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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의<페르소나>
나와내가아닌나의공존, 미묘한찰나의포착

 
* 언제였을까. 어디였을까. 시간도공간도지워진, 태고의순수함을그대로간직한듯태연한순백을배경으로그/녀가있다. 나는그앞에서있지만, 그/녀는나를보지않는다. 나를빗겨나간시선. 어딘가를보고있으나, 아무것도보고있지않는슬픈듯, 멍한그시선앞에발걸음을붙잡힌다. 그/녀에게다가가어깨를다독이며‘괜찮아’라는말을건네고싶어진다.
- <페르소나> 앞에서
 
* 카메라를줌인하듯, 화면가득그의얼굴이들어온다. 희끗한수염, 인생의굴곡을닮은주름. 점차오열해가는얼굴. 한때, 농민봉기를용기있게해결하며농민의지지를한몸에받았던명민한미소년의왕, 그러나세월은그를어리고현명한미소년의왕의모습을지켜가게내버려두지않았다. 결국영원할것같던절대권력과언제나그의곁에충신으로있을것같았던신하들의모반에의해비극적인최후를눈앞에둔얼굴, 모든것을잃고오열하는리처드2세의얼굴이바로이랬을것이다. 그런데나는지금누구를바라보고있는것일까. 셰익스피어의<리처드2세>? 아니면, 그역할을분하고있는이배우? 아니면그안에반사되어있는나?
-<No matter where, of comfort no man speak> 앞에서
 
프롤로그.
잉그마르베르히만(Ingmar Bergman)의동명영화<페르소나>의영향을받았다는이프로젝트는크게세개의에피소드(가로형식으로개별인물에좀더초점을맞춘<페르소나>, 그리고배경을없애고인물의얼굴과표정에더집중하고있는<moving tableau>, 그리고한남자의표정이변해가는것을스틸사진으로포착한<No matter where, of comfort no man speak>)로구성되어있는데, 인물에포커스를맞추고있음에도불구하고정희승의사진들은딱히초상사진이라부르기가머뭇거려진다.
왜일까.
그윽한슬픔의얼굴을하고있는사진속인물들.
대체그들에게무슨일이벌어진것인가.
 
#1.
태어난다는것은동시에죽음에가까워지는것이다. 이같은이율배반적인운명의질곡을엎고가야하기에, 인간은늘자신이이세상에왔다간흔적을남기고싶어한다. 그리고그흔적에의해기억되고싶어한다. 가급적이면아주멋진모습으로. 그래서오래전사람들은아주근사하게치장을하고몇시간씩같은자세로있어야하는고생을감수하면서도기쁘게화가의캔버스앞에섰다. 카메라가발명되자, 훨씬짧은시간에자신의초상화를가질수있게되었다. 그리고서서히화가의능숙한손재주는작고까만상자에밀려났다. 물론여전히불편함은감수해야했지만, 이전에비한다면그야말로‘순식간에’나의흔적을그대로남길수있게된것이다. 누군가에게기억되고싶은욕망, 그욕망이초상사진을발전시켰고, 그욕망을충족시키기위해사람들은이제기꺼이카메라앞에서미소짓고있었다. 초상사진의이런역사를가지고있다고할때, 왜정희승의<페르소나> 사진들을초상사진으로부르기머뭇거려지는지가분명해진다. 비록초상사진이라는형식을빌려오고있지만, 정작정희승이카메라의조리개를열어놓은대상은인물이아니라, 한인물이다른인물로변해가는순간, 정확하게는한개인안에두개의인물형이묘하게공존하는순간, 서로다른페르소나가공존하는순간이기때문이다.

