. 발견된 오브제에 조각적 지위를 부여하고, 사물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인 반응을 조형작업으로 풀어낸다고 할 때, 오래된 집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커다란 오브제로 다가온 점은 작가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강서경의 이번 작업은 개개의 오브제를 우연적으로 발견, 수집하여 그것의 미적 조합을 보여줬던 조각적 형태가 오브제로서 제시된 오래된 집을 만나 공간설치작업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적 조응, 오래된 집과 Grandmother Towers

오래된 집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은 <Grandmother Tower>시리즈로서 최근까지 작가가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설치작업이자 이번 전시의 대표작들이다. 작가에 따르면 ‘Grandmother Tower'는 비틀비틀 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오롯이 서있는 모습이 할머니를 연상시켜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위태로우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노파의 모습처럼, 오래된 집의 공간 곳곳에는 이러한 구조물들이 나름의 체계와 질서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개개의 탑 구조물들은 크게는 공간과의 조응, 작게는 탑을 이루고 있는 오브제들 간의 조응을 통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먼저, <Grandmother Tower>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는 탑형태의 구조물들은 작가가 주변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모아 만든 작업이다. 모든 작업의 재료는 새로 구입하지 않고, 모두 용도가 폐기되거나 쓰이지 않은 재료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철제 접시 건조대를 하나하나 실로 감싼 후 쌓아 올리되 벽에 기대어 간신히 의지해 있는 형태로 만들거나, 통나무를 좌대로 하여 용도가 불분명한 차가운 모터 위에 동글한 자연석이 놓여 있고, 그 위에 따뜻한 양털조각이 얹혀있다. 작품의 부분들을 이루는 사물들은 서로 간에 성질이나 질감이 충돌하면서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어떤 작품은 모터가 돌아가면서 이러한 재료간의 상충된 이질감을 엉뚱한 움직임으로 무마한다. 개별 요소들이 색과 형, 질감과 성질에 반응하는 조응구조를 만들고, 때론 모터로 인한 운동성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지점들에서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을 유도해내며 수직의 탑 구조물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탑형태의 조형물들은 내부적으로는 이질감 속에 조화로움을 유지하면서, 외부적으로는 하나의 커다란 오브제가 되고 있는 ‘오래된 집’의 내부 공간에 조응한다. 실제로 오래된 집은 두 채의 집이 하나의 벽체로 이어진 구조로 되어 있다. 이전의 집주인이 집의 내부 공간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구조적 변화인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집은 문지방과 미닫이 문틀을 통해 구획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주방과 안방, 마당과 거실이 서로 다른 높낮이로 이어져 있는 것도 이 공간이 지닌 물리적 특징이다. 이 역시 오랜 세월 동안 공간이 변형되면서 남긴 흔적들이다. 덕분에 이것은 다양한 형태의 실고(室高)를 낳았고, 축 처진 지붕위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함께 작가에게 수직적 조응이라는 감각적인 반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갖가지 오브제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탑형태의 작품들은 문지방에 의해 자연스레 구획된 공간 안에서 천정을 향해 뻗어 올라간 형상을 취한다. 이처럼 작가는 일차적으로는 개별 작품을 이루는 사물들 간의 관계에서의 내적인 조응, 이차적으로는 완성된 탑 구조물이 오래된 집의 물리적 특성과 외적으로 조응하는 구조를 통해 오래된 집이라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 안에서 조응의 이중구조를 만들어 나간다.
 
의인화된 오브제

각각의 작업은 오래된 집이라는 무대 위에 강서경의 손에 의해 흐트러진 매무새를 고쳐 입고 등장한 배우처럼 긴장과 이완, 불안정과 균형이 공존하는 조형적 자태를 뽐낸다. 이렇게 의인화된 오브제들은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채 공간과 반응하고, 공간 역시 발견된 오브제로서 탑형태의 구조물과 서로 반응한다. 그야말로 다양한 재료들을 조합하여 저마다의 특색을 발하는 구조물들이 오래된 집이라는 무대 위에서 만들어 내는 총제적이고 유쾌한 상황극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의인화기법은 강서경의 작품에서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는 이전의 수묵화작업에서 사람이 자동차나 변기, 램프 등의 사물로 변신하는 모습을 표현하거나, 발레리나 형상의 인형을 회화와 결합시켜 연극적인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단지 과거의 작업과 지금작업에 차이가 있다면, 작가 본인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던 그림 속 인물이 작가의 시선을 머금은 다양한 사물들로 대치되었다는 점과 감정이 이입된 일인칭 시점의 자전적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에서 벗어나 사물의 조합을 통해 개인을 아우를 수 있는 타인과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개별사물의 형상이나 특징들을 통해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거나, 버려진 사물을 수집하고 생기를 불어넣어 멈춰있던 사물에 움직임을 더해 모든 생명은 순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의 기저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물활론적 사고와 동양의 윤회사상에 대한 작가의 믿음이 맞물려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작가의 작품세계 이해하는 하나의 큰 축이기도 하다.
 
