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ve

전시정보

전시제목 군산 리포트: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 등록일자 2012.03.13
전시기간 2012.03.13 ~ 2012.04.29 전시장소 아트스페이스 풀

2012 풀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 <군산 리포트: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 디자인 김청진 ⓒ 아트 스페이스 풀



전시명| 군산 리포트: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
초대작가| 개복인, 경호회, 권용주, 김진기, 김청진, 김혜원, 믹스라이스, 백현주, 유턴, 조은지, ps

기  간| 2012년 3월 13일(화) - 4월 29일 (일)

장  소|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시 종로구 세검정로 9길 91-5 110-803

개  막| 2012년 3월 13일(화) 6:00pm
갤러리 토크| 2012년 3월 13일 (화) 4:00pm
                       "곡절의 시간과 사유의 공간, 군산" (신석호, 군산아트레지던시 총감독 / 프로젝트그룸 동문 대표)
                       "미술이 지역 연구를 한다는 것의 의미" (김희진, 아트스페이스 풀 대표 / 큐레이터)
홈페이지|  http://www.altpool.org, http://www.hereisgunsan.org
문  의| 02-396-4805, htr@altpool.org (매니저 홍태림)



<군산 리포트>는2011년 전라북도 이니셔티브로 진행된 군산 아트 레지던시(총감독 신석호) 프로젝트의 결과물로서 서울에서 소개되는 이번 전시는 지난 해 <우여곡절 迂餘曲折- 군산의 사람과 움직임Twists Turns Ups & Downs : (In)visible Move & Human Agency>(기획 김희진, 2011. 9. 24 – 10. 23)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던 전시를 간추린 소개전입니다. 초대작가들은 지난 해 군산에서 8개월(3-10월) 간4차례의 공동 워크숍과 현장 답사, 주민 인터뷰, 조사연구 과정을 거쳐 회화, 사진, 영상, 조각, 설치에 걸친 총40여점의 신작을 제작하고 이를 버려져 있던 군산수협건물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풀은 군산에 대한 더 많은 연구를 자극하고, 보다 풍부한 이야기가 생산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풀의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에 프로젝트를 초대하여 서울에서 다시 소개합니다. 
 
풀의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는 어느 지역을 조사연구하고 미술언어로 지역의 총체적인 “공간 이론”을 기술하는 풀의 공공 프로젝트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물리적 공간인 “지역”의 범주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초 문헌 조사와 현장 실태조사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학제간 연구 성격을 지닙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제간 연구와 정량적 객관 지표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현실주의적 사유와 미학적 표현, 그리고 소통입니다.

따라서 미술 작가가 하는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의 성공 여부는 장소/현상/주체의 개별성을 포착하였는가, 그리고 그 개별성이 다른 시간, 공간의 경험에 소통될 수 있도록 개념적 보편언어로 승격시켰는가, 개별성과 보편성을 종합한 지역의 총체적인 공간이론을 제시하였는가로 가늠됩니다. 실제 현실, 다학제적 연구, 미술이라는 세 요소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이러한 지역 기반의 미술 프로젝트는 미술가 개인에게 철학과 미학, 현실에 대한 개인의 입장을 질문하는 궁극적 순례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들은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가 밀착된 상태에서 지역=자아에 대한 인식의 과정을 단순 기록부터 전달, 중재, 각인, 개입, 촉발, 선점 등 다양한 태도와 방법으로 전개해 나갑니다.

이러한 미학에서의 작가주의적 성과가 곧바로 익명의 피상적인 지역 공공에 “실익”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허상입니다. 풀은 오히려 여러 작가들이 공동으로 지역을 주목한다는 “공적 지시성”에 현실적 의미를 둡니다. 풀이 주목하는 지역은 지리적으로 떨어진 생경한 “지방”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의 공중이 공유하는 사회 구조적, 인식론적 한계의 증거 텍스트입니다. 풀은 외면해 온 실제 공공의 문제들을 직면함으로써, 허위의 “지역 정체성”을 현실화하고 단일한 국가 정체성을 다면화하며, 피상적인 공공성 자체를 실재화하고자 합니다. 


