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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제목 앵그리 씨어터 등록일자 2010.09.09
전시기간 2010.08.31 ~ 2010.09.16 전시장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L박사의 욕망 극장 『앵그리 씨어터』展
L박사가 돌아왔다. 2009년 작 「L박사의 밀실」에서 작가와 똑 닮은 드로잉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잔인하게 고문하면서도 지켜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코미디를 보듯 키득거리게 만드는 부조리한 잔혹극을 꾸며대던 L박사. 이번엔 자신의 드로잉들을 위한 극단인 '앵그리 씨어터'를 세우고 햄릿이라는 비극을 무대에 올리는 연출자가 되어 그가 돌아왔다. 2010년 9월 인사미술공간에서 선보이게 될 『앵그리 씨어터』는 기본적으로 L박사가 조종하는 '입체드로잉극'이라는 설정에 있어서는 전작인 「L박사의 밀실」과 닮았다. 가느다란 선으로만 그려진 평면 드로잉들을 윤곽을 따라 오려내고 그 틈에 캔 뚜껑, 고무줄, 빨대 등 각종 오브제를 삽입해 고문한다는 설정에 따라 고통에 몸부림치는 생생한 3차원의 드로잉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바로 입체드로잉이다. 그러나 L박사에 의해 이유도 모른채 잔혹한 고문을 당해 죽음에 이르는 드로잉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던 전작에 비해, 「앵그리 씨어터」는 햄릿을 차용함으로써 내러티브와 극적 구성이 더욱 명확해진 말하자면, '진짜 죽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영민_화난햄릿_드로잉 극 '화난햄릿' 중에서_2010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부왕이었던 아버지를 독살한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려던 왕자 햄릿이 실수로 연인인 오필리어의 아버지와 오빠를 살해하게 되고, 결국 복수에 성공하지만 자신 역시 죽음을 맞게 된다는 스토리이다. 『햄릿』의 내러티브를 차용하지만 「앵그리 씨어터」는 햄릿을 조종하는 연출자이면서도 햄릿 대신 숙부와 어머니를 살해하는 L박사가 주인공인 연극이다. 밀실의 L박사에서 『햄릿』을 무대에 올린 연극 연출자이자 배우로, 전지전능한 존재로 다시 부활한 L박사는 누구인가? 관객들은 L박사가 언뜻 언뜻 엿보이는 실제의 얼굴이나 손 같은 작가의 신체를 통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가 작가의 분신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채게 된다. L박사는 자신의 자화상이자 분신인 드로잉들을 죽이는 즉, 스스로를 끊임없이 살해하는 모순적 존재이다. 밀실에서의 L박사의 실험이 왜 그리도 잔혹한 고문과 죽음을 행하는지에 대해서 「L박사의 밀실」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L박사와 복제드로잉인 I(Initial)군이 들려주는 독백을 통해 L박사의 정체가 무엇인지 힌트를 주고 있긴 하다.

L박사 :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 스스로를 속이고 그들을 죽이려는 찰나에 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I군 : 박사는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죽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독백은 분열된 자아에 대해 말했던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주체론 그 자체이다. 라캉은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문장 하나로 바라보는 주체인 '나'와 바라봄을 당하는 주체인 '나'를 분리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거짓말을 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객관화해 설명했다. 「L박사의 밀실」은 'Liar'의 이니셜을 딴 L박사라는 일차적인 자아와 보여지고 있는 '나'인 또 다른 자아 즉, 분열된 자아들의 대결인 것이다. L박사는 예술가이자 창조자인 일차적인 자아와는 달리 보여지는 자아 즉, 평가받아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갖는 부담감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를 괴롭히고 죽이는 작가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영민_리허설0105_드로잉에 오브제_80×28cm_2010





이영민_리허설0210_드로잉에 오브제_80×28cm_2010

 

그러나 아무리 보여지는 존재인 자신을 거부하고 죽인다 해도 세계 속에서 인간은 보여지는 존재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무대 위의 배우로서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의 내러티브를 빌려왔다는 점은 L박사와 그가 벌이는 잔혹한 살인극의 정체가 무엇인지 작가 스스로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드러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욕망, 그리고 『햄릿』에 나타난 욕망의 해석'이라는 비평을 통해 라캉은 『햄릿』을 '욕망이 빚어내는 비극'으로 분석했다. 인간은 누구나 억압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결국 욕망을 채운다 해도 그 대상 역시 허상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지만, 그래도 욕망은 남고 인간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또 다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라캉의 욕망이론이다.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비극의 원천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문학, 영화, 평론 등 각 분야에서 수없이 연구되고 분석되어 왔던 것도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에 대한 하나의 원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내러티브를 빌려온 「앵그리 씨어터」는 L박사의 욕망들이 충돌하고 분출되는 'L박사의 욕망극장'인 셈이다. "햄릿의 이야기를 빌려오기로 한 것은 우연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필연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 그대로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듯하다. 햄릿을 통해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자아의 욕망을 말하던 것에서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게 됐기 때문이다.

 



이영민_리허설시리즈_드로잉에 오브제_22×80cm_2010




이영민_리허설0666_드로잉에 오브제_27×25cm_2010

 

그러나 「L박사의 밀실」도 「앵그리 씨어터」도 잔혹하고도 비극적인 주제에 기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보는 이들은 드로잉들의 비극에 눈물을 흘리거나 자신의 인생을 대입시켜 감상에 빠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영민의 작품은 관객들이 깔깔대며 즐겁게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웃기는 비극'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유머와 위트는 독일의 극작가인 브레히트(Bertolt Brecht)식으로 거리두기를 통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이중의 자아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하듯이 이영민의 작품도 비극과 희극, 본능과 이성 등 극단의 대칭점들이 뒤섞여 서로를 바라보기 하도록 만드는 엉뚱하고도 유쾌한 한 편의 드라마이다.




이영민_드로잉 극 '화난햄릿' 스틸컷_2010

 

'이젠 죽는 것에 신물이 났다는 드로잉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연을 위해서 약 6개월간 총 25632번에 달하는 죽음의 리허설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리허설에 불참하거나 열의를 보이지 않거나 혹은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킨 드로잉들은 잔인무도하게 폐기처분했고... L박사에 의해 가장 훌륭한 연기자들로 인정받은 드로잉들이 주․조연 배우로 발탁된 극단 '앵그리 씨어터'의 「화난 햄릿」을 찾아준다면 죽음의 리허설에서 살아남은 드로잉들의 '진짜 죽음'을 목격하는 잔인한 즐거움을 선사해드리겠다'며 작가는 관객들을 초대한다. 그의 초대는 죽음과 욕망의 이면만큼이나 어둡지만 마력을 느끼게 하는 가장 웃기고도 유혹적인 초대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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