공간에 그리는 회화

강서경의 설치작업은 마치 오브제로 공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회화는 작업의 시작점이자 귀결점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회화적 표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오래된 집에서의 설치작업의 경우, 회색의 빛바랜 벽을 배경으로 삼고 미닫이 문틀을 프레임 삼아 문지방으로 나뉜 공간에 조형물을 위치시켰다는 점에서 회화적 화면구성을 연상시킨다. 장작더미로 만든 <Grandmother Tower>를 보면, 갈색의 나무 문틀 너머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장작더미가 집의 모습을 흉내라도 내듯 대각선 방향으로 불안하게 쌓여있고, 그러한 불안함을 잠재우려는 듯이 장작더미의 꼭대기에는 노란색의 알루미늄 와이어가 튜브에서 갓 짜낸 물감 드로잉의 형상으로 얹혀있다. 방마다 설치된 조형물들은 오래된 집의 이러한 액자식 공간구획에 의해 하나의 장면이 되고, 그렇게 모인 장면들은 수직적 형태의 구조물이 일률적으로 공간을 떠받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문틀과 같이 기존의 공간이 가지고 있던 물리적인 속성들이 일종의 회화적 프레임으로 작용하여 이에 대한 감각적인 반응을 일련의 시각적 형태로 선보인 것이 오래된 집의 설치작업이라고 한다면, 전시장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에서도 공간설치작업에서의 회화적 면모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형 캔버스 앞에 위치한 <Breathing on the rocking rock>에서 보이는 갖가지 사물들의 조합은 그것이 배치된 자리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으로 인해 캔버스 화면의 안팎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머물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가는 최근 역동적인 행위의 자취들로 화면을 가득 매운 회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거기서 볼 수 있는 붓터치의 형상이나 붓의 두께감이 오브제 설치 작업에서 유사한 형태로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회화적 표현에 대한 작가의 사유에서 비롯된 결과다. 덧붙여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조형어법을 페인톨레이션(Paintallation, 페인트와 인스톨레이션을 합성한 조어)이라고 지칭한다. 점, 선, 면이라는 가장 기본이 되는 순수한 조형언어들이 평면을 이루듯, 설치작업에 나타난 최소한의 조형언어들이 하나의 회화적 화면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바람이 반영된 개념이다. 이 같은 표현은 실제로 그의 설치작업 곳곳에서 회화적 터치가 입체적으로 구현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효해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강서경의 설치작업은 마치 물감층으로 중첩된 회화의 표면을 하나하나 뜯어내어 공간에 풀어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전의 회화작업에서 구름의 형상 너머에 알 수 없는 장면들을 여러 개의 겹을 이뤄 보여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각각의 장면들이 다시 하나씩 공간으로 해체되어 보여진다. 다시 말해 물감의 층위를 통해 회화적 표면간의 시공간적 간극을 표현했던 것이 물질적 형태의 설치작업으로 오면서 오브제 쌓기와 감기의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다.
 
쌓기와 감기, 위로의 제스처

작가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조형어법으로 자리한 쌓기와 감기의 방법론은 앞서의 회화적 표현법과 맥을 같이 한다. 선명한 하늘색이 인상적인 작품 <Heavy in blue>에서 실은 감김을 거듭하여 실타래가 되고, 결국 하늘색의 무거운 브론즈 덩어리로 변화한다. 작가에게 실이라는 재료는 붓으로 그린 회화의 획을 대신하는 것이며, 이것이 쌓여 하나의 면을 이루면 설치작업에서 보이는 천과 헝겊조각이 되고, 덩어리로 고착되면 쌓아올린 구조물을 이루는 단단한 사물이 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이전의 평면작업에서 여러 개의 충첩된 화면이 공간 설치작업에서는 쌓기, 감기 등의 반복적 행위의 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을 감고 사물을 쌓는 행위는 반복적이라는 측면에서 형식상으로는 동일한 맥락으로 보이며, 내용상으로는 대상을 향한 작가의 위안과 치유의 메타포를 담고 있는 행위로 해석된다. 차가운 철제 구조물에 다시 색을 입히고 실을 감는 행위의 이면에는 삶을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하려는 작가 특유의 위로의 미학이 존재한다. 버려진 사물의 지위를 복원하고 그것의 기억을 찾아주는 일이 일종의 위로적 행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브제가 거쳐 왔을 시간의 궤적만큼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사물을 실로 감싸는 행위를 통해 작업을 완성한다. 또한 좌대의 형식을 취해 사물을 쌓아올리는 행위를 통해 버려진 대상들을 조각적 형태로 변화시킨다. 이것은 발견된 오브제들의 낯선 형태가 작품의 재료로서 손에 익숙해지는 시간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이 때 작가에 의해 선택된 사물들은 반복적으로 체화된 행위를 통해서만 작가에게 익숙하고 하나의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쌓기와 감기로 소비되는 시간은 작가에게 있어 일종의 묵상과 사유의 시간이 된다. 같은 방식으로 기존의 공간은 오브제로 그린 쌓기와 감기, 조합과 배치라는 행위의 자취가 가득한 공간이자, 작가의 사유가 농축된 회화적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오래된 집은 불안한 요소들이 곳곳에 산재한 공간에 대해 그것이 견뎌온 물리적 환경의 변화와 시간의 무게를 마지막까지 지탱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염원하는 작가적 사유가 짙게 묻어나는 작업이다.

