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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h-up Strategy


인간이란 시간 속에서 특별해지고 시간 속에서 잊혀지는 존재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역시 시간 속에서 구체화된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조합 속에서 문화를 만들어 낸다. 이 같은 행위는 그 조합 속에 숨어 있는 법칙을 발견하고 새롭게 창조하며 특별해지고 잊혀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특정 논리와 법칙의 틀 안에 머물지 않는 현대 문화의 유동적 속성으로 인해 실제 인간이 만들어 가는 현실은 분절된 파편 조각을 끼워 맞춘 콜라주를 연상시킨다. 이지현의 그림 역시 깨진 고대 도자기를 짜맞추는 고고학자의 손놀림처럼 부지런히 조각난 기억을 조합해 보지만 파편화된 이미지를 완전히 복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현은 재조합 작업에 앞서 이들 깨진 조각들을 한 번 더 깨뜨리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공공 장소와 사적 장소의 만남, 여행을 하며 마주친 순간들의 조합이란 큰 틀을 유지하고 있지만, 뚜렷한 경계와 모호한 경계선의 오버랩을 교차시키며 시간과 공간의 다중성을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간다.
작가는 이를 "mash-up"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음악을 믹싱하여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을 만든다는 용어에서 비롯된 말인데, 콜라주가 이질적인 재료 혹은 이미지의 조각난 조합이라면, 매쉬업은 형식과 내용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서사구조를 생산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항상 시간의 흐름을 수반한다. 여행을 통해 발견한 역사적 건축물의 잔상과 기억의 파편이 지금껏 이지현의 그림의 뼈대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뎌 져가는 잔상과 기억처럼 그 뼈대는 고집 세게 견고하지 않다. 이런 구조적 취약함으로 인해 이지현의 그림이 다시 한번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전 작업이 여행에서 만난 공공 장소에 작가 개인의 공간을 채워 넣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나 「파르테논」는 이 수직적 관계가 전복되어 작가의 사적 공간의 비중이 커졌다. 이 같은 효과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확대하거나 미술관보다 커버린 작가의 작업실 풍경을 통해 더욱 분명해 진다. 미술관 실내 벽을 대신하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 1층과 2층을 구분해주는 작가의 작업실 책상, 미술관 출입문 역할을 하고 있는 작업실 문 등 작업실 풍경이 미술관의 건축 구조와 결합되어 교묘한 이음새를 만들어 낸다.
프레임 안에 새로운 프레임을 만든다? 이지현의 그림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작가는 로마 건축물 「콜로세움」의 창문 사이사이에 옷장 속 풍경을 끼워 넣는다. 멀리서 바라보면 검투사의 원형경기장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서 콜로세움의 위용은 작가의 화장품, 장신구, 옷가지들을 담아내는 드레싱 테이블 속으로 숨어버린다. 아치형 문 사이로 목걸이 등의 장신구 등이 엿보이고, 펄럭이는 줄무늬 스커트가 구조물 밖으로까지 흘러내린다. 일반적으로 프레임은 담긴 내용을 견고하게 보여주는 창 역할을 하는데 그치지만, 이지현의 프레임은 서로 이질 적인 것을 담아내는 형식으로서 기능한다.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옷장 속 풍경 역시 내용으로서, 배경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구조물을 견고하게 지탱하는 뼈대로서 기능한다. 수 천 년의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세월만큼 고대 건축 구조물이 내뿜는 견고한 아우라와 그 안을 가득 점령하고 있는 과도하게 확대된 옷가지이며 장신구들이 만들어 내는 대비는 이처럼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는 이지현의 그림이 단순히 고대건축과 옷장이라는 사적 공간의 대비를 넘어 과거와 현재, 거대서사와 개인적 이야기를 하나의 틀 안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지현이 드디어 타자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사적 공간의 내밀함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소지품들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며 배경으로 사용하였지만 자신의 모습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파르테논 신전 위에 거대한 여신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며, 관찰자이며 동시에 스스로 응시의 대상이 된다. 이는 서로 다른 공간, 시간, 문화의 조합을 읽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점과 해석을 유도하는 장치이다.
이지현의 "mash-up"은 분절된 파편들의 공허한 콜라주가 아니다. 작가는 대상의 고유한 아이덴터티를 지켜내며 조합을 꾀하고 있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파편화이며 동시에 치유의 본능을 함유하고 있는 콜라주이다. 작가의 그림은 불완전한 플래쉬백을 반복하며 그 속에 다양한 시점과 변화를 거듭하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정체성의 문제가 새로운 질서로 향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이지현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나의 완결된 사실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지현의 그림은 서로 다른 공간의 시점이 충돌해 만들어낸 파편화된 앗상블라쥬이며, 서로 다른 문화적 문맥 속에서 읽혀야 할 "mash-up"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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