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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미-제3의 공간


이윤미는 항아리 형태로 오려진, 두께가 있는 바탕면에 그림을 그린다. MDF로 만든 패널에 그려진 것은 자연, 일상, 유년 시절 등이 어우러진 자유로운 상상풍경이다. 그러나 그림이 담겨있는 그 항아리는 자신의 모양새대로 그림자를 떨구지 않는다. 어떤 것은 검은 그림자가 맞붙어 있어야 할 곳에 또 다른 그림이 있기도 하다. 여기에 덧붙여 전시 공간 전체를 가로지르면서 이어지는 기하학적인 선은 3차원 공간 안에서 또 다른 형상을 만든다. 그것은 추상도 구상도 아닌 제 3의 공간으로, 색다른 그림자와 더불어 익숙함 속에 낯설음을 자아내는 요소이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공간 드로잉은 중심이 확실하거나 유기적으로 조직화되지 않는다. 가변적인 설치작품 [그 낯설음, 익숙함]은 2차원과 3차원 사이에 이어지는 선들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3차원 공간에 마치 사물처럼 존재하는 선들은 벽면의 항아리들의 좌대 형태로 배치되기도 하고 항아리처럼 입구를 가진 채 서 있기도 하다. 설치물 한켠에 실타래가 놓여있기는 하지만, 선들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끝나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윤미의 작품에서 재현적 익숙함을 교란 시키는 것은 그림자이다. 그림자로 설정된 부분은 실재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간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는 선들은 그림자의 또 다른 변주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작품에서 그림자라는 현상의 세계는 본질(원형)을 따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원형과 모상의 구별에 바탕을 둔 재현의 체계를 비껴간다. 차이를 두고 배치된 그림자나 3차원 드로잉은 결여나 부재처럼 보이지만, 사물들을 안정된 정착이나 고립된 재현의 공간에서 절벽 같은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
본질과 현상의 이원론을 정립하면서 재현주의의 원천이 되어왔던 것은 플라톤의 동굴 신화이다. 동굴 밖의 실체의 그림자라는 투영을 통해 파악할 뿐인 갇힌 인간들에게 그림자는 진리에서 가장 먼 단계를 나타낸다. 스토이치타(V.I.Stoichita)는 [그림자의 역사]에서 플라톤 이후, 그림자는 재현의 역사에서 부정의 의미를 부여받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윤미의 작품은 재현의 전통에 거슬러,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그림자의 역사]는 회화가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간의 그림자에서 최초로 태어났다는 것을 밝힌다. 최초의 유사물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사랑하는 이의 떠남이었다. 재현이 그림자에 근거를 두었던 근본적인 목적은 부재중인 것을 현존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보조물이었다는 것이다.
거울상과는 달리, 그림자 이미지는 타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자아가 아니라 타자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거울이 동일한 단계를 재현한다면, 그림자는 다른 단계를 재현한다. 그림자는 자신(동일자)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유사성likeness인 것이다. 이윤미의 작품에서 낯선 요소를 이루는 그림자와 그림자의 변주는 이미지의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근법을 중심으로 한 상징체계는 근대적 의식의 질서로 내면화 되어왔다. 그녀의 작품에서 실재를 위협하듯 강력하게 제시된 이질적 그림자의 세계는 동일자를 중심으로 구축되어왔던 르네상스 이후의 재현의 체계에 대한 위반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자신은 비어있는 채,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한 항아리는 의식이 만들어 놓은 구별과 질서를 와해시키는 존재의 원초적 수용기(chora)와 닮아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선영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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