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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놀이, 흔들리는 눈

이집트 시대의 정면성의 원칙이든, 중국회화의 부감법이든, 르네상스의 원근법이든 시점(point of view)은 다 같이 진실의 추구란 예술가들의 목표를 위해 고안된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다. 홀바인(Hans Holbein)의 <대사들>이란 인물 초상화 아랫부분에 그려진 두개골의 ‘왜곡된(anamorphose) 형상’은 현세에서의 권력이나 명예의 무상함에 대한 경고(memento-mori)로 볼 수 있는데 라캉(Jacques Lacan)은 그것을 평면과학이 관심의 대상이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주체의 소멸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혁신적인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르네상스의 원근법은 가시세계의 대상을 이차원적 평면 위에 논리적으로 재현하는 과학적 방법임에 분명하지만 그것은 프롤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기초한 것으로서 ‘시선의 독재’를 시각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우리의 동공이 늘 촉촉하게 젖어있고 쉼 없이 움직이는 까닭에 한순간도 정지된 상태로 사물을 포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근법은 보이는 장면을 장악토록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반면에 원말 사대가 중의 한사람인 황공망(黃公望)이 그린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와 같은 작품을 보면 작품 앞에 서서 사각형의 평면 속에 감금된 풍경을 한눈에 전면적으로 소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두루마리가 펼쳐지는 방향을 따라 훑어가게 만든다. 정선(鄭敾)의 <금강전도>는 어떤가? 그것은 창공에서 내려다본 금강산의 정경을 작은 화면에 구현해 놓음으로써 지상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광역의 시점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대상의 충실한 재현이 마냥 드러난 사실만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 그 속에 잠복된 다른 의미나 가치, 세계관을 포착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마르틴 바른케(Martin Warnke)가 『정치적 풍경』에서 밝혔던 것처럼 실재와 필적하는 풍경도 관점(viewpoint)에 따라 매우 정치적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에서 원근법이 걸어놓은 마술을 푼 것이 입체주의인데 그러한 혁신의 중심에 세잔(Paul Cézanne)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평생의 대부분을 액상프로방스에서 작업했던 이 작가는 고향의 생뜨 빅투와르산을 매우 구축적인 방법으로 재현했다. 원근법이 해체되는 자리를 구축적인 색면(constructed shape)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잔은 풍경뿐만 아니라 정물이나 인물에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했다. 세잔의 정물은 르네상스의 원근법적 시점으로는 비논리적이며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으나 르네상스적 시점(perspective)을 극복함으로써 삼차원적 환영(illusion)의 제시로부터 평면성의 성취란 진전을 이룰 수 있었으며 현대회화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

디지털미디어가 지배하는 오늘날, 시점은 이제 더 이상 진실과 맞닿은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컴퓨터는 우리의 생물학적 눈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지점까지 파고들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simulacre)가 실재를 대체할 수 있음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컴퓨터그래픽,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세계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통적인 제작방법에 의존하고 있는 박선기의 ‘시점놀이’는 따라서 전통적인 조각의 소극적 변형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숯을 매다는 방법으로 건축적 공간을 구성했던 이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시점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을 때 그 속에 비상한 위트가 길들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하게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이란 교사가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가 세상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상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말하자면 치밀한 계산과 정교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정물은 공간에 놓인 사물을 새롭게 볼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라자리니(Robert Lazzarini)와 같은 작가가 컴퓨터 스캐닝, 래피드 프로토타이핑(rapid prototyping)과 같은 디지털 특수효과와 기술을 동원하여 컴퓨터상에서 왜곡된 물체를 다시 물리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박선기의 경우 시점에 따라 대상이 보이는 결과를 드로잉을 통해 시각화한 후 그것을 MDF나 석고와 같은 재료를 가공하여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드러난 결과는 유사하다고 할지라도 그 출발점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박선기는 물질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가공을 통해 일상적 정물들을 시적(詩的)으로 압축된 대상으로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이 물체를 만드는 과정은 거의 장인적 몰입과 수도자의 엄격한 수행에 필적하는 노동의 수고를 필요로 한다. 결과적으로 그가 만들어낸 사물들은 결코 실재가 아니면서 실재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전복시키고 우리의 시점을 뒤흔든다. 세잔의 정물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시선의 여린 흔들림(oscillating)같은 것, 작품 자체는 매우 견고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정박하지 못하고 심리적 주기운동을 일으키게 만드는 그 특이성을 박선기의 작품이 지닌 장점이자 매력으로 볼 수 있다.

언젠가 시걸(George Segal)은 세잔의 정물을 입체로 제작한 바 있는데 박선기의 정물들은 세잔의 정물을 뒤흔들어 재구성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세잔이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하고 견고한 화면의 구성을 위해 정물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박선기는 그것을 뒤흔들어 약간 비껴간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실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사실은 허약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물들을 실눈으로 보면 달리 보일 수 있음을 경험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포착하여 재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선기는 그것을 실현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마련해 놓은 시점놀이의 이 유희의 장으로 들어오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최태만 /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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