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ive

검색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권기범_ 낮은 목소리의 설득

권기범의 작업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은 자연의 그것들이다. 가끔 도시의 현란한 이미지들이 담기도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중심이 되는 것들은 자연 속의 이미지들이다. 기하학적으로 형상화된 꽃의 이미지가, 버드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이, 그리고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재현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통적인 기법으로 화선지에 적묵법이나 배채법 등을 이용하기도 하고 지두화(指頭畵)를 선보이고 있지만, 이들과 함께 전시되는 영상이나 설치 작업들 또한 그의 작업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동양회화의 자연주의 견해와 현대 문명의 대립적 성향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다양한 매체와 형식의 실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전시에서는 평면작업에서부터 공간설치, 그리고 영상작업에 이르는 작업들을 함께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업에서도 자연미와 인공미 등의 대립적 요소들과 상충되는 방법들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첫 개인전부터 꽃을 주제와 소재로 삼아 그려온 권기범은 이번 전시에서도 꽃의 이미지를 선보이다. 권기범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이 꽃은 정밀하게 묘사된 형태는 아니다. 언뜻 보면 기하학적이고 디자인적인 이미지의 이 꽃을 작가는 ‘Glass Flower'라고 명명한다. 다소 진부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꽃이라는 소재에 대해서 작가는 개인적인 감흥에서부터, 철학적인 의미와 동양화론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인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작가는 꽃이 생성해서 시들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창작을 하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가는 꽃이라는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그리고 싶은 것을 선택하여 그린다는 명확한 작가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꽃의 이미지를 마치 파편화한 듯 형상화시키며 해체주의와 존재태의 의미를 결합시키고 있다.
이러한 꽃을 담고 있는 평면 작업은 평면 회화 속의 선-필(筆)을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설치작업이 함께 연출된다. 근래에 작가는 시각적 형상의 본질인‘중력’에 대한 생각들을 고무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드러낸다. 평면에 담긴 꽃의 이미지의 선들은 전시 공간에서 고무줄로 확장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고무줄을 통해서 선이2차원의 평면에서 재현되는 경우와3차원의 공간에서 연출되는 경우의 시각적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평면 작업들과 함께 연출되는 영상작업은 작가가 지난해 중국에서 채집한 이미지들 중의 하나이다. 전통적인 회화의 소재로 쓰이는 소재들인 호숫가의 물결과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영상으로 구성했다. 영상작업이라고 하여, 시각이나 사운드가 감각적이거나 동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마치 잔잔한 호숫가의 나뭇가지의 흔들림을 담고 있는 동양화를 스틸컷으로 보는 듯 고요하다. 서로 다른 형식의 작업들이 한 공간에서 연출되면서, 자연과 인공 그리고 이들의 조형적 질서에 대한 새로운 실험들을 볼 수 있는 권기범의 작업은 다양한 매체의 복합적인 연출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많은 이머징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작가만의 재기발랄함이라든가 화려함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의 작업은 소재적인 측면에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이슈화되거나 눈에 띄게 반짝거리는 작업들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작업들은 더욱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를 내려는 듯 하다. 그러나 그의 꽃 작업과 마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영상이 말해주듯, 권기범의 작업은 충분하고 진솔한 동기와 이해에서 출발하기에 작가는 다양한 형식의 실험과 기본에 충실한 작업들을 오가며, 이들을 즐길 수 있는 듯 하다. 마치 그의 영상속의 잔잔하지만 꾸준한 호숫가의 파문처럼, 조요하지만 지속적인 실험과 새로운 모색이 권기범의 작업을 지속시킨다.
작가는 그의 작품의 토대를 입의(立意)라고 한다. 뜻과 정신을 중시하는 이 표현처럼 뜻을 담고 있기에 그의 작업은 보는 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김윤옥 /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구조적 충돌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세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설치된 두 면의 스크린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지나는 바람에 몸을 실은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상이 그림자처럼 투영되는 고즈넉한 이미지와 격렬하게 작동 중인 엔진처럼 쉼 없이 에너지를 뿜어대는 기계 문명과의 대조이다. 한 세계는 고요한 서늘함이, 다른 세계는 뜨거움이 지배한다. 관객이 어느 화면을 먼저 보든 간에 극단을 이루는 두 세계의 충돌을 피하기는 힘들다. 권기범은 이 전시에서 성질이 다른 두개의 거대한 판을 충돌시켰다. 그의 그림에서 깨진 유리와 꽃을 한 화면에 중첩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먹판을 대고 손으로 그린 지두화법과 기하학적인 선 및 색채면을 대조시키는 작업을 통해 인공과 자연, 계산과 우연 사이의 관계를 실험해 왔다. ‘충돌’이라는 전시부제에도 드러나 있듯, 권기범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대조되는 두 항 사이의 관계이다.

