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대에게 가는 길―한글 반흘림 전선체 연습: ‘딴 데서’. 김수영 선생 시 <절망>에 나오는 문귀 ‘딴 데서’를 전선 구부려 쓴 것을, 내 공부방 여기저기라든지 바깥으로 모시고 나가 이곳저곳에 놓아봄. 놓아보고 물끄러미 바라며 시를 되뇌임. 그래구 나서 사진 찍음. 다 찍구 나서는, 글씨-전선을 쭉 펴서 본디 모양으로 돌이켜 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2008.
* 그러고 보니 여기, 한 세월 볕과 바람과 더불어 이승을 노닐다 문득 이승 허울을 벗어버린 마른풀처럼, 꼿꼿이 선 철사가 있다. 헤아리기 어렵지만 그는 어디선가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얻은 바 있었고, 지금 또한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 오고-감의 도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방금 언어(‘딴 데서’)였던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훨씬 전에 어떤 인간적 소용(구리전선)에 닿아있었음을, 그리고 그 이전, 인간적 소용의 영역에 들기 전에 또한 그대로 무엇이었음을, 그의 육신은 기억하고 있을까? 가뭇한 세월에 걸쳐 자신이 숱한 번신(翻身)과 전생(轉生)을 거듭하여 오늘에 당도하였음을, 또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을까?
* 김수영,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速度)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서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絶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