<
군산 리포트: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2012)

이 프로젝트는지금까지 《지역 연구와 미술 시리즈》가 진화해 온 맥락의 연속선 상에서 2012년 현재 시점에 부각되는 “사람과 이동, 현실적 이유”의 프레임에 한층 집중된 시리즈입니다.
 
군산, 정태가 아닌 동태 動能, 사람으로 지역읽기

전라북도 군산시는 북에 금강을 경계로 충청남도에 면하고 좌우에 서해안과 호남평야를 지척에 둔 인구27 만명의 항구도시입니다. 군산시는 물과 평야, 내륙의 재래시장, 섬과 항구를 지닌 천혜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농수산업을 기반으로 한 상업 요충지의 잠재력을 지닌 곳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군산은 일제시대 호남평야 일대의 쌀을 모아 일본으로 유출시키는 대표적 이출항으로 개발됩니다. 이출과 더불어 군산을 통해 이입된 제국의 하급 상품들과 보급로 개발은 내륙의 전통시장뿐 아니라 자생적 거상과 민족 민간 자본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도시사회학에서 군산은 전형적인 식민지형 근대화 개발정책 도시로 제국과 중앙집권의 성쇠와 더불어 그 욕망의 배설구이자 오류의 시험장, 실패의 치부였던 흔적을 증거하는 제3세계의 많은 식민도시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보편적 글로벌 트라우마와 더불어 천민 자본주온상에 대한 전통적 유교가치관과 신성화된 민족주의가 지닌 명분론, 실리와 자본에 대한 혐오인식 때문에 군산은 도시담론구조에도 등장하지 못해 왔습니다. 군산은 객주, 하역꾼, 거간, 도박꾼, 윤락녀 같은 익명 유랑민들의 도시로 유기됩니다. 그리고는 마치 마키아벨리안 “원죄”에 대한 처벌인양 근대화 과정에서 군산은 중앙에서 작동시킨 지역간 분리, 불균등 개발을 겪었고, 그 졸속적인 시도 때마다 실패 후 버려졌습니다. 몇 개의 중공업, 중화학 공업 단지가 들어서며 환경은 오염되고 중국과의 어업협정에 따라 내항은 침체 일로로 들어섭니다.

21세기 들어 세계 축소도시(shrinking cities)들 중 하나로 꼽히던 군산은 갑자기 서해안 시대의 도래라는 정책 슬로건 하에 “드림 허브(Dream Hub)”, “50만 국제관광기업도시”로 호명됩니다. 중앙정부는 군산에 대한 경제 개발 청사진 하에 급속 처방으로 역시 근대 토목개발정책모델인 세계에서 가장 긴 바다벽 새만금을 세우고 간척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동시에 당시 일본인 주거지역과 윤락시설이 밀집된 지역은 근대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하여 영화촬영장과 과거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식민지 관광지로 개발함으로써 지역 재생을 꾀하고 있습니다. 새만금과 근대문화유산보전지역은 이제 군산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이자 질서 축으로 이미 자리 잡았습니다. 문화개발 패러다임도 역시 관광산업에서의 소비형 스펙터클 창출로 경도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는 것은 군산 시민의 집합적 갈증 해소를 방해하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사람의 이동, 현실적 이유

