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ve

검색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농담 아녀!”
                                           
 
<농담 아녀!> 연작에 관하여

4명의 작가로 구성된 이 드로잉 전시에 선보인 내 작업은 이명박 정부 치하(이렇게 말해 놓고 나니 ‘일제 치하’라고 말할 때 그런 것처럼 왠지 섬뜩해진다)에 사는 동안 쌓여온 피로감이나 울화와 관련이 있다. 특히 2010년 들어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통용되던 많은 개념들의 의미가 실종되어 버리는 일종의 언어의 공황 상태에 직면했음을 많은 학자와 언론인, 비평가들이 지적해왔다. 이를테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와 국회의원들이 ‘공정한 사회’를 운운하면서도, 많은 정책과 제도적 언행에서 이미 공정성이나 사회적 정의와는 배치되는 행태를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에 내놓은 내 드로잉들은 거의 말장난처럼 국정을 운영하는 이른바 지도자 그룹들의 불의(不義)를 불편해하는 한 예술가의 소극적 반응이다. 여기서 나는 정치가들을 대놓고 비난하는 대신, 좀 더 익살스럽고 우화적인 스타일을 구사했다.

1. , 골판지 5장 포개고, 그 위에 콘크리트 조각을 주워 얹었는데, 맨 위 골판지 2장에 그것이 앉기 적당하도록 홈을 파주어 앉힘. 골판지 크기는 한 두 뼘 × 두 뼘 반 남짓.

2.<니가 그랬지?>, 조각대 뉘인 데다, 콘크리트 조각하고, 후련하게 말라 비틀어진 장미 꽃받침을 주워다 마주 보게 함.
* 누가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사실은, 다들 안다. 하지만 대체로 소문에 그친다. 공식화되지 못하는 그 앎은 진실의 차원에 진입하지 못한다. 진실의 차원을 넘보는 순간 이른바 정치, 헤게모니, 색깔, 이런 낱말이 끼어든다. 그런 거 앞에서 진실은 뒤틀리고 사람은 주눅 든다. 세계 전체가 황폐해진다(최근에 어떤 배 한 척이 두 동강 나면서 일어난 파문을 놓고 보라). 질문할 수 있는 자격을 아무나 지니는 게 아니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질문할 수 있는 자/세력만이 대답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자문자답. 다른 자/세력은 그 문답판에 끼어들 수 없다. 끼어들면 맞는다. 숨 죽인 채 구경만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자는 자신을 항상 괄호 안에 숨겨둔다. 질문은 늘 바깥을, 자기를 뺀 모든 남에게 향한다(지난 봄, 기자회견장에 나와 말하는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 대변인의 시선을 떠올려 보라. 마치 기자회견 보고 있는 ‘국민’이 범인이라는 듯한 그 방자한 눈초리를!). 자성하지 않는 질문은 폭력이다. 무얼 더 말하랴.
3. <아,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구나!>, 보기 조금 불편할 정도로 높직하게, 골판지를 오려 허름하게 선반 만들어 붙이고, 확 구긴 종이잔을 그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얹어 둠.

4.<왕관>. 종이 오려 만든 왕관, 삽 이미지를 배치하여 관식(冠飾)을 디자인함, 지름이 한 20cm, 높이는 40cm 안팎.

