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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유쾌한 은둔- 서은애 展 등록일자 2010.12.13
전시기간 2010.12.09 ~ 2011.01.02 전시장소 갤러리현대 16번지

유원지 산수, 종이에 채색, 142.5×203cm, 2009

비천도 I, 나무에 카슈, 자개, 종이에 채색, 지름 42.3cm, 2010

계절과 함께 흘러가다-봄/여름/가을/겨울, 종이에 채색, 각 126.3×99.7cm, 2009



서은애-유쾌한 은둔
경주 토함산 아래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은 한적한 시골 동네의 적막함과 아름다운 풍광 앞에 노출되어 있다. 작업실 창 밖으로 드리운 자연이 바람과 햇살 아래 뒤척인다. 신라 고도 경주의 아득한 시간이 그 사이에서 반짝인다. 그곳에서 작가는 무릉도원 같은 산수화를 그리고 그 낙원 속에 자신의 모습을 삽입시킨다.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화를 차용해 그 장면을 자신이 노닐만한 곳으로 적극 변환하고 있다. 이 자리바꿈, 은근한 도치가 흥미롭다. 곽희가 「임천고치」에서 산수를 논함에 으뜸으로 쳤던 이른바 '가유 可遊'를 좀더 '쎄게' 가설하고 있는 셈이다. 서은애는 옛그림에서 당시 사람들이 꿈꾸었던 지극한 행복을 접했다. 산수화란 당대의 유토피아를 시각화한 그림이며 군자가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창조하는 것'과 관련된다. 따라서 산수를 소요하고 바라보며 산수를 그리고 완상하는 이유는 군자가 되고자 하는 일종의 수양과 수신의 과정이었다. 풍치 좋은 자연 환경 속에서 검소한 생계 수단에 의지하여 사는 은자/군자의 삶을 꿈꾸는 것이 산수화의 목적이라면 그것은 유교적 이념들 및 도교와 불교의 신비주의를 어느 정도 혼합한 이념적 체계의 결과물이다. 일종의 종교화란 얘기다. 동시에 그것은 이른바 주술적인 이미지다. 자고로 군자를 꿈꾸는 선비라면, 나아가 신선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느냐를 보여주는 이미지이자 삶의 공간에 어떻게 거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경구처럼, 벼락처럼 안기는 그림이다. 인간이 꿈꾸는 지극한 열락의 상태를 보여주고자 했던 그림이자 그런 삶을 열망했던 이들이 보고자 했던 환각적인 장면이 산수화인 셈이다.

 

서은애는 작업실 공간에서 선인들이 추구했던 행복한 삶을 반추한다. 유한한 인간세에서 겪는 온갖 풍파를 담담히 여겨내고 희노애락에 부침하며 견디는 모습도 읽어본다. 그들이 꿈꾸었던 지극히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행복과 욕망 역시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본인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은 행복과 욕망을 꿈꾸고 있음을 알았다. 다만 시공간이 다르다 뿐이지 인간이란 존재가 겪는 모든 것들은 불변한다. 예술은 그 불변하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룬다. 이제 동양의 고전(그림과 시)은 현재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는 텍스트가 되어 다가왔다. 옛그림을 공들여 보고 그림과 함께 한 화제나 제발, 한시를 꼼꼼히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서 번잡한 도시와 세속의 분주함이 지워진 작업실에서 나름의 행복한 삶의 방식을 도모한다.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따라서 작가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행복을 추구한 그림들을 자신의 행복한 삶의 장면으로 번안하는 매우 '실용적'인 그림이 된다. 그래서 작가의 모든 그림에는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화면 안에서 여러 감정을 드러내는 본인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림이란 공간은 현실적 삶의 공간을 대신해 작가가 꿈꾸고 희구하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기이한 공간이다. 서은애에게 그림은 일종의 욕망의 시뮬레이션이다. 동양인들은 그림이 실재가 결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았다. 사실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따라서 동양의 그림은 실재를 추구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활력을 통해 외부세계를 체득하는 그 어떤 통로로 그림을 대했다. 산수화는 실세계를, 자연의 진면목을 가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그림, 일종의 '시뮬레이션'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은 다른 세계로 이행하게 해주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징검다리로서의 그림 말이다. 따라서 동양화는 '그리기'라기보다는 '상상하기'라고 해야 더 어울린다.


