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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의 상황극’. 공시네의 근작들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아라리오 서울에서의 개인전에서 연작과 연작을 통해 드러났던 이러한 속성은 근작들에서도 작업을 형성하는 중요한 뼈대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고안하여 만든 오브제들은 그가 부여하는 특정한 의미의 표상이 되고, 오브제 간의 상관관계들은 작품의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모태가 된다. 근작인 연작에서도 구름, 사다리, 나무, 종이비행기, 구명보트를 목에 낀 낙타와 같은 오브제들은 우선은 지점토로 작게 만들어지고, 작은 연극무대와 같은 단상 위에 올려져서 무대감독인 작가에 의해 특정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설정된 장면이 다시 정물화처럼 회화 평면으로 옮겨짐으로써 비로소 작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회화 프레임 안에 들어온 상징적 기물들은 의미의 전달자일 뿐 아니라 풍성한 회화적 조형성을 생산하는 주역들이기도 하다. 공시네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림이 구현되는 이러한 단계적 방식이다.
 
각각의 오브제들은 마치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특정 존재나 사건에 대한 심리적 거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시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그 안에서의 개인적 경험, 세계와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획득한 이야기들을 오브제들에 투사하고, 작가의 감정이 이입된 오브제들 간의 상관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연극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회화 프레임 안에서 객관적 시점으로 재구성되면서, 주관적 상징성을 넘어서는 회화적 장면으로 변모된다. 여기에는 오브제에의 몰입, 감정의 투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거리두기라는 몇 개의 심리적 전이의 단계가 있다. 작가가 몰입했던 대상들이 관조가 필요한 하나의 정물화로 변화되면서, 작가는 아마도 오브제가 처한 상황들, 즉 그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하나의 장면으로서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시점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으로 작가 자신은 사이코드라마와 같이 특정 역할을 오브제를 통해 실행함으로써 스스로를 비워내는 정리의 기회를 얻고, 그 결과를 바라보는 관람자들은 무대의 관객이 되는 셈이다.
 
연극무대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공시네의 작업에서 각각의 오브제들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어서, 객관적인 언어체계를 통해서는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개별적 상징의 의미를 알아야만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완전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테니스공을 발에 낀 의자가 작가 자신의 대리물임을 알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의자가 파리채들에 둘러싸여 있는 중 한 장면이라던가, 근작인 연작에서 다리 한 쪽이 부러진 의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장면, 역시 근작인 연작에서 테니스공이 사라지고 의자 위에 방석이 놓여져 있는 것과 같은 장면들이 지닌 우의적인 의미를 해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 자신인 이 그림의 주인공‘의자’가 겪고 있는 심리적 갈등과 성장의 장면들이다. 그러나 오브제에 대한 개별적인 설명이 없이도 시(詩)처럼 의미가 축약된 상징물들이 담보하는 풍경적인 속성은 그 자체로도 개별적 특수성을 넘어서 보다 직관적인 공감이 가능한 소통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나무, 사다리, 구명보트, 낙타, 별, 의자, 변기, 자전거와 같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의 의미는 직설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않지만, 오브제들 간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상상력을 가미한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공시네의 작업은 오브제를 세팅하고 그것을 다시 옮겨 그리는 정물화의 방식으로 완성되지만, 소재들이 암시하는 자연적인 이미지와 암시적인 의미들은 이 장면들을 매우 상징적인 풍경화로 읽혀지게 한다. 바람에 의해 풍차가 돌아가고, 줄을 타고 위로 올라가려했던 의자는 바닥에 쓰려져 있다. 배경의 하늘은 파랗고 하늘에는 흰 구름이 가득하다. 사다리는 위를 향해 곧게 서 있고, 작은 무덤들 위에는 흰 깃발이 나부낀다. 깃발 아래에는 밝은 색 구슬들이 즐거운 기대를 품은 듯 경쾌하게 놓여 있다. 종이비행기들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일제히 동쪽을 향해 조용히 움직이고, 어둡고 무거운 철길 저 편에는 종이 꽃잎들이 흩날린다. 홀로 떠 있는 섬들, 생각에 빠진 듯한 동물, 사려 깊게 느껴지는 여러 가지 기물들은 이 고요하고 몽상적인 풍경 속에 담겨진 성찰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관람자들은 풍경을 조망하면서 개별적 오브제, 즉 조형적 시어(詩語)들의 유기적인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비결정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받아들이고, 여기에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때로는 우울한 몽상처럼 때로는 밝은 서정시처럼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연결되는 자연의 순환을 드러낸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그림자와 빛이 공존하며 상호작용하는 풍경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관람자는 작품 속의 주관적 상징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부적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이러한 풍경이 전해주는 미세한 삶의 표정을 감지할 수 있다. 나무 한 그루 뒤에 서 있는 자전거는 양쪽에 핸들이 달려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갈등과 긴장을 담고 있지만, 배경의 구름들은 가볍고 여유롭다. 목발이 세워져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작은 사람의 모습은 슬픈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밝은 관조의 시선으로 응시되고 있다. 공시네의 작업은 이제는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으나 여전히 마음 아픈 지난 일처럼, 어두움을 통과한 밝음, 혹은 밝음 속에 존재하는 어두움을 표현한다. 양가적 가치들이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삶의 역설과 그것 자체의 부조리함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하는 작가적 시선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공시네의 근작들에서 돋보이는 것은 작가 스스로 경험한 삶의 과정을 회화적 풍경으로 전치시킴으로써 폭넓은 전망을 얻고자 하는 노력이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한 소녀가 하루의 시간 동안 신발을 찾는 내용을 담은 스토리보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삶의 법칙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작가 자신의 행로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그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의 과정과 현재의 시간을 긍정할 수 있게 된 듯하다. 최근 연작의 제목 중 하나인‘yestoday’는 무거운 사색의 과정이 가벼운 일상으로 전도된 현재의 순간을 암시하고 있다. 자연의 느린 흐름 속에서 빛과 그림자의 존재를 함께 받아들이면서, ‘떠도는 섬(moving island)’과 같은 인간에게‘자장가(lullaby)’를 불러줄 수 있는 태도. 만일 공시네가 현재 모색하고 있는 것이 그러한 지점이라면, 그의 시도는 꽤 성공적이다. 빛과 그림자가 하나의 그림 속에 짝을 이루는 동반자라는 것, 가장 어두운 곳을 받아들임으로써 밝아질 수 있다는 것, 인간의 삶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공시네의 작업실 방문 이후 줄곧 내 안에서 맴돌고 있는 생각이다. 개인적 이야기가 회화적 풍경으로 전이되어 있는 공시네의 작업에서 보편적인 삶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에, 결코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 그의 나지막한 이야기들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은주 | 독립 큐레이터,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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