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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로 반복 재생되는 욕망


현대의 도시 풍경은 거리를 장식한 형형색색의 네온, 하늘을 에워쌓는 초고층 건물, 매스미디어의 자극적인 이미지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시선을 압도한다. 밤을 화려하게 밝히던 네온사인 빛이 아침이면 사라져버리듯 욕망의 이면에는 부재와 결핍이 자리한다. 불빛을 향해 돌진하는 하루살이처럼 현대인의 욕망은 인공의 빛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되고를 반복하는 중이다. 김성수는 이러한 물질문명 속에서의 현상과 그 이면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의 개인전 ‘Solist’에서는 건물과 인물 작업의 병치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가 안고 있는 과잉과 소외의 간극에 접근한다.

<메탈리카metallica> 연작은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메탈리카>는 콘크리트 건물의 창문을 조합한 <파사드facade>(2001)를 시초로 초고층 빌딩의 네온 풍경인 <네온 시티neon City>(2006)와 철골 건축의 단면인 <메탈리카metallica>(2007)가 유리 피라미드의 구조로 진척된 것이다. 고대 문명의 완벽한 이상향, 이데아로의 열망이 담긴 피라미드로부터 형상화된 유리 피라미드는 산업문명의 상징이었던 철골과 자본주의가 만나 하이테크 건축으로 실현된 것이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산업사회의 철제 건축으로부터 유토피아적 희망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통해 역사적 복원의 형식을 띈다는 경험적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비추어 봤을 때, 유리 피라미드는 유리와 철골 골조로 가득 채워진 대도시의 환상이 이상적 문명인 고대 피라미드의 부활을 통해 신유토피아로 향하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지닌다. 작가가 <메탈리카>에서 취하고 있는 유리 피라미드 구조는 집단의 소망이 자본주의 체계로 거대화된 상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유리 피라미드의 강철 프래임 구조는 <메탈리카>에서 투시화된 격자형 단면으로 등장한다. 철골 건축에 있어서 프래임 구조는 그리드(grid)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건축물의 창문에서 볼 수 있는 격자 구조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메탈리카>에서 프래임 사이의 반복되는 유리면인 창들은 인공적이고 강렬한 색채로 균일하게 매워져 있다. 김성수가 구현한 유리창은 내부를 투영할 수도 외부를 바라볼 수도 없는, 다시 말해 어떠한 사물의 깊이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를 표상한다. 대도시 건축이 철골 유리 구조를 통해서 내세우는 세계를 향한 개방성과 투명성은 작가의 화면에서 좌절된다. 여기서부터 김성수의 내러티브는 구체화된다. 창을 통해 어디로도 투과할 수 없는 시선은 반복되는 그리드 구조의 표면에 머무른다. 즉, 시선이 화면 자체에 봉인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의 표면화된 욕망의 실체로,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 분열, 괴리를 암시한다. <메탈리카>는 그리드 구조가 내포한 대도시의 욕망을 어떠한 깊이도 없이 평면적으로 반복되는 배열로 확장하며, 그러한 그물망 속에서 환상을 지속하는 현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물질문명을 향한 과도한 욕망은 <메탈리카>의 표면에 머물며 대도시의 풍경처럼 시각적인 충격과 자극을 준다. 김성수는 인물 연작인 <멜랑콜리melancholy>를 통해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접근한다. 커다한 화폭 속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인물의 시선은 허공을 향하고 있으며,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다. 매끈한 피부 결은 그 자체로 충만한 물질성을 보여주지만 상처 나기 쉬워 보이며 닿을 수 없는 경계로 다가온다. <멜랑콜리>에서의 인물이 환기시키는 것은 <메탈리카>의 스펙타클과 화려함 뒤에 가려진 현대인의 공허하고, 괴리된 심상이다. <멜랑콜리> 연작을 좀 더 살펴보면,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패턴이 줄무늬임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반복되는 줄무늬 패턴은 앞서서 살펴 본 그리드 구조와 연관성을 가진다. <메탈리카>에서 그리드 구조가 현대 사회를 현상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멜랑콜리>에서의 그리드는 현상의 이면에 자리하는 외상을 반복하는 구조로써 드러낸다. 인물의 표정이 환기하는 정신적 부재, 공허, 소외의 상태로부터 줄무늬 패턴은 개인에게 무력하게 내면화된 심리적 증후군을 멜랑콜리하게 반복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철골 유리 피라미드의 프래임 구조는 자본주의 특유의 인공성과 유토피아의 표면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이와 대비적으로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심상의 인물은 현상으로부터 분열된 실재와 외상적인 현실을 표면화한다. 이로부터 김성수의 회화가 환기하고자 하는 것은 거대 문명 속에서 소외되어가는 개인의 주체성이다. 이는 동시대성으로부터의 요구나 억압의 표출 그리고 이면의 폭로에서 더 나아간 것으로 근본적인 인간성, 즉 휴머니티의 회복과 관계된다.

심소미 / 갤러리 스케이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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