작가에게 작업실은 일종의 유배지이자 은둔처다. 이른바 '유쾌한 은둔'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동양의 고전과 함께 한다. 옛그림을 보고 옛시를 읽으며 그것을 감상하고 느끼고 교감하는 자신을 덧대어 그린다. 그 둘은 한 공간에서 시공을 초월해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수시로 몸을 바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거듭한다. 감정이입이 일어나고 변신이 반복된다. 이미 문인은 사라지고 해서 유교적 혹은 도가적 이념으로 이루어진 사회와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보편적인 것이기에 자신의 삶의 자리에 겹쳐 놓고자 했다. 외진 작업실에서 옛그림을 응용하는 이 그리기 방식은 형식적인 맥락에서의 패러디나 유머, 해학과는 좀 다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나로서는 서은애 작업의 핵심은 동양화 전통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 의미(유토피아 의식,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를 절취해 이를 자신의 삶의 욕망과 '접합'시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이 점이 전통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으로 다가온다. 전통이란 근대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성립하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필요성에 의해 전통을 조작하고 허구화한다. 따라서 전통을 박제화시키고 그것을 오브제로 여기지 않으려면 전통에 대한 모색과 논의가 다른 차원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전통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또 그것이 전통이라고 단순히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당시에 그림이 그렇게 그려졌으며 어떤 문맥에서 제작되고 이해되었으며 조형적 방법론들이 무엇이었는가를 잘 깨달아 그것들이 간직하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미술에 대한 의미심장한 요소들 및 서구미술을 넘어설 수 있는, 탈근대적인 내용들을 부단히 찾아내어 환생시키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동양미술의 전통은 거대한 광맥이다. 그러나 이 광맥을 매력적으로 탐사하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서은애가 전통적인 동양화를 대상으로 한 작업을 선보인 것은 2001년도 즈음으로 기억된다. 당시 작가가 시도한 고전의 차용은 애초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이라는 위계 속에 구분된 것들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해체하려는 목적에서 다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작업들은 서로 다른 이미지의 충돌과 병치를 통해 비교적 단순한 음성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이후 작가는 점차 고전에 대해 그 그림이 지닌 뜻과 의미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말하기를 고화 속에 담겨진 자연 풍광에 대해 슬며시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화면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 옛그림에 대해 긍정적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되고 낡은 종이 위에 그려진 풍광들과 그 속의 인물들에 점차 동화되기 시작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비로소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닌 문맥과 의미를 새삼스레 깨달은 것이다. 그에 따라 고화를 차용하고 그 그림 속 인물은 자신의 얼굴로 대체해 나갔다. 그림 속 인물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상황이다. 작가는 그렇게 고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산수를 유람하고 신선이 되기도 하고 욕망의 절제와 달관에 도달한 지혜롭고 여유로운 삶의 방식을 연기하고 있다.


놀이공원이 산수와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관수와 관폭을 즐기는 남자의 시선 앞에 작가가 천진하게 놀고 있기도 한다. 그 주변에는 라디오와 술, 책이 놓여있다. 작가는 고화 속으로 피서를 가고 한적한 여가를 보낸다. 당시의 인물들과 동등하게 자연을 소요하며 그 안에서 몸을 편안히 하고 덕을 숭상하고자 한다. 아이(도를 깨친 이의 얼굴빛은 아이와 같다)들과 인형의 등장은 작가의 분신, 이른바 아바타들이다. 그것들은 작가와 대등한 인격체로서 세속에 찌든 심신을 위로해주는 오랜 벗들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산수화의 장면은 또한 이른바 '이발소 그림'이 보여주는 풍경과 유사하다. 전형적인 서양화 기법으로 산수화풍을 뒤섞어 토속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한국의 이발소 그림은 그야말로 온갖 감수성이 혼재된 짬뽕문화다. 어색하고 유치하지만 그 안에도 절실한 인간의 욕망과 행복에 대한 염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은애의 그림은 다분히 산수화와 이발소 그림이 공유하는 부분을 건드린다. 아울러 필선이 아니라 먹 자체를 계속 덧칠해서 이룬 독특한 붓질의 운용과 정교하고 꼼꼼한 묘사와 서예 등은 다소 희화적인 장면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접하게 한다.


근작에서 무척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직접 만든 시화집이다. 1888년대 청대 말기에 발행된 화보집 「시중화」를 차용해 작가가 만든 작은 책자는 「화중유시」란 제목을 달고 있다. 시중화에서 120편의 화보 중 33편을 참고로 해 그림들을 그렸으며 중국과 한국의 여러 한시 중에서 자신의 심정과 잘 연결된다고 여겨지는 시를 뽑아 화제로 썼고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역시 자신의 얼굴로 대체되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와 감성을 노래한 시와 여성 등장인물을 내세워 사랑의 아픔을 읊고 있는 시를 선별해 적고 그에 적합한 그림을 그렸다. 옛시를 읽으면서 교감을 했고 그 교감을 모았다. 작가는 항상 과거와 교감하는 현재,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한 인간이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희노애락을 그리고 있다. 작가에게 전통적인 그림, 시는 그런 맥락에서 거듭 환생한다. 옛그림에 대한 이 긍정의 정신과 마음은 지금 현재의 시간대 위에서 호흡하고 있다. 작가의 그림은 과거 그림에 대한 조롱이나 패러디가 아니다. 작가는 옛사람들과 어울리는 자신을 그린다. 옛사람들과 공생하며 하나로 겹쳐진다. 어쩌면 작가는 그림 속으로 홀연 들어가 사라지고 그 그림 속에서 평화롭고 안온함을 느끼면서 살아갈런지도 모르겠다.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새로운 시공간이 펼쳐진다. 화면 위에 그려낸 세계는 분명 과거의 세계인 듯 하지만 꼭 과거에 속한 것도 아니고 그 그림 속에 노니는 작가의 모습 역시 현재의 시간을 사는 이도 아니다. 이미 있는 작품을 그대로 방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니다. 주어진 텍스트에 기생해 이를 옮겨 그리면서도 다른 차이, 틈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그 틈에서 서식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그 이상적인 유토피아, 낙원 안에서 지극한 안온함을 맛본다. 그림은, 그리기는 작가가 꿈꾸는 최고의 은둔처이자 안식처이고 행복이다. 결국 작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욕망은 너무도 보편적이고 본능적이라 옛날과 오늘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고대인과 현대인이 결코 다를 수 없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작가는 중국 남북조 시대 시인 사령운(謝靈運)의 시를 인용한다. "誰謂古今殊 異世可同調 누가 옛날과 지금이 다르다고 하는가 시대는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같으리"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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