본 프로젝트는 착취의 식민지형 트라우마와 상실감의 근대개발도상국형 트라우마라는 이중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 심리를 넘어서서, 트라우마의 고착화를 막을 수 있는 지역 요소로 사람과 그들의 가시적, 혹은 비가시적 움직임을 주목하였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는 지역의 구체적인 실존 인물이나 그 미시사 보다 도시정책의 결정자는 못 된다 하여도 그 정책의 해석, 실제 적용과 매개, 운영을 통해 도시를 형성하고 변이시키는 사람이라는 변수, 그들의 의식 및 정서 형태, 행동 및 이동 패턴을 아우르는 “인적 요소”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말입니다. 미술작가들은 인적 요소를 도시사회학에서 말하는 인구조사나 교육, 연령, 성별에 따른 계층분석과 같은 객관적 정량 지표로 접근하기 보다, 문화예술, 미학, 인문학, 인류학 등에서 말하는 1) 일상 생활 주체, 2) 정서와 의식의 표현 주체, 3) 이동과 변화, 관계를 주조하는 행위 주체로 이해합니다.그리고 작가들은 군산에서 발견되는 개별 주체들의 특성, 그들의 생존 방식과 이동 양태, 그것을 결정하는 구조적, 역사적 팩터들에 대응하는 적응 동태와 삶의 비공식적 운영전술을 작업에 담았습니다.

전시 하이라이트

작가들의 작업 진행과정에서 프로젝트는 몇 가지 키워드로 분류 기술되었습니다.
 
절단과 배회, 적재 더미와 낙차

 
            
                                                                  김혜원 作군산 시리즈-새만금, 사진, 잉크젯 프린트, 30x50cm, 2011 

작가 김혜원은 그의 신작사진<새만금 시리즈>(2011)에서 새만금으로 절단 난 방조제 양쪽의 바다 모습이 대칭형으로 배치된 화면을 보여줍니다. 절단면이 극명하게 강조된 대칭 중앙에 작가는 새만금으로 도래될 유토피아를 상상한 도심 곳곳의 탈색된 벽화 이미지들을 삽입합니다. 수평선을 맞추고 이미지 색 톤을 부드럽게 보정하여 형식적인 연결을 꾀할 수록 전체 사진은 절단된 부정교합을 더욱 극명히 드러낼 뿐입니다. 작가는 급작스럽게 섬을 연결하여 공간을 연장하려는 연결의 시도가 현실에 대한 이질감과 낯설음을 가중시키는 형국임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낯선 장소의 절단면 언저리에서 패러글라이드를 타거나 뚝방을 걸으며 배회하고 있습니다. 벽화의 소녀가 날리는 종이비행기의 예상 착륙지점에는 육지가 없습니다. 작가가 콜라쥬로 이미지들을 연결하여도 방둑은 간극을 벌린 채 곧장 앞으로 달릴 뿐입니다.

돈의 감각, 유영하는 비존재, 비존재의 존재감

                                                 
                                                                        조은지 作, 행화의 변, 싱글채널비디오, 2011

작가 조은지는 군산이 배출한 자연주의 풍자문학의 거장인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1954)를 대상으로 지역에서의 돈의 획득과 재산의 증식, 돈을 통한 정체성의 형성과 관계의 성립 양상을 쫓아 봅니다. 그가 주목한 인물은 기생 행화 行華 로, 행화는 격동하는 근대의 물살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증거하는 전근대형 여주인공 초봉이와 첨예한 대립각을 이루는 인생의 자발적 운영주체입니다. “그 눔이 이쁘문 그저 이뻤나? 돈을 주니 이뻤제”로 시작하는 행화의 변 㦚은 엄연한 현실인식 하에서 기생이 연애를 열망할 필요도 없고 한량이 조강지처를 바랄 수 도 없다는 쿨한 세상이치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행화의 변을 소설에서 발췌하여 육자배기 소리 형식으로 들려주면서, 돈이 문제가 아닌 돈을 운영하는 이들의 욕망과 운영방식,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치가 문제임을 경쾌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행화는 잉여를 좆아 속고 속이는 주류인간들의 경쟁과 허세에서 흘러나오는 파편들을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 묵는” 심사로 취득합니다. 행화는 공식 경제구조에서는 투명인간이지만 자신의 본분 이상을 탐내지 않는 생존법으로 역설적인 자존의 상태를 획득합니다. 행화는 각축과 경쟁의 생존 방식 가운데 약육강식뿐 아니라 그 균열과 틈새를 유영하는 생존법이 있음을 피력하는 인물입니다.
                                         
