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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 사유와 실천의 공간

<모퉁이 집(2011)>은 김보민의 작업실이 있는 ‘집’이다. 이 집의 1층에는 작가 김보민의 작업실과 마찬가지로 동양화가인 모친의 작업실이 있다. 이 공간을 그린 것이 다. 김보민은 이번 전시에 를 포함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작한 작업실 시리즈를 내놓았다.
김보민은 최근 몇 년간 서울풍경을 그린 작업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인왕산이 보이는 종로일대, 청계천, 작가가 사는 강서지역 풍경을 라인 테이프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으로 그려냈다. 삼청동, 계동, 원서동과 같은 북촌 지역을 고지도의 형식을 빌려 제작하는 시도를 보여 주였고, 한강을 따라 자리 잡은 여의도, 밤섬, 율도 등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렸다. 김보민은 성실하게 서울풍경을 그리는 방법론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다. 작업실 시리즈는 이러한 그의 작품이 제작되는 장소다. 초기에 그의 <오픈 스튜디오(2004)>를 보고 많은 기획자들과 비평가들이 이 작가의 앞으로의 행로를 점치고 기대했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실’에서는 그 간의 작품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최근 전시장에는 전시하는 작가의 작업실을 전시장에 재현해 작품의 이해를 돕거나 전시장 자체를 아예 작업실 삼아 작업을 하며 작업과정을 공개하기도 한다. 작업실은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매우 사적이며 일상적인 공간이다. 이미 완성한 작품을 보관하기도 하고 전시에 출품되었다 돌아온 작업이 다시 자리 잡기도 하며 새로 작업을 하기 위해 텅 빈 캔버스가 쌓여있기도 한다. 작품제작을 위한 여러 가지 도구가 자리 잡고 있다. 작업실은 이렇게 물리적인 흔적들이 쌓이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적인 기억, 욕망과 좌절 같은 정서적인 부산물의 창고이기도 하다. 따라서 작업실 공간은 작가의 사적인 생활태도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작업실은 예로부터 그림에 자주 등장했다. 일부러 자료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얼른 떠오르는 작품이 몇 점 있다. 17세기 스페인의 궁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아침(1889)>, 구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1855)>같은 작업이다. 반 고흐의 <아를의 아침>은 아를에서 반 고흐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작품이지만 벨라스케스와 쿠르베의 ‘작업실 그림’은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그림이다. 벨라스케스는 왕녀를 중심에 둔 왕실의 그룹초상에 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어 궁정화가로서 자부심을 나타냈다.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는 리얼리즘 선언을 <화가의 작업실>을 통해 시각적으로 옮겨놓았다.
김보민의 작업실 시리즈는 단순히 자신의 사적인 일상과 감정을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빌어 화면에 담아낸 것이 아니다. 벨라스케스와 쿠르베의 ‘작업실 그림’처럼 화가(동양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동시대 동양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숙고한 작업이다. 이 곳 작업실은 김보민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전통적인 형식의 문제를 수없이 생각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곳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작업실 그림’에 반영되어있다. 그러니까 김보민의 ‘작업실 그림’은 이 작가의 일종의 ‘스테이트먼트Statement’같은 것이다.
김보민의 초기작 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이 그림은 라인테이프를 붙여서 그린 실내풍경과 창밖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를 모사해 놓은 장면이 극적으로 대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후 김보민의 항로를 예견할 수 있었던 지표 같은 작업이다.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산수화(<몽유도원도>)가 뜬금없어 보이고 답답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작가를 짓누르고 있는 동양화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는 작가의 심정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이 느낌은 2005년 작 <몽유도원(2005)>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블라인드를 살짝 걷어 올린 창으로 가득 차 있는 이 과거의 명화는 탈출의 통로가 되는 창을 모두 막고 있는 것 같았다.
김보민은 <몽유도원도>뿐만 아니라 <인왕제색도(1751)>, <고사관수도(15c)>와 같은 고전 명화들을 종종 차용한다. 동양화에서 과거의 명화를 모사하는 것은 훈련의 한 방법으로 모사를 통해서 그것을 뛰어 넘어 자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김보민의 그림에는 이처럼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창, 거울, 화판, 액자가 그것이고 그 안에 담긴 것은 고전 명화이거나 현재의 풍경, 관념적인 그림이며 혹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을 때도 있다. 이 ‘그림 속 그림’은 작가의 회화(동양화)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의 실내풍경에 이질적으로 배치된 색 있는 캔버스를 보자. 이 캔버스는 비어있다고 말 할 수도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치 모더니스트들이 회화의 본질에 대하여 질문했을 때처럼 이 캔버스는 회화의 본질과 한계에 대한 질문이다. 화면 속 거울은 작가자신을 투영하는 매체다. 에 있던 거울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그러나 에 있는 거울은 안개 속에 휩싸인 작가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림 속 거울을 통해 작가는 동양화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김보민은 작가노트에서 “‘그림 속 그림’을 통해 메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동양화에 대한 김보민의 이러한 태도는 작품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민화의 책거리 형식을 차용하고 화선지에 번진 먹의 형상으로 그린 개미 드로잉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작업실 시리즈는 2004년 를 제외하고 줄곧 가로로 긴 화면에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본 작업실의 앞, 뒤, 좌, 우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길게 펼쳐놓았다. 화면 안에는 작업실의 풍경이 매우 어지럽게 묘사되어 있다. 냉장고 문과 싱크대 문은 열려있고, 서랍은 삐죽이 나와 있다. 책상 위, 아래 할 것 없이 먹과 붓, 종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작업실에서 한참 작업을 하던 작가는 화면에서 빠져 나와 있다. 먹과 벼루가 놓여있는 작업대, 이젤, 지구본,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사물은 아니지만 강아지가 종종 등장한다. 이렇게 화면 곳곳에 있는 사물들은 작가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김보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작업실 그림을 그렸고 그 기간 동안 몇 번 작업실을 옮긴 바 있다. 따라서 그의 작업실 그림은 모두 같은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항상 작가가 작업실에 두고 사용하는 이 사물들이 그 곳이 김보민의 작업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김보민이 반복해서 그리는 이러한 사물들은 화면에서 사라진 작가를 대신해 작업실의 주인인 작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보민은 동양화의 전통기법에 라인테이프를 사용한다. 대체로 자연경관은 동양화의 전통기법으로, 건물과 도로 같은 인공물은 라인테이프로 그린다. 그래서 항상 그의 작업은 ‘전통과 현대’, ‘현실과 비현실’ 같은 도식화된 이분법으로 설명되거나 이해되기 쉽다. 하지만 라인 테이프라는 이 지극히 현대적인 재료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과 만났을 때 벌어지는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은 그의 작업을 메타회화의 역할로 성공적으로 이끈다. 라인테이프는 김보민의 작업을 지배적으로 특징짓는 요소이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회화(동양화)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김보민의 선에 대한 탐구는 <햇빛(2010)>과 에서 라인테이프를 좀 다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햇빛을 테이프를 붙였다가 뗀 자국으로 만든 직선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출품된 일련의 풍경화들에서는 라인테이프를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강한 빗줄기의 표현이다.)
김보민은 끊임없이 동양화의 정신을 연구하고 동시대적인 표현을 연구한다. 이 전시는 현실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방법론을 단순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양화의 정신은 이어받으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한 실험에 몰두했던 장소인 작업실을 그 결과물로 보여준다.

- 강성은(큐레이터,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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