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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좀처럼 ‘화가’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나는 이 말이 풍기는 예스러운 느낌과 전문인다운 고집스러움을 좋아한다. 강석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작가’보다 ‘화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림 그리는 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는 태도에서 나오는 깊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 강석호의 작업이 주는 인상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유화 작업의 꼼꼼한 밀도에도 불구하고 작업 전반에 흐르는 특유의 선선하고 시원한 미감은 그림 보는 즐거움을 환기시킨다. 그 조형적 균형점을 미묘하고 적절하게 포착하는 것이 그가 채택한 회화적 과제로 보인다.

강석호는 인물을 주된 모티프로 하면서 이를 회화 안에 끌어들이는 방식을 매번 달리 해왔다. 인물의 뒷모습 중 둔부의 의복 실루엣을 클로즈업한 작업들에서부터 60여점에 이르는 뒷짐 진 남자 모습의 반복 작업에 이르기까지, 의복 입은 인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정한 듯하면서도 특수한 하나의 지점에 집중되는 일련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최근의 작업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색채가 흑백으로 변화되었다는 점, 그리고 인물의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새로운 연작들은 TV의 100분 토론이나 시사주간지 등에서 발췌한 인물들의 상반신 일부를 트리밍하여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림의 핵심적 내용이 되는 것은 정치인들과 같은 공적 인물들의 제스처이다. 각 인물들은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포지션을 과장하여 드러내는 특유의 웅변적이고 서사적인 손동작을 취하곤 한다. 강석호의 작업에서 흑백의 간결한 구성을 통해 부각된 인물들의 손과 입 모양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들이 취하고 있는 몸짓의 언어적 기능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제스처는 각자가 입고 있는 복장과 함께 인물에 대한 내러티브를 함축적으로 전하는 동시에, 회화 프레임 속에서 주요한 미적 장치가 된다.

인물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정보가 삭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들은 초상화처럼 보인다. 인물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독특한 몸짓 하나에 각자의 타고난 성격과 타인을 향한 태도,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제도적 영역, 구축해나가고자 하는 사회적 포지션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청중들에게 부각시키기 위해 연출하는 제스처는 일정하게 유형화되어 있다. 그 유형들을 주의 깊게 본 사람이라면 이 얼굴 없는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배우와 정치인, 운동선수는 각기 상이한 몸짓 언어를 구현한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대외적 이미지는 순간의 포즈에 함축되고, 그것이 회화의 한 장면으로 전이될 때 각기 다른 시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브레인 팩토리의 이번 전시는 한 명의 인물이 하나의 무대 위에 서듯 하루에 한 점씩만 걸리는 간소한 설치 방식을 취한다. 하나의 제스처가 한 점의 회화가 되고 하나의 전시를 만드는 것이다. 전시 기간 중 작품이 매일 교체되므로, 18일 동안 매일 전시장을 방문해야만 전체 작품 모두를 감상할 수 있다. 한 인물의 단일한 제스처에 집중되는 그림의 내용은 다른 작업들과의 유기적 관계를 배제한 단일 장면의 전시 방식에 의해 보다 간명하게 전달될 것이다.

- 이은주 (브레인 팩토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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