이번 전시는 두 개의 동영상이 주를 이루는데, 하나의 화면에서 대조적인 두 가지 이미지를 충돌시키는 이전의 방식이 현란한 동영상 편집을 통해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이전의 작품이 그림이라는 형식을 통해 대조되는 두 영역 사이의 조화가 중시되었다면, 이 전시의 작품은 균형 감각보다는 큰 폭의 낙차를 가지는 에너지의 배분을 통해 극적인 충돌을 꾀하고 있다. 문명의 메카인 도시는 선과 평면으로 이루어진다. 반면에 물질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상호 침투하는 자연은 기하학에 의해 분할될 수 없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권기범의 작품에서는 자연이든 문명이든, 현실이나 현상 그 자체가 그대로 제시되는 법은 없다.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머물렀던 중국의 한 도시에서 채집한 상반된 두 이미지는 편집이라는 적극적인 구성의 행위 말고도, 색과 리듬의 조절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부각시킨다.
사실 아무리 자연을 지향한다 해도 예술작품은 인공의 산물이다. 가령 그의 그림에서 자발적이고 우연적인 효과를 발생시켰던 지두화법은 오랜 시간 묵의 수련에 의한 결과일 것이고, 이번 전시의 움직이는 사군자 같은 화면 역시 미적 감각에 의해 고도로 조절된 결과물이다. 이미 언어를 통해 사회적인 존재가 된 인간에게 자연적인 것이란 사물자체라기보다는, 인공성과 필연성 이후에 축복처럼, 또는 재난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충돌’이 가지는 생산적이거나 파괴적인 측면이다. 작품이란 이 극단의 낙차 속에서 펼쳐지는 게임이다. 권기범이 다루는 ‘자연적인 것/인공적인 것’의 대조는 긴장감과 안정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 이항대립을 넘어서 있다. 구체적 대상이 선험적인 범주를 통해 구조화되지만, 동시에 구조는 변화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펼쳐지는 대조되는 범주들 간의 다양한 만남에는 상호삼투되는 또 다른 차원이 간과되지 않는다.
가령 나뭇잎의 고요한 흔들림에는 문명에서 배제된 타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고, 분주한 도시 풍경에는 묵시록적인 침묵이 깔려있다. 자연 속에 문명이, 문명 속에 자연이 스며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질서 속의 무질서,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층위로 변주될 수 있다. 이러한 이상한 섞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의 동시적인 관계맺음의 방식은 구조주의적이다. 그것은 다양한 경험적 실체를 구성적 단위로 나누고, 이 단위들이 상호관계의 체계로 조직되는 방식을 말한다. 그의 작품은 마치 신화처럼, 인간의 정신의 구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하나의 영상에 비유된다.
구조주의를 확립한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음악이라는 모델을 전제했듯이, 권기범의 작품에는 실제로 들리지는 않지만 잠재적인 음악성이 깔려 있다. 나뭇잎의 영상에 흐를 법한 가느다란 선율과 화음의 조화, 그리고 도시 영상의 역동적인 리듬 감각이 그것이다. 자연이든 문명이든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현실의 심층에 흐르는 내적 논리는 추상적인 도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감수성으로부터 퍼 올린 것이다. 그러나 느껴지고 관찰 가능한 현실이 작품으로 안착되면서 한정된 변수로 환원되는 경향이 있다. 이 변수들은 언어처럼, 작품의 내부적 관계망을 이룬다. 자연의 상징으로 나오는 식물의 영상은 마치 꿀벌의 언어처럼 자연적 현실과 고착된 관계를 가진다. 문명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번잡한 도시풍경에 가해진 색면 처리는 지시물과 단절된 관계를 가지는 인간적 언어의 특징을 보여준다. 문명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대상으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는 정신의 방어벽과도 같은 장치가 두드러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고 인간을 대상에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깨진 유리와 꽃을 결합시켰던 ‘Glass Flower' 시리즈부터 나타나는 것이지만, 이번 작품도 식물적인 비유가 있다. 식물이 자라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계속적인 분절화가 일련의 형태를 이루고, 그것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생물의 자연스러운 발생과 의미론적 공간이 맞물리는 것이다.
