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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 오해, 그 미적 가능성 탐구

천경우 작가는 오랫동안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렀던 시간의 의식적인 체험을 통해 무뎌져 가는 감각을 환기시키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모순적인 현상에 담긴 풍부함 등을 탐구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과의 협업을 통해 절제된 표현방법으로 작품들을 구현해왔다. 주로 ‘사진’ 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온 작가의 관심은 사진의 본성과 그것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인간의 기억과 해석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이로부터 파생된 창의적 이미지에 주목하며, 우연과 필연의 계기에서 오는 미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오해는 흔히, 잘못된 해석 혹은 뜻이나 의미를 잘못 파악한 것, 따라서 정정하고 수정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시각 중심의 오래된 믿음에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Believing is seeing, 2007)>라는 예술적 맞수를 놓았듯, 작가는 다시 질문한다. 오해는 과연 그릇된 것인가. 만일 그 오해가 문화적, 경험적 차이로 인해 발생한 해석의 다양성이라면, 다양한 해석의 수만큼, 그것은 세계의 확장이 아닌가.

해석학을 발전시킨 독일의 철학자 가다머(H. G. Gadamer)에 따르면, 진정한 해석은 작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거나 작가의 본래 의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물음을 수용하고 다시 질문하는 대화의 과정을 통해 ‘지평융합(Horizontverschmelzung)’을 이루는 것이다. 또한 해석은 의미를 찾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눈 앞에 보이는 관찰 가능한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기술(description)처럼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며,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평가(evaluation)와도 분명 다르다. ‘해석자들’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제시된 사진 혹은 단순한 행위를 통해 작가와 참가자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적, 경험적 지평에 따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것이며, 이렇게 완성된 사진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마주한 관람객이 또 다시 찾게 될 의미에 대한 것이다.

Interpreters 2011-2013

전시의 제목이자 작가의 최신 사진 연작인 <해석자들(Interpreters)>은 100여 년 전인 조선 후기 즉, 한국사진사의 초기에 제작된 무명의 초상사진을 독일 브레멘에 거주하는 10명의 유럽 화가들에게 전해주면서 시작된다. 먼 이국의 사진 속 인물들과 조우하게 된 서양의 화가들은 문화적, 경험적 차이로 인해, 보았으나 알 수 없는 옷을 입은 동양의 낯선 인물들을 자신의 손끝으로 재현하도록 작가에게 요청 받는다. 그림으로 탄생한 이 사진들과 화가가 마주보는 행위, 그 과정에서 녹아 든 화가의 숨과 시간이 다시 작가의 사진으로 태어남으로써 ‘최초의 사진 속 인물, 그 앞의 사진가, 화가 그리고 천경우’라는네사람의조우가 100년 간의 시간차를 가로질러 하나의 사진 이미지로 귀결된다.

Sebastian,2011

20개의 사진으로 구성된 <세바스티안(Sebastian> 연작은 유럽문화의 오랜 체험을 통해 쌓아온 작가의 의구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회화를 통한 신화나 종교적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각인되는 문제에 대한 작업이다. 작가는 널리 알려진 로마시대 전설의 인물 성 세바스티안(Sebastian)의 이름을 딴 스페인 북부도시 성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으로 가서 그곳에 사는 세바스티안(Sebastian)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찾았다. 그리고 이 여러 명의 세바스티안들에게 르네상스 회화를 중심으로 수 십 개의 성 세바스티안 그림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골라서 동일한 포즈를 취하게 하였다. 광고를 통해 혹은 호기심과 자신의 이름이라는 연대감으로 자발적으로 모인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익명의 20명의 세바스티안들은 현실과는 다른 회화 속의 이 불편한 자세를 고통에 가까울 정도의 인내를 감수하며 재현해 낸다. 등장인물 중에는 역사나 종교적 이유로 또는 이 도시에서 미아로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도시의 이름이 성으로 붙여진 가족들도 있으며, 별다른 이유 없이 이름을 가진 이들도 있다. 이 작업은 ‘이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 관심이며 ‘회화적’ 이라는 상투적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Simultan, 2010

사진 연작 <동시에(Simultan)>는 동일한 장면을, 두 대의 카메라로, 서로 다른 각도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촬영한 이면화(diptych)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하나의 시점에서 특정한 시공간의 사건을 평면에 재현할 수 밖에 없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실재의 재현이라는 사진에 대한 오래된 믿음에 의구심을 표한다. 동일한 현상, 사건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이고 고유한 재구성과 기억에 관한 이 작업의 구상은 몇 년 전에 작가가 어머니와 함께 베를린으로 향하는 여행 길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 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체험을 통해 시작되었다. 이 시리즈에는 지인들로 구성된 2-7명까지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하나의 공통으로 경험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의 시간들이 사진에 축적되어 각기 두 가지의 버전(version)으로 나란히 담긴다.


Seventeen Moments, 2012

2 채널 비디오 작업인 <17개의 순간들(Seventeen Moments)>은 호흡을 맞추어야만 하나의 완벽한 동작을 함께 할 수 있는 유럽의 숙련된 중견 무용수 17명과 함께 실현되었으며, 가장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인 ‘숨쉬기’를 단 한번 멈추게 하는 데서 시작되고 끝난다. 누구도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흔한 말인‘한 순간(a moment)’은 결국 모든 개개인의 각기 다른 매 번의 숨의 길이이며, 숨이 남아있는 인생의 길이는 시간에 대한 감지와 연계될수 밖에 없다는 작가의 생각과, 살아있기 위해서 매번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숨쉬기가 '죽음과 삶의 반복적인 선넘기'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된 배경으로부터 제작되었다. 두 개의 단순한 화면 속 영상은 삶을, 반복되는 끝이자 시작의 순간들로 정의하며, 작가에게 호(呼)와 흡(吸)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맞바꾸는,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해석의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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