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항상 꾸던 꿈이 있었다. 방위 시절 근무하던 부대 소방대의 차고를 배경으로 군복을 걸친 나는, 무엇인가 과업을 수행하면서 끊임없이 제대 날짜를 헤아리고 있었다. 물론 꿈 속의 나는 이것이 꿈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면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제대할 때가 지났을텐데...’ 라고 되뇌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히 입대한지 몇 년이 된 것 같은데도 아직도 제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혹시 내가 날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아니면 부대에 무슨 사정이 있으면 이렇게 제대를 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그저 무기력하게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릴 적에 꾸던 또 다른 꿈이 있었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어른들은 키가 크느라 그런다고 했다. 주로 학교 가는 길에 있던 육교 위에서 떨어지곤 했는데, 그 육교라는 것이 어떤 때는 폭이 좁은 평균대 모양이기도 했고 또 다른 때에는 부실공사라도 한 것처럼 매우 큰 폭으로 출렁대곤 했다. 매번 떨어지는 순간에 꿈을 깨곤 했었다.
언젠가부터 두 개의 꿈이 오버랩되었다. 떨어지고 있으면서도 결코 바닥에 닿지 못하는 추락의 꿈. 누가 밀어서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누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계속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인 꿈. 비명이나 애원의 목소리도 낼 수 없는 꿈. 발버둥이라도 치고 있는 덕분에 더 이상 하강하지 않고 있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어도 현상유지는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몸부림칠 수 밖에 없는 꿈.
그런 꿈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지게 되면서부터 아니 배가 나온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미술에 대해 별로 화가 나지 않게 되면서부터, 백주에 길거리에서 혹은 작업 중에 아니면 술자리나 학교에서 사람들 틈에서, 두 눈을 멀쩡하게 뜬 상태로 꾸게 된 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