버드나무 잎이 흔들리는 광경은 자연 그 자체라기보다는 하나의 모델이다. 수학자인 르네 톰은 하나의 현상을 다룰 때, 그것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이 현상 속에서 기저 공간 속에 주어진 형태로 확인가능한 안정적인 요소들을 분리해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림자처럼 처리된 자연적 대상은 존재 그 자체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복수적인 공간들을 상정하고 있다. 투사에 의해 관찰되는 형태는 현실적 사물들의 환영적 성격을 드러낸다. 도시 장면 역시 구체적인 현상이나 실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에 대한 모델을 구성하고 있다. 다만 자연의 장면에서는 지속의 느낌이, 문명의 장면에서는 불연속의 느낌이 강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운동하는 연속성을, 도시 장면은 기하학적인 정신으로부터 유래하는 불연속적인 형상성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과 생명, 형상과 질료, 자연과 문명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두 가지 상징체계와 세계관을 압축한다. 철학자 이정우는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철학이라고 지적하면서, 형상철학은 이 세계의 참모습은 그 자체는 변하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순수한 존재들, 즉 형상(idea, eidos)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골격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이 세계는 형상과 질료가 만들어내는 세계이다. 질료적인 차원의 질서는 혼돈스럽고 유동적인 흐름의 세계이지만, 이 질료의 질서가 형상의 질서에 의해 지배됨으로서 우주는 질서를 지닌다. 흐르는 세계에서 어떤 동일성을 잡아낼 수 있는가가 형상 개념의 단초이다. 이 질료/형상설의 구도에 있어 질료는 연속성의 성질을, 형상은 불연속성의 성질을 부여받게 된다.
권기범의 작품에서 질료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두화법으로 그려진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과 그것의 연장인 생기 있는 자연 영상이다. 반면 형상에 해당하는 부분은 기하학적인 선과 색면이고, 그것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도시 영상이다. 질료가 어떤 우주적 질서를 갖추기 위해서는 형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권기범은 기하학적 형상의 사용을 통해 무한하게 흐르는 질료에 시작과 끝이 있는 명료한 테두리를 부여한다. 연속성은 끊어지고 불연속성이 도입된다. 동시에 질료는 작품의 기저를 흐르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이자 무의식적 차원이 된다. 연속과 불연속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생산적인 교환이 이루어진다. 추상적인 코드로 이루어지는 현대문명과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지니는 야생의 세계가 대화하는 것이다. 두 세계가 성공적으로 접촉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구조적인 모델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기범은 실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확정하고 이것이 관계 맺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단순한 관찰을 넘어선 ‘꾸준한 분류를 통한 증류’(레비 스트로스)를 통해 어떤 상황에 담긴 진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적 방식은 추상적 환원주의의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권기범의 작품이 심미주의 및 형식주의적인 방식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특히 자족적인 완결감이 두드러진 그의 회화작품이 그렇다. ‘복잡한 가시성을 간명한 비가시성으로 치환하는’ 환원주의적인 방식은 인간정신의 범주에 근거하는 보편 문법을 지향하면서, 복잡다단한 현상들을 명쾌하게 정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닫혀있는 세계라는 한계를 가진다. 보편적인 메타 언어의 남용은 관념적인 총체성에 머물기 쉽다. 철학자 미셀 세르가 지적하듯이, 최선의 종합은 최대한의 차이가 드러나는 장에서 생겨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충돌’에는 차이의 극대화에 대한 의지가 존재한다.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지엽말단의 문제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동세대 젊은 작가와 달리, 권기범은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범주화의 문제에 골몰한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지향성은 어떤 구성 요소와 변수를 취하든 구조적 안정성으로 귀착되는 면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형태를 또 다른 형태로 전이시키는 불연속적인 계기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진정한 바탕 구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선영 / 미술평론가





 
여러분 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세요? 작가정보 페이지 이동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me2day facebook

댓글(0)

현재 0byte/ 최대 500 byte

등록

Quick Pag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