 
충돌과 긴장의 중재

 
서로 다른 경로에서 수집된 다양한 오브제들로 미적인 조합을 만들어 내는 전 과정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오브제를 수집하고 배열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충돌과 긴장을 중재하는 작가의 역할은 작품내용의 핵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을 보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형태 속에서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서로 뒤엉켜서 충돌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느다란 철 구조물 위에 무거운 쇳덩어리가 올려져있거나, 녹슨 철제 의자위에 잘려진 신문들이 쌓여있다. 그야말로 사물들이 아슬아슬하게 쏟아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다. 이렇게 전혀 예기치 못했던 사물들과의 만남이 불러일으키는 조합이나 충돌을 천이나, 실과 같은 형태로 융화시키고, 미세한 조형적 요소들을 가감하면서 긴장을 완화시키는 일은 작가의 주된 행위이자, 작업의 주제로 나타난다. 통나무를 쌓아올린 <Grandmother Tower>를 보면, 연약한 구조의 좌대위에 육중한 통나무들이 천장에 닿을 듯이 쌓여있다. 작가는 그것들의 틈새에 마찰력이 있는 가죽과 천을 덧대어 쌓아올리면서 수직적 구조에서 전해지는 불안감을 이내 잠재운다. 실로 감싼 접시건조대를 접착제 없이 쌓아올린 작품은 실의 재질과 무게중심을 맞추는 작가의 탁월한 균형감각과 예민한 손끝감각이 빚어낸 결과다. 이러한 작가의 시각적 융화와 중재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설치작업은 저마다의 조형적 특징을 간직한 채 오래된 집에 배치된다. 때론 홀로, 때론 같은 공간에 배치된 각각의 구조물들은 전체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는 서로 다른 오브제들 간의 긴밀한 공조관계 속에서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

오래된 집과 함께 전시장에 소개되고 있는 작품도 같은 맥락이다. 작가는 쌓기와 감기의 방식으로 색, 무게, 재질, 형태 등의 물리적 속성이 서로 대치, 조응되는 관계 속에서 즉흥적인 사물의 조합을 만들어나간다. 이렇게 이질적인 조합으로 완성된 형태들은 하나의 공간 안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내러티브를 형성해 나가거나, 때론 뒤에 있는 캔버스와 공간의 여백을 배경삼아 움직이면서 하나의 연극적인 무대를 완성한다. 이처럼 불안정한 것들에 나름의 안정을 찾아주고, 불균형 속에 나름의 규칙을 찾아 균형있는 조화를 만들어 내는 일은 작가에게 있어 작업이 일종의 유희적 기능을 수반하는 놀이로 변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것들의 조합 속에서 일어나는 사물들 간의 긴장과 충돌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때, 강서경의 작업은 이러한 삶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자, 현실 속에 자리한 다양한 갈등과 긴장관계를 놀이로 승화시켜 유연하게 대처하는 작가적 삶의 태도를 반영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강함과 약함, 육중함과 가녀림, 무거움과 가벼움과 같은 상극적 요소들이 공존하지만, 나름대로의 절제된 규칙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지 않은가. 저마다의 사연을 대상들이 서로의 생김과 특성에 의존하여 자연스럽게 나름의 균형을 만들어 가는 과정,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구조적인 약점을 보완하고 서로 지탱해 나가면서 어려움 속에서 가까스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내는 과정이 결국 삶이라는 점. 아마도 이것은 충돌과 불안, 긴장을 감각적인 조형언어로 화합, 와해시키는 중재자이자 조정자이기를 자처했던 작가 강서경이 조용한 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려했던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아티스트 페이지
 
http://www.akive.org/artist/A0000059/
문의처
02-766-7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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