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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JEAN DUBUFFET And The World of Hourloupe- 장 뒤뷔페 展 등록일자 2010.12.27
전시기간 2010.10.29 ~ 2011.01.05 전시장소 신세계 갤러리 본점

장 뒤뷔페, 무제-15: La Route du Pas-de-Calais, 3 September, Oil on canvas, 114.3×146cm (45×57 1/2 in.), 1963

장 뒤뷔페, 무제-2: Piano, Vinyl paint on canvas, 130.2×97.2cm, 1966

장 뒤뷔페, 무제-6: Colloque, Vinyl on canvas, 195×130cm, 1974



원시적 감각으로 도시를 느끼다
장 뒤뷔페는 토론과 글쓰기를 즐겼고 방대한 원고를 남긴, 미술작품으로 평가 받기 이전에 이미 문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순수한'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그는 스스로 생각을 비워내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물론 아주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작업에 몰입하고 있을 때에는 관념적이기보다는 천진난만한 원시인 같은 상태가 되려고 애썼다. 뒤뷔페가 미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1942년경에 미술계에서 '순수'하다는 것의 의미는,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미술이 삶의 흔적으로부터 떨어져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뒤뷔페는 미술이 철저히 생존과 얽혀야 한다고 믿었다. 진정 순수한 미술이란 문화적 시선에 의해 방해를 받거나 세련된 재주를 거치지 않은 채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시인들이 동굴 벽을 긁어 그림을 그린 것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자신의 흔적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듯, 미술이란 인간이 남긴 분비물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특징지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분출하고 싶은 일종의 배설작용으로 미술을 파악한 것이다.


프랑스의 아브르(Havre) 지방에서 포도주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뒤뷔페는 젊은 시절 두 번이나 화가의 길을 생각해 보지만, 확고한 예술관이 서지 않아 갈등 만 거듭하게 된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그를 구속하여 진정한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이유였다. 미술을 완전히 잊기로 마음먹고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을 이어 와인 사업에 몰두하다가, 41세라는 느지막한 나이에 다시 본격적으로 미술에 뛰어 들었다. 뒤뷔페는 그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심지어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하고 나서야, 완전한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미술작업과 더불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거칠고 투박하며 야만적인 예술을 총망라한 '아르 브뤼(art brut)'의 개념이다. 그는 예술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작품을 연구하면서, 예술은 어떤 가르침이나 선입견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은 아름답게 묘사되는 일이 드물다. 아름다움은 조화와 매끄러움이 아닌 불완전함에 있다는 자신의 미적 관점을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예술은 섬세한 기교가 아닌 재료자체가 내는 감수성, 즉 마티에르 효과에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재료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상상을 고정시켰다.


미술에 대한 뒤뷔페의 입장은 사실 미술사에서 전무후무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명에 대한 허무주의에서 유래한 원초적 세계로의 눈돌림은 일찌감치 19세기 후반에 고갱에게서 두드러지며, 20세기 초반에 이르면 원시적 유토피아를 모색하던 야수파의 마티스라든가, 원시성을 통해 보다 진솔한 인간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독일표현주의 작가들로 이어지는데, 표현방식은 달라도 예술적 입장에 있어서는 이들이 뒤뷔페의 선구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뒤뷔페 스스로도 자신의 작업이 다른 개념의 미술과 전혀 병치될 수 없는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1940-50년대에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추상이라든가 모던아트의 개념까지도 섭렵하겠다는 의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상미술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은 늘 추상적인 것이다."
뒤뷔페의 작업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것은 「파리 서커스」라는 작품에서부터다. 1960년대의 파리는 어두운 전쟁의 그림자가 걷히고 점차 활기를 띠었으며, 그런 배경 속에서 그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색채와 움직임, 그리고 오밀조밀한 형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마티에르에서 영감을 얻은 단색조의 엄숙한 분위기를 띤 과거의 작업은 밝고 경쾌한 농담조의 그림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 특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우글거리는 군중을 즐겼고, 개별 낱말의 의미를 포착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음을 도시를 이루는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엉키고 맞물려 풀릴 줄 모르는 거리의 교통과 어지러운 불빛을 마구 뿜어대는 상점의 쇼윈도에 현혹되었다.


1962년부터 뒤뷔페는 드디어 대규모 연작 「우를루프 L'Hourloupe」에 착수한다. 우를루프는 뒤뷔페가 만든 용어로, loup가 불어로 으르렁거리는 늑대의 소리를 뜻하기는 하지만, 작품과 관련하여 특별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이 용어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성을 그대로 분출시킨다는 아르 브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작품은 검고 두꺼운 테두리가 있으며 흰색과 푸른색, 붉은색의 형태들로 이루어졌는데, 뒤뷔페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볼펜으로 무심히 그린 낙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 낙서를 오려서 검은 바탕에 붙이고, 그렇게 제작된 작품은 '우를루프'라는 제목의 작은 책에 삽화로 남았다.
여기에서 뒤뷔페는 하늘도 없고 땅도 없는, 장소가 될 수 없는 밀폐된 공간 속에 늘어선 인간과 사물들을 보여준다. 채워진 공간과 빈 공간, 존재하는 사람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실체와 그림자를 이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이항들이 분리할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이 서로 얽혀지도록 만들어 놓는다. 이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 해석하기 좋아하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깨려는 시도처럼 여겨진다. 마치 증식 중인 세포들처럼, 형상들은 중심 이미지도 없이 끝없이 복제되며 방향성도 없이 무한으로 확산되어 간다.
우를루프의 세계 안에 있는 모든 형상은 대량생산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처럼 서로 닮았으며, 닮은 모두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립식 장난감처럼 서로 끼워 맞추어지듯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뒤뷔페는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이 연작에 매달리는 12년 동안 점차 예술작업을 대량생산 체제로 바꾸었으며, 과슈, 비닐 물감, 채색 폴리스티렌, 채색 레진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하게 되었다.
연결된 형상들은 핵심은 없지만, 모두 골고루 공통의 에너지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서로 엇비슷하여 아무런 특징적인 기억도 남기지 못한다. 이는 몰개성한 인생들을 말하는 듯하며, 그런 인생들을 둘러싼 다채로우면서도 비슷비슷한 경험들의 축적을 보여주는 기호가 바로 우를루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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