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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유근택展 등록일자 2010.12.10
전시기간 2010.12.06 ~ 2010.12.31 전시장소 갤러리분도

눈, 종이에 수묵채색, 135×135cm, 2009

공원에서, 종이에 수묵채색, 72×91cm, 2010

숲, 종이에 수묵채색, 81×65cm, 2010


거창한 이야기는 잠잠해지고 비로소 사소한 것들이 빛을 발하는

가끔 우리가 겪는 게 있다. 일 때문에 다른 지방을 갈 때 느끼는 막연한 낯설음이다. 톨게이트나 기차역, 버스 터미널과 같은 그 도시의 관문을 넘어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할 일을 마치고, 끼니를 챙기고, 숙소를 잡아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자신이 사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아무리 볼거리 많은 경관을 보고, 소문난 진미를 맛보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곳은 이방인들에게 여전히 불편한 장소다. 나는 만약 우리가 어떤 도시를 친근한 곳으로 정 붙이려면, 그 지역에 있는 문화 특구나 명소보다 별다른 특색 없는 주택가를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단지에 유모차를 몰고 나온 주부, 문구점의 장난감 진열대를 기웃거리는 아이들, 상가 건물에 한두 개씩은 보이는 커피 체인점.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여기도 우리 동네처럼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일상의 평정심 속에 평온이 깃든다. 우리는 특별히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것만의 심미적인 감흥을 찾을 수 있다.

 

나는 화가 유근택의 그림에서 그와 같은 안락함을 느낀다. 분명히, 그림을 본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인지 이론이나 미학에서 풀어놓는 알쏭달쏭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도 아는 체, 나는 이 작가의 작업에 관하여 소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니다. 우리 감각과 이성이 가진 상식적인 면에만 기대더라도 참된 모습은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사람들은 화가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던 '그랜드 내러티브'가 붕괴되고, 개인적이며 소소한 모습이 전면에 등장한 유근택의 그림에서 탈근대적인 면모를 읽어내기도 한다. 내가 볼 때에 작가는 그와 같은 포스트모던적인 견해보다, 그가 여전히 굳고 냉철한 관찰자로서의 주체 subject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탈근대성이 아니라 자기성찰성에 가까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가끔씩 이름난 지식인의 서재나 저명한 화가의 작업실을 탐방기 형식으로 꾸려놓은 책을 읽으면 그곳들은 정말 특별해 보인다. 마치 그 책들은 대가들이 생활하는 장소는 평범한 우리들의 공간과 구별되어 독자들을 주눅 들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정말 그럴까.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 차서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구분하려는 종교 시설처럼, 예술적인 것을 예술이 아닌 것과 차이를 드러내려는 시도는 종종 있어왔다. 대부분 그 일은 진지한 척 벌어진다. 그런데 유근택의 작품에는 언젠가부터 그런 태도가 안 보인다. 아니면, 일부러 멀리하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과잉된 관념을 걷어낸 그 풍경은 차라리 빛이 난다. 이를테면 하얀 송이가 되어 내리는 눈, 하나의 직선처럼 차올라 흩어지는 분수 물줄기, 빼곡한 베란다 창만이 도드라진 아파트 건물, 진수성찬이 올려진 식탁, 실재와 상상과 관념이 잡동사니를 이루어 어지럽게 놓인 거실, 그리고 내가 「사색하는 목욕」이란 제목을 붙여주고 싶은 욕조 따위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작가는 그냥 소진되어 사라지는 생활 속 매 순간을 그림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모른다. 전시 기획자와 초대 작가라는 사회(gesellschaft)적 관계로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듣고, 여러 큼직한 미술상을 받은 좋은 화가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실제 대면했을 때 그의 품성이 어떤지 아직도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작품 내적으로는 '이 사람, 나와 사는 것 별반 다를 바 없다.'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이것은 매력이다. 한국화가 유근택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러한 태도가 우리 시대의 예술이 나아갈 방향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다만 많은 작가들이 한국화를 권위에 둘러싸인 뻣뻣한 장르로 변질시켜 놓았다는 생각은 든다. 그 권위는 너무나도 유연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나머지, 과거의 간결한 양식으로 돌아갈 여력도 없고, 새로운 단계로 접근하는 용기도 부족한 어정쩡함을 보여줄 때가 많다. 여기에 작가는 형식의 실험이 아닌 태도 자체의 전환을 통하여 자칫 감당하기 벅찬 장르적 소외를 받아들인다. 중심에 서 있지 않고 소외 받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혁신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위치란 말이다.

윤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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