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 움직임과 고요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 인간은 계속해서 그를 둘러 싸고있는 환경에 영향을 주고 또 받아왔다. 이처럼 우리의 환경과 그 질서로서의 정신 또한 커다란 흐름에 역행해서는 생존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주변의 환경과 인식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소외된 인간, 민족의 자존의식없이 경제적 힘에 의해 매몰되어가는 사회, 사소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있는 단격적이고 근시안적인 생각 등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의 환경은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 육체에 정신과 같이 이원론적이 아닌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이 잇따라 일어날 뿐이다. 그 어느 존재도 분리돼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가 없다. 잇따라 일어나는 과정이 곧 실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즉 一과多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근택의 그림은 격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이나 구도는 그대상이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모습이 아닌 그 뒤에 숨어있는 어떤 힘의 추적이기 때문이다. 늘 눈에 의해서 길들여 진 관념과 평상의 형식이 아닌 자유로운 의식의 분출인 것이다.
어떤 형상이 아닌 집약된 점, 선의 율동,형상속에 내재된 에너지의 만남이다.
이러한 전개과정 또한 무엇을 옮김이 아닌 화면이라는 대지위에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혁신이다. 유근택의 화면에 자리잡고 있는 점과 획은 자연과 대상이 본인의 내면과 연결되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대학시절부터 가져왔던 수많은 사생과 여행은 스케치북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요, 아마 사라져 버린 듯이 눈이 보이지 않는 대지의 호흡을 몸으로 간직하려 하고 있음이다.
그 박동을 거칠게 휘몰아 치듯 토해낸 것이 바로 유근택의 그림인 것이다.
꽃이라든지 하늘이라든지 하나의 현상이 아닌 자기의 감정을 대지의 숨소리에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등장되고 있는 인간연작 또한 역사의 인물(독립운동가 등)을 유물로서가 아닌 역사의 질곡속에 파묻힌 인간의 사건과 그내력을 찾아내어 현실과 연관시켜 하고있다.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왕조의 모습, 전쟁의 홍수를 헤치고 나온 피비린내나는 선열들 갇혀있는 인간의 군상들 이모든 사람들이 섬찟하리만큼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 인간의 군상들이 제각기 표정을 가지고 우리를 직시하고 있다.
그 위에 검은 먹선으로 단순하고 강직하게 그은 획의 인물들은 투명인간처럼 중첩되면서 화면을 묵시적으로 인도하고 있다.
거친 갈필의 순간적인 내리침이나 맑은 담채의 부드러운 그음은 움직임과 고요가 단번에 만나는 극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탁한 듯한 회색톤의 분주한 덮음, 귀를막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한 적막감은 검은 먹의 기둥은 풀림과 엮음이 하나로 만나는 또 한번의 연출을 시도하고있다.
전혀 예기치 않은 듯이 꾹 눌러버린 주홍색의 부유하는 듯한 색점은 화면을 이끌어 가는 주인처럼 수많은 구상과 사연을 당연코 압도 하고 만다.
이번 전시회의 대표적인 <유적-토카타(질주)>라는 작품은 세로 2.65m에 가로 39m나 되는 초대형이다.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유근택의 갈등은 강인한 물줄기처럼 목마른 우리민족의 한과 설움의 대지를 적셔주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 대지와 그 한가운데 서있는 인간이 서로 부둥켜 않고 화해하려 하고 있다. 서로 상생(相生)하며 이해하려하고 있다. 갈등의 요소를 새기면서 역사적 시간속의 한 인간으로서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화면 중간에 등장하는 커다란 구조물과 인물형상은 어떤 초 자연젹인 힘이 가득한 항구적이고 견고한 영적존재같이 느껴진다. 그 형상 자체에 대한 숭배보다는 영원을 향한 염원같다. 화면안에 새로운 긴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발산의 형식이 아닌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를 모으는 응집의 형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 金 容 代 / 호암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