이동과 재편성 혹은 유랑

                                                 
                                                               믹스라이스 作, 둔갑술, 사진, 오브제 설치, 가변설치, 2011

미술 작업과 일상 행위 간의 경계를 유쾌히 넘나들며 교란시키는 작가2인 듀오인 믹스라이스는 이주를 반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상상력과 생각의 재구성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유랑과 연결을 획득할 수 있을지 상상해 봅니다. 이주 상황에서 구사할 수 있는 상상과 소통의 재료는 개인의 다양한 기억입니다. 믹스라이스는 기억을 과거로 회귀하는 노스텔지어의 기호로 바라보기보다, 상황에 따라 변형, 가공, 이식될 수 있는 대인간 소통과 상상 나눔의 매개체로 생각합니다. 이번 신작<둔갑술>에서 기억이 발휘할 수 있는 변신 능력은 보다 초현실적이고 재빠르며 비논리적인 상태변화를 의미하는 둔갑술의 경지로 설정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둔갑’했다고 이름 붙인 사물은 다름 아닌 해안가에 부유하는 산업 폐기물 더미에서 발견한 흰 스티로폼 덩어리들입니다. 작가의 기억에 남은 둥근 스티로폼 덩어리들은 기억의 엉뚱한 연상작용 속에서 새하얀 몽돌을 꿈꾸며 재빠른 변신을 꾀하다가 자갈도 스티로폼도 되지 못한 채 코믹하게 실패해 버린 이방 물체로 코딩됩니다. 작가는 이방물체들을 조롱하기 보다, 수습하여 시내에서 굴리며 유랑시켜주고, 자연석들 속에 슬쩍 끼워 넣어도 보고, UFO처럼 나르는 모습을 사진촬영도 하여주고, 바다로 나가도록 던져주기도 합니다. 부유하며 떠도는 천덕꾸러기 폐기물에서 구를 수 있는 형질상의 개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동시켜 자유로운 유랑의 여정을 구성해 보는 믹스라이스의 전복적 상상력은 토착과 이방, 무기력과 생기, 부유와 유랑 간의 탄력적 로테이션으로 주변을 재인식하게 해줍니다.


실재의 탈환을 위한 이중 행동, 의도적 배회와 환타지


              
                       경호회, <창과 꿈- 진봉석 개인전 프로젝트> 중 김경호 作, 진봉석의 낡은 의자, 싱글채널비디오,  2011

김경호, 김상돈, 남상수 작가3인이 팀이 되어 작업한 경호회의 신작프로젝트<창과 꿈 – 진봉석 개인전 프로젝트>는 군산에서 만난 노화백 진봉석 옹의 개인전을 기획하는 방식을 통해 실재를 탈환하고 복원하는 환타지 전술을 소개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들은 진봉석 화백의 인상파 화풍의 반구상 실경 연작 중에서 유독 화면에 창문 틀을 포함하고 환상적 색채로 풍경을 처리한<그리스의 창>(원작 년도 미상, 2011년 재작업) 연작을 주목하고, 도큐멘터리 영상, 비디오, 사진, 공간 설치라는 개별 작업을 통해 그림에 재현된 풍경의 실제와 환타지의 정체를 일종의 컬트 팩션 추리극처럼 재구성해 냅니다. 경호회는 진봉석이라는 잊혀진 화가의 일부 실제 증언과 상상의 서사를 혼합하여 화가가 악몽처럼 끔직했던 현실을 직시하는 전복적 상상의 방편으로 환타지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팩션의 서사를 제시합니다.

