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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전시제목 한남동, 사람들 등록일자 2010.09.08
전시기간 2010.09.08 ~ 2010.09.18 전시장소 토포하우스

2010.8.20 금.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 해도 우주의 무한함을 좇아 완벽하다. 거기 존재하는 사물은 우연으로 너와 마주친다. 기억의 색안경으로 연결되는 순간 사물은 왜곡된다. 맨눈의 그림은 부딪쳐오는 사물의 단면을 제 몸에 새긴다. 응시gaze의 눈은 사물의 표면을 주름 접는다. 이제 그림은 진공상태의 고요함 속에서 그 무엇도 아닌, 그 무엇이 되기 직전의 사물이다. 유한한 내가 무한한 나를 본다. 물끄러미 전부를 보거나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관조contemplate의 눈은 그림의 주름진 표면을 편다. 륮.
● 2009.2.21 토. 인류 최초의 직업이 통역과 매춘이라고 한다. 곧 언어와 몸이다. 사람들은 언어와 몸으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다. 회화예술은 언어인가 몸인가. 회화는 언어적인 몸이거나 몸의 언어다. 그것은 일획의 진성성에서... ...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자유로의 한낮을 달리고 있었다. 흘깃 흰 물체가 보였다.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로 흰 개가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도깨비 시장 길을 사람과 차가 잘도 엉켜 다녔다. 간신히 빠져나와 제천정 길에 들어섰다. 담벼락에 차를 붙였다. 연탄을 가득 실은 용달차가 오른편으로 대자 가뜩이나 좁은 길이 더 좁아졌다. "차가 지나갈 수 있을까요?" "괜찮아요, 낮에는 아무도 안 지나가요." 죄 일터에 나가 그런가, 설렁한 기운이 감도는 한적한 오후였다. 하얀 전신주에 까만 전신줄이 허공을 갈랐다. 장독대 위에 관목의 짧은 나뭇가지가 벽에 드리운 제 그림자와 얽히고설켰다. (14:58)

 

류장복_78생 한남동토박이_리넨에 유채_72.7×53cm_2010

 

2009. 1.16. 금. '너그리기'의 일환으로 한ㅇㅁ를 그렸다. 그녀는 한겨울 도깨비 시장의 비탈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78년생 토박이다. 빨간 코트 속에 검정 스웨터와 밝은 회색치마, 까만 부츠를 신었다. 쥐 죽은 듯 40여분이 지났다. 얼굴에 미세한 표정변화가 일더니 혼잣말처럼 말했다. "우연히 10년 전 언니의 일기장을 들춰 보게 되었는데, 나에 대해 거의 저주에 가깝게 써 놓았어요."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늘 티격태격했다고 했다. 정반대의 성미 때문이라지만 일방적인 태도가 원인이다. 너를 이해하기에 앞서 인정해야 한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슬며시 웃었다. "영화 보고 일주일씩 울던 친구 딸아이가 슬픈 노랫말에 꺼이꺼이 울어요. 세 살배긴데, 엄마가 그 노래만 부르면 하던 짓을 멈추고 울먹거려요." 그 때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던 대화가 끊기질 않더니 급기야 깔깔거렸다. 나는 졸지에 구경꾼이 되었다. (20:40)

 

 

류장복_맑은 날 오후 14:09_리넨에 유채_90.9×65.1cm_2010

 

2009. 3. 21 토. 큰 종이를 폈다. 빠른 손으로 단숨에 끝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작년에 주로 그린 밤의 한남동은 푸른 우주의 빛깔을 자아냈지만 낮은 하얗게 밝았다. 목탄 위로 다시 색을 덮었다. 더 커진 손동작에 요란해진 소리가 좁은 골목길에 퍼져나갔다. 할머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분노에 차서 뭔가를 중얼거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이번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버럭버럭 마구 욕을 해댔다. 후딱, 뒤돌아봤다. 치매를 앓는 노인이었다. 할아버지의 표정 속에 나는 없었다. (14:09)

 

 

류장복_낮 14:29_리넨에 유채_72.7×90.9cm_2010

 

2009. 11. 15 일. 겨울의 찬 기운이 완연했다. 파란 하늘이 포근하게 맑았지만 바깥바람은 매서웠다. 밖에서 그려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창에 붙어 꼼지락거렸다. 초겨울의 맑은 햇빛이 만져졌다. 어느새 재즈의 선율을 타고 남미의 바닷가로 훌쩍 날아갔다. (14:29)

 

 

류장복_밤 밤_리넨에 유채_72.7×90.9cm_2010

 

2010. 7. 14 수. 한겨울 백두산을 내려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뺨이 얼도록 넋을 놓고 보았던 새하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 생생했다. 한여름 해를 집어 삼킨 바다 위로 부서지는 달빛이 그처럼 찬란할 줄 몰랐다. 늦가을 꾀죄죄한 차림으로 철교 아래를 들락거리던 유람선이 까만 밤을 흰 점으로 떠다녔다. 베를린의 공원에서 마주했던 포플러 나무 그림자가 길이 되어 버렸다.

 

 

류장복_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명랑과 우울 사이를 보았다_리넨에 유_90.9×65.1cm_2008~10

 

2010. 8. 7 토. 먼저 침묵 속에 있기로 했다. 죽은 듯 살아있거나 가만히 존재하기다. 3주 전 그녀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써내려가듯 격정적으로 중얼거렸다. '주연배우의 유고시를 대비한 언더 스터디 under study의 처량한 신세를 겪으면서 부쩍 성숙했고, 머나 먼 이국땅을 여행하면서 사기에 가까운 지인의 속임수에 배신감을 맛보았고, 친구의 이중 플레이에 바보같이 또 당한 자신에게 진저리를 쳤다.' 이윽고 40분이 흘렀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뮤지컬 오디션도 보고 성우 시험도 볼 계획이다.' 되는 것을 해야 한다. 천재성은 노력을 해야 하는 시작점에서 발휘된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명랑과 우울 사이를 보았다.

 

 

류장복_2010.8.19 26:04_종이에 색연필_46.5×38cm

 

2010.8.19 목. 사물을 덩어리 지우고 공기의 존재함을 보라. 머릿속 형상을 좇는 눈에 사물의 존재함은 보이지 않는다. 소비적인 감각은 길들여진 미적 취향을 부추긴다. 동물적인 감각에 가까울수록 야생적 신선도가 높다. 무의식 깊숙이 가라앉은 감각을 끌어올려 있는 그대로 사물을 경험해보자. 결과적으로 기법이 그림에 먼저 보이면 실패다. 기법은 가치의 구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처연한 달빛아래 형광등 불빛 위로 나뭇잎들이 요란하게 대기를 흔들었다. (2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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