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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Somebody else's monument 등록일자 2010.09.09
전시기간 2010.09.02 ~ 2010.09.26 전시장소 가나 컨템포러리(GANA CONTEMPORARY)

상품이라는 물신에 관한 메타상품의 역설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지닌 물질이나 재화이다. 그 가운데는 인간이라는 상품도 있다. 인간이 자신의 노동을 팔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인류는 이전의 수만 년 역사 동안 만들지 못했던 자본주의라는 놀라운 체제를 만들어냈다. 노동하는 기계로서의 인간이라는 상품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이다. 인간은 생산의 주체이자 동시에 소비의 주체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은 생산자로서, 동시에 소비자로서 소외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의 총체적인 소외를 주선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상품이다. 이이정은은 생산주체로서의 인간이 만들어낸 상품이 소비주체인 인간을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충실한 행위자로 구조화하는 방식을 성찰한다. 노동의 소외는 현대사회의 모순을 유발하는 뿌리와 같다. 예술노동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이정은은 그림 그리기라는 예술노동을 통해서 현대사회에 있어 상품의 위치를 성찰하는 회화작품을 생산한다. 심각한 수준에 이른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속에서도 자율성의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는 예술노동을 수행하는 예술가 이이정은이 상품을 성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판적인 시각을 담는 일이다. 그는 애초에 종교나 사회, 자연 등에 내포된 힘의 관계를 그리다가 대형 마트 공간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상품논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쇼핑을 즐기는 자본주의의 충실한 소비대중으로서 이이정은은 스펙터클한 소비 공간으로부터 출발했다. 가끔씩 만나는 대형마트의 공간은 때로는 호젓함으로, 때로는 우울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쇼핑공간에 대한 그의 느낌은 곧 치열한 공간 탐구로 이어졌다. 대형 마트는 자본주의 사회의 유통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재현하는 공간이다. 그것은 소비의 극대화를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구획된 자본주의 체제의 일상 공간이다. 시장체제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명쾌하게 집약하는 공간 속에서 자본주의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는 대형 마트의 실내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작업은 노작의 결과이다. 그는 특유의 섬세한 붓질로 얇게 발라 그린다. 회색 벽과 컬러풀한 상품들의 대비를 역설적인 매력으로 읽어낸 그의 작업은 자본주의 소비 공간의 판타지에 대한 매료된 일상인의 감성 그 자체였다. 쇼핑은 현대인에게 있어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과정이자 놀이이다. '싫지만 예뻐 보이는' 그 공간 속에서 이이정은은 미적 쾌감을 얻었다. 그의 초기작에는 이러한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이정은_Beautiful boxes and bottles no. 5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09




이이정은_Beautiful boxes and bottles no. 6_캔버스에 유채_170×170cm_2009





이이정은_Beautiful boxes and bottles 2010_캔버스에 유채_110×110cm_2010

 

'극단적인 모순을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는 이이정은의 역설이 성립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무색무취의 중립 공간 같아 보이는 코스트코 공간은 마트의 표상이며 소비사회의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공간이다. 가득 쌓아놓고 빨리 빨리 물건을 회전시키는 대형 마트의 디스플레이 방식은 그 자체로 시각적인 흥분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마트 공간은 디스플레이의 심미성을 고려하지 않고 쌓기의 효율성을 우선시한다. 한마디로 '그냥 쌓기'다. 그 무지막지한 디스플레이가 소비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 그것은 근대사회의 격자구조, 단순한 구조의 반복을 통해서 효율적인 구조를 시각화하는 근대의 시각과 닮았다. 대형 마트 공간에서 가득 쌓인 상품들의 격자구조를 통해서 원근법의 소실점을 발견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숭고를 가슴 깊이 뼈저리게 체험하곤 한다.




