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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그의 개인전 제목은 ‘식물적 상태(The Vegetative State)’였다. 최수앙은 이전부터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주목해 왔다. 사회가 거대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사회는 사람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통제하기 위해 모든 것을 표준화하거나 체계화시키고자 한다. 그 사회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때론 원인도 모른 채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작가는 그것을 ‘식물적 상태’라고 지칭하였다. 거대한 힘에 억눌린 것처럼 당시 조각들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거나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다.

2009년 최수앙은 , 등을 발표하면서 소위 ‘미시파시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자본주의와 미시파시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내면화시키기를 바란다. 즉 사회가 원하는 대로 대중이 스스로 행동하게끔 자발적 흐름을 유도한다. 보통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주입된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뜻밖에 그 에너지는 그들 각자의 욕망의 핵에서 나올 수도 있다.

1960-70년대 한국의 군사정권은 산업화와 경제화라는 미명하에 한 사람의 개별적 가치보다는 사회의 집단적 가치를 우선시하였다. 그 세대의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놓은 방향대로 행동하며 자신을 사회의 동력, 주인공, 영웅으로 간주하였다. 세월이 흘러 현재 그것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과연 그들이 사회의 영웅이었는지 희생양이었는지, 혹은 그들이 주체였는지 객체였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많다. 그런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다.
위 작업에서 최수앙이 세대, 이념, 역사를 바탕으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고찰했다면, 이후 작가는 집단이 개개인을 분류하고 그 우열을 가리는 방식을 보다 세밀하게 관찰한다. 집단은 한 개인의 특징과 개성을 무시하고 그를 하나의 커다란 흐름 안에 묶어두고자 하며, 그렇지 못한 것은 비정상으로 치부한다. 그런데 그것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이미 지적했듯이, 매우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먼저 그는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가졌다. 연작의 소재는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보통 지능과 언어발달 상태는 정상이지만, 사회생활이나 의사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청각, 시각, 후각, 미각이 예민한 이들은 특정한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몰두하는 경향이 있으며, 간혹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와 적절히 소통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가 정한 기준과 다르다는 이유로, 의학적 지식을 덧붙여, 사회적 다수자는 그들을 비정상적 존재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어떤 부분에 몰두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 사회의 기준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두 번째는 관점의 문제이다. 는 한 쌍으로 전시된다. 제목 그대로 의 남자는 손을 치켜들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으며, 의 여자는 앉아서 그 말을 듣고 있다. 작가는 남자의 손과 입 그리고 여자의 귀만 또렷하게 묘사하고, 나머지 부분은 흐릿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 조각들은 옷을 입은 채로 재현되었다. 그의 작업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형태이다.

높은 조각대에 놓인 가 낮은 조각대에 놓인 를 압도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화자가 주도권을 가진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의 여자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지만, 반면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은 의 남자는 불안정하게 서 있다. 한편 사람들은 또렷하게 묘사된 부분이 흐릿한 부분보다 더 중요하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또렷하게 표현된 눈, 손, 귀만 보면 화자가 권력을 지닌 것 같지만, 흐릿하게 묘사된 다른 신체를 보면 오히려 청자가 화자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보는 관점에 따라 권력의 주도권은 수시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자의적인 관점과 통념에 의해 사회적 소수자는 생산된다.

최근 최수앙은 평범한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물론 사회, 집단, 구조, 체계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곳에는 개별적인 ‘사람’이 있다.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인식과 내적 고뇌, 그들의 새로운 신체 개념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킨다. 특히 그는 2개의 형상을 동시에 제시함으로써, 주체와 객체, 능동과 수동, 지배와 복종, 드러냄과 감춤, 불변과 가변 등 사람들이 가진 미묘한 심리와 태도를 흥미롭게 시각화하고 있다.

여자 2명으로 구성된 은 ‘자기 인식’과 관련된 작업이다. 거울을 바라보는 한 여자와 거울에 비친 형상이 함께 놓였다. 그런데 한 쪽의 형상은 비교적 또렷하지만, 다른 쪽은 다소 뿌옇다. 또렷하게 묘사된 형상이 실제 모델이고 흐릿하게 표현된 형상이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간주하기 쉽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그것은 팔뚝, 발목, 허리에 새겨진 문신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델은 자신의 반전된 모습을 거울로 자주 접했겠지만, 평면이 아닌 입체로 반전된 자신의 모습을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거울이 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반전된 이미지일 뿐이다. 실제 모습과는 다르다. 이처럼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조차 어렵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시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더 익숙할 지도 모른다. 모델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모습을 슬며시 보고 있다. 그 표정에서 조심스러움, 호기심, 놀라움 등이 배어있다.

에는 2명이 등장하는데, 이 둘은 같은 사람이다. 도 마찬가지이다. 에서 2명의 남자는 각각 손을 상대방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남자는 상대방의 입을 막고 있으며, 팬티만 입은 남자는 상대방의 성기를 가리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에서 2명의 여자는 각각 손을 상대방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팬티만 입은 여자는 상대방의 눈을 가리고 있으며,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여자는 상대방의 팬티에 손을 넣고 있다.

머리에 손을 넣었기 때문에 이는 인형극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서로 손을 넣었기에 누가 사람인지 누가 인형인지 애매한 상태이다. 한 남자는 무언가 말하고자 하지만 입이 막혀 그럴 수 없고, 다른 남자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그의 성기는 손에 가려져 있다. 말하는 것과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드러내는 것과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는 한 사람이 겪는 이율배반적 내적 갈등을 나타낸다.

은 ‘신체의 가변성’을 재고하게 한다. 과거 사람들은 인간의 몸은 불변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의학과 성형이 발달하면서, 신체의 일부를 변형하거나 타인의 기관을 이식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많은 사람들은 신체를 마음먹으면 변형시킬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인공기관과 기계가 신체와 접속될 것이며, 심지어 인공지능이 첨가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체, 주체, 인식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는 서로 다른 신체, 사물, 동물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얼굴을 자세히 보면 어색한 부분이 있다. 만약 사람이 해골을 가면처럼 쓰고 있다면 해골의 이빨이 아랫입술보다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 반대로 해골의 입장에서 보면 해골 위에 피부가 이식된 것 같다. 사람이 중심인지 해골이 중심인지 판단하기 모호한 상태이다.

에서 등은 끈으로 묶여서 옷처럼 보이는데, 그것과 연결된 배는 신체임에 틀림없다. 더불어 이 형상은 신발을 신고 있고 있지만, 신발의 끝부분은 발가락이다. 어떤 것이 인간의 몸이고 어떤 것이 사물인지 어떤 것이 주체이고 어떤 것이 객체인지 역시 분간하기 어렵다.

- 류한승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  Condition for Ordinary
Condition for Ord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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