작가 김경호는 미술의 꿈을 품고70년대 도불하여 이후 삼십 년 간 유럽 각지를 유랑해 온 노화백의 인생과 예술의 경로를 인터뷰 기반의 비디오<진봉석의 낡은 의자>(싱글채널비디오, 컬러_사운드, 2011, 9분37초)로 소개합니다. 작가 김상돈은 창문과 거울을 수집하여 중첩, 교차시킨 오브제와 공간 설치에서, 시선을 열어주어야 하는 창에 거울을 삽입시킴으로써 창을 내다보는 시선이 오히려 본인을 반격해 오는 악몽 같은 상황을 경험케 합니다. 모처럼 창문을 뚫고 나간 듯한 그의 야외 사진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맹금류의 눈동자가 돌격해 들어옵니다. 작가 남상수의<적응의 시간 – 비둘기>(싱글채널비디오, 컬러_사운드, 2011, 5분33초)는 창문의 유리 처마 위를 노니는 비둘기들의 모습을 누워서 촬영한 비디오로써 비둘기의 발자국 소리와 그림자가 마치 전체 공간을 장악하는 듯 하고 롱 테이크의 변화 없는 화면은 이 상황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갑갑한 현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국의 풍경이라기에는 토속적이고, 모국의 풍경이라기에는 이국적이어서, 모국과 이국의 중간 유배지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듯한 노화백의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이방인들의 스침, 적소 適所로서의 고향 만들기, 약속의 힘

                                             
                                                              ps 作, <약속: 목적 없는 수단>, 책, 설치, 가변크기, 2011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층위에서 개인이 주체되는 발언과 행위의 표출에 주목하는 작가 ps는 군산에서 개인 혹은 집단 간의 수많은 다짐과 약속의 흔적들을 추적하였습니다. 군산에서 작가가 수집한 약속과 다짐의 이야기들은 지켜진 바 없기에 지켜질 기대도 만무한 무기력한 기호이고 상흔이었습니다. 작가는 자본과 영토가 구획한 생존구조가 첨예해지는 현실에서 약속은 디스토피안 미래의 전형적 기호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자문합니다. 그러나 화재참사 백서에 남겨진 일기와 편지들, 대책위원회의 상황보고와 논의기록의 뒷면 백지,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주민투표 편지봉투의 작은 메모들, 선주들이 선원들의 임금을 결의한 공고문 등에서 작가는 약속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약속은 어떤 거대한 위업 달성을 위한 행위라기 보다, 비극을 비관하지 않는 의지의 좌표입니다. 결과론적인 평가 위주의 약속이 아닌, 극복과 지향 과정의 의지와 몸짓이라 정의할 때, 작가에게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 미래의 힘이 됩니다.
 
 
생존과 환타지를 운영하는 사람들                                                          

군산이라는 지역은 우리에게 놀랍도록 동시대적이고 보편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중앙과 지방, 통치와 종속, 정주와 이주, 정착민과 유랑민, 명분과 실리, 대의와 소의, 공중 도덕과 개인 윤리, 존재와 비존재, 연속과 불연속, 일탈과 배회, 실제와 환타지 등을 가로지르는 굳건한 이분법과 단순한 가치체계를 질문합니다. 그들 간에는 분명한 가치 평가 잣대가 있습니다. 지역 개발과 재생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여도 이분법적 인식에 순치되어 있는 한, 지역은 소외됩니다.

그렇다면 이분법적 가치체계를 다분화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하는 지점에 대해 군산은 더욱 복잡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법치가 우롱된 채 자본과 폭력에 의존하는 통치체제, 불법이 합법인 사회구조, 비공식 경제가 공식 경제일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도덕과 윤리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공중도덕과 개인윤리가 맞지 않는 현실에서 중산층의 허위의식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자발적 비존재가 되어 생존과 환타지적 현실을 이미 유랑하고 있는 이들은 사회의 유령인가 혹은 “윤리로서의 자기 조직화”를 꾀하는 이들인가. 다분화된 가치 질서를 운영하는 공공의 최소 합의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명한 개인의 미래 비젼은 어떤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하는가.

군산은 체제 위기론과 한미FTA를 둘러싼 찬반논쟁, 오큐파이 운동이 한창인 현재 정국 속에서 총선과 대선이라는 선택, 이후5년을 준비해야 하는 한국의 동시대 현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글 김희진(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관련링크 www.altpool.org
문의처
+82.2.396.4805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facebook twitter me2day
인쇄하기
목록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이전 글이 없습니다.  

덧글(0)

현재 0 byte / 최대 500 byte

등록

Quick Pag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