이이정은_Beautiful boxes and bottles 2010_캔버스에 유채_170×170cm_2010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기호와 취미에는 절대적 법칙이라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이정은의 '상품비판'은 상품의 소비에 있어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기준이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는 상품을 포장한 텍스트를 흐릿하게 그려 읽히지 않는 이미지로 만들어 버린다. 완벽한 호감도 아니고 비호감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있는 자신의 감각을 회화의 장 위에 묶어 둔 것이다.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이라는 작품 제목은 자본주의 매커니즘을 실현하고 있는 마트 공간에서 가진 낯선 느낌의 단서이다. 소비자와 상품의 만남을 매개하는 마트 공간에 대한 이이정은의 비판적 시각이 담겨있다. 그렇더라도 그가 회화적 상징을 통해서 상품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드러내고 있는 것은 소비사회에 길들여진 우리의 감성 그 자체이다. 근래의 이이정은 작품은 상품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대형 마트에서 만난 상품 이미지를 차용해서 다양한 변주를 연출하고 있다. 첫출발은 박스로 포장된 상품들을 화면 가득 그려 넣는 것이었다. 특히 패키지 상품들이 덩어리들로 묶여서 가득 쌓여있는 상황을 화면에 끌어들인 것이다. 포장된 사물들은 사물의 본질을 가린다. 그는 본질을 가리고 있는 포장의 외형을 그림으로써 포장 그 자체의 이미지로 작동하고 기능하는 상품의 물신화를 드러내고 있다. 「Beautiful boxes and bottles」 연작은 시럽이나 와인, 잼 등과 같은 상품의 내용물보다는 상품의 포장에 집중한다. 그는 상품 포장 박스를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고 물건과 물건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서도 그것을 그리드의 연쇄로 이어서 수직정렬의 엄격한 규칙 아래 놓이게 한다. 그는 말한다. '유혹적이면서도 위험하고, 비천하면서도 거룩한 물건들이 여기 이렇게 가득 쌓여있다'라고. 비판은 비난이나 혐오와 다르다. 그것은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일이다. 이이정은이 상품의 환영인 상표를 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보드카라는 액체 상태의 마실 것을 사용하는 이면에 그 겉면을 장식하고 있는 술병과 상표의 디자인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는 상품의 안과 겉을 살펴 분간하려는 마음으로 포장과 상표를 그린다. 그는 이후의 최근작에서 마트보다 더 마트답게 상품 쌓기를 시작했다. 쌓기의 마력을 시각적으로 환기하는 그의 작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문명비판이다. 그는 기념비적인 건축의 외형과 패키지상품의 박스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마트의 실내 공간 그리기와 상품 쌓기 작업의 순연관계가 근작을 낳았다. 패키지 상품의 박스들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뻗어 올라가며, 우리시대의 거대한 우상으로 거듭난다. 그것은 소비시대의 기념비이다.

 



이이정은_Somebody else's monument 2010_캔버스에 유채_170×320cm_2010





이이정은_Somebody else's monument_2010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10

 

「Somebody else's monument」 연작은 패키지 상품의 운명과 그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은 껍데기의 존재론에 주목한 초기작의 관심사를 사회적인 맥락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그가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를 그린다는 것은 현상을 통해서 본질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성찰이 들어있다. 껍데기의 현현이 상품의 재현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그 껍데기들 자체의 존재론과 그 너머의 사회적 맥락에 관심을 두는 것이 이이정은의 최근 관심사이다. 건축의 외형을 가진 모뉴멘트는 역사 또는 일상의 기억을 담아두려는 의도이다. 이이정은의 회화는 우리시대가 소비하고 있는 상품과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상하는 박스와 상표 등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한순간 쓰이고 사라져버리는 패키지 이미지를 이용해서 오래된 건축물인 지구라트를 만들거나 고층빌딩 이미지로 전환한다. 그것은 상품이라는 물신에 관한 기념비적인 역설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전환하는 바로 그 순간에 물신숭배 현상이 등장한다고 말했다. 상품을 통해서 물신(物神)의 현존을 확인하게 하는 이이정은 자신의 예술노동 생산물은 일반 생산물보다 더 높은 물신적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품을 그린 이이정은의 예술작품은 고급문화의 장에서 통용되는 (메타)상품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는 작은 터치들이 살아있으면서도 풍부한 디테일을 가진 거대한 화면을 구축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동을 투여했을 것이다. 상품비판을 실천한 예술가의 노작 또한 (메타)상품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이 역설. 누구보다도 작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메타)상품으로서 자본주의 상품논리를 성찰하는 이이정은은 그래서 자신의 예술 앞에서 더욱 투명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첨단의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젊은 예술가 이이정은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인 상품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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