5.<예에?>. 오며가며 주워두었던 나뭇가지를 깎아서 회초리와 몽둥이를 만듦. 긴 것이 그저 한 60cm 남짓.
* 이것은 앞에 설치된 작업 <니가 그랬지?>와 상응한다. 그렇지만 이 회초리와 몽둥이를 가지고 누군가를 패겠다고 벼르는 건 결코 아니다(장관과 대변인, 그리고 그 윗선, 그리고 그 ‘라인’에 속한 모든 자들은 안심하라). 오히려 이 회초리·몽둥이는 나 자신을 향하는 것이다. 내가 오죽 만만하면 저들이 저 짓을 하고 짓까불겠는가 하는 맘이 드는 거거든. 깨어 있어야 해.
그러니 이 몽둥이며 회초리에 굳이 이름 붙여두자면 <나 자신을 엄히 경계하고 늘 성찰하자는 뜻을 가지고 부러 만들어 둔 회초리와 몽둥이> 쯤이 되겠다. 한자로 옮기면 <자경봉自警棒>과 <자성초自省楚> 쯤. 이 회초리 앞에서 내가 간간이 멈칫, 움찔, 하게 되면 그만이다. 그럴 경우 저 회초리와 몽둥이는 곧 세상이 화(化)하여 나한테 당도한 것. 곧, 세상이 나에게 전하는 어떤 뜻이겠다. 그러니 까불지 말아야지. 되도록 덜 한심하게 살아야 한다.

6.<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요 우리네 가슴엔 수심도 많다>. 항일 투사, 민주화 운동 열사, 노동 운동 열사, 광주 항쟁 열사 들의 얼굴사진을 손톱 만하게 오려, 밤하늘 잔별인 양으로 벽에다 붙임.

* 앞에 소개한 <왕관>과 함께 이 작업은, 아일랜드 출신 미국 작가에게서 날아온 영감을 살려 기운 쓴 흔적이다. 공부하다 쉬는 시간에 담배 물고, <아틴아메리카> 리뷰란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어느 사진이 문제였다. 출품작 가운데서 선정된 그 사진은, 지도를 구겨 대충 둥그렇게 만들고 그것을 천장에 매달아 놓은 것을 찍은 것이다. 작품 이름은 <공Globe>, 작가는 톰 몰리Tom Molly였다. 리뷰를 몇 줄 훔쳐보니 그 자는 나하고 동갑내기였다. 갑자기 입맛이 확 돌아, 미간을 좁히고 읽어갔다. 비평가 바바라 폴락Barbara Pollack이 기고한 리뷰가 묘사하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 다음 두 작품으로부터 나는 비판적인 영감을 얻었다: 1) : 미군이 아부그라이브에 수감된 이라크인들에게 뾰족한 모자가 달린 망토를 걸치게 하고 장난 친 그 악명 높은 사진으로부터, 그 인형 이미지를 가지고 종이 왕관을 만듦; 2) : 자살 폭탄 테러로 순교한 아랍인 50명의 얼굴을 드로잉해서 각각 액자에 넣어 전시함.
폴락이 묘사·해석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몰리의 출품작을 상상했고, 그 다음엔 그것을 곧 내가 연루된 문맥 안에서 번역·전용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내 <관>은 몰리의 에, <청천 하늘엔...>은 에 각각 대응한다. <아틴아메리카>라는 글로발 뚜쟁이 덕에, 동갑내기 Molly와 내 옷깃이 스쳤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흥미로운 점은 더 있다. 이를테면, 몰리가 대영제국이 선사한 식민주의적 조건 안에서 나고 성장했다는 점(나도 비슷한데); 그런 그가 1세계 핵심부의 미술대학 교수가 되어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비평하는 급진적인 메시지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 그것이 글로발 미디어인 <아틴아메리카>에 실려, 그것을 정기구독하는 극동의 주변부 지식인인 나한테 전해지는, 이 희한하고 감격적인 배려.
또 한 가지. 리뷰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질문인데, 우리는 글이 묘사해주는 바를 통해 그것이 묘사하고 있는 대상에 어떻게/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그래서 떠오른 것이, “그럼 이 글이 묘사하고 있는 대로 내가 작업을 해볼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내가 소속된 맥락 안에서 그의 태도와 아이디어, 메시지를 번역·전용해보기로 한 것.
아무튼, 몰리야, 반갑다. 언제고 우리 만나서 막걸리라도 한 말 놓고 세상 사는 얘기나 좀 하자.

김학량


 
여러분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세요? 작가정보 페이지 이동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댓글(0)

현재 0byte/ 최대 500 byte

등록

Quick Pag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