 
#2.
페르소나. 페르소나는본래인격이나위격(位格)을뜻하는라틴어로서그리스연극에서배우들이쓰는가면을의미한다. 또한페르소나는철학적으로는인간이나천사, 신과같이이성적인본성(本性)을가진개체를의미하기도하고, 심리학쪽에서는다양한상황안에서개개인이각자에게걸맞는역할을수행하며타인에게드러내보여주는사회심리학적가면을말하기도한다. 만일정희승의<페르소나> 시리즈가이중하나의의미를파고드는작업이었다면, 그다지할이야기가많지않았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 작가는‘페르소나’라는용어를둘러싸고벌어지는다양한층위들을흥미롭게넘나든다. 사진이라는평면안에서, 움직임이라고는전혀살펴볼수없는초상사진안에서벌어지는이러한운동성때문에쉽게그의사진앞을떠날수가없다.
페르소나의이동혹은서로다른페르소나의공존을보여주기위해작가가택한전략은이러하다. 우선먼저성실하게‘페르소나’의어원에서출발해보겠다고다짐이라도한듯그는배우들을섭외했다. 그리고그들에게비탄과슬픔에빠진표정연기를요구했다. 하지만그저단순히개인적인슬픈일을떠올리거나하는것이아닌, 배우들이선택한특정연극의한상황속으로몰입해달라고요청했다. 배우가극에몰입하다보면어느지점에서는극중인물과일치가되는지점이생기고, 다시극이종국으로치닫게되면다시극중인물과의몰입에서본래의자신으로다시빠져나오는지점이생겨난다. 그리고바로어떤찰나적순간에두개의페르소나가공존하게된다. 그리고바로이지점이정희승이주목하고있는지점이다.
단순한구도의평면임에도불구하고<페르소나> 시리즈는관객에게말을건다. 그래서관객은슬픔과비탄에빠진사진속인물에게서쉽게시선을돌릴수가없다. 물론그것은작가가준비한시각적장치때문이다. 우선일반적인초상사진들과는달리가로형식을취하고, 디테일을모두지워버린하얀배경을바탕으로인물의상반신을배치함으로써, 관객이시선이다른곳으로분산되는것을완전히차단하고인물에집중하게하였다. 그리고사진속인물의시선이정면을약간씩비껴나가게하여관객과직접적으로시선이마주치는것을피해갈수있게했다. 여기에서관객과사진속인물의엇갈리는시선의교차가공간의깊이를만들어내게된다. 정작사진속에는공간에대해짐작하게하는아무런원근법적장치가없지만, 관객과사진속인물의시선이계속적으로비껴가면서이두인물을아우르는새로운공간이열리게된다. 관객은천천히사진속인물인그/녀의주위를맴도는것같은착각에빠진다. 그/녀에게말을걸수도없고, 그렇다고그/녀가관객의존재를알아차릴수있는것도아니지만, 그토록슬픈표정을하고있는그/녀의이야기를듣고싶어진다. 괜찮다고나도그랬던적이있노라고위로하고싶어진다. 그러는사이그/녀처럼슬펐던일들을떠오르며그/녀와하나가되어간다. 그러나곧다시사진앞에서있는일상의나로되돌아온다. 그것은사진속배우가극중배역에몰입했다가깨어나는그과정과닮아있다.
살다보면본의던본의가아니게던많은다른얼굴을하게된다. 역할에따라, 혹은상황에따라, 필요에따라. 그리고그어떤순간에는내안에있는낯선나의얼굴을인식하고는화들짝놀랄때도있다. 정희승의사진을보고돌아서는순간문득, 거울을보고싶어졌다. 지금나는어떤얼굴을하고있을까. 어떤페르소나가드러나있을까궁금해진다.
서두에도이야기했지만, 정희승의작업은많은층위들을가지고있다. 어쩌면누군가에의해그의작업이초상사진의연장에서철저하게규명(?) 되는날도있을지모르겠다. 그러나누군가나에게그의작업을범주화시키라한다면, 나는정희승의<페르소나>를풍경사진에담고싶다. 생명과죽음이공존하는순간, 하나의삶이다른삶으로넘어가는순간을담은풍경사진. 비록정희승의사진에는그어떤풍경적인요인도없지만, 그가보여주려했던것이‘페르소나’라는개념규명이라기보다는오히려서로다른것이공존하고혼재하는, 포착하는가하면어느순간미끄러져사라지는그순간을보여주려했던것에더가깝기때문이다. 그녀의까만상자안에서앞으로얼마나다양한, 얼마나깊이있는인간내면의풍경화가그려질지자못기대된다.
 

신보슬 / 토탈미술관큐레이터





Persona
 
이 프로젝트는 초상사진에 있어서Mask와Face의 관계를 탐구한다. 페르소나는 원래 그리스시대의 배우들이 무대에서 썼던 가면을 뜻하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개개인이 다양한 사회적 상황 안에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며 타인에게 드러내는 사회적, 심리적 가면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사회 안에서 맡은바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 같은 존재라는 얘긴데, 배우란 어찌 보면 이러한 우리 모두 안에 내재된 은밀한 심리적 기재를 드라마틱하게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직업이라 여겨진다. 이 프로젝트는 배우들의 감정표현, 그 중에서도 특히 슬픔과 비탄의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들은 영화나TV를 통해 배우들의 극적 감정을 바라보는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 타인이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표정이나, 심하게 울고 난 뒤의 붉게 충혈된 눈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얼마든지 자세히, 오랫동안 타인의 얼굴을 관찰할 자유를 허락함으로써 우리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슬픔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비탄에 잠긴 타인의 얼굴은 우리의 감정적인 장벽을 허물고 그 방어막을 뛰어넘는 참으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이 공적, 사회적 삶 속에서 드러내지 않으나 개개인의 내면에 내재된 존재론적 슬픔과 연민을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우리 안에 숨겨진 아픔을 타인의 얼굴에 투사시키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게 어떤 경우든 이 순간, 단지 그들의 슬픔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 안에선 연민이 샘솟고, 타인과 나는 강한 감정의 끈으로 연결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의 심리적 고통을 연기하면서 그 가상의 심리상태에 몰입된 순간을 포착함으로써, 그들의  얼굴에서 드러난 감정의 진정성과, 카메라가 진정 대상의 내면과 그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본질이란 카메라와, 사진에 찍힌 대상, 그리고 관람자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배우들은 사실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해 종종 감정이입을 통해 배우가 연기하는 가공의 인물을 내면화하고 동일시하는 심리적 과정을 거친다. 물론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소격효과라는 이론에서 배우들로 하여금 캐릭터에 감정적으로 동화되지 말고 비평적 거리를 유지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저 배우의 연기가 리얼하다고 할 때, 이는 얼마나 감정이입을 성공적으로 하였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연기란 궁극적으로 거짓으로 꾸며진 상황을 사실인양 관객을 속이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리얼한 연기’라는 말은 이미 파라독스를 내포한다. 더욱이, 배우들이 감정연기를 하면서 종종 자신이 실제로 겪은 아픈 과거나 슬픈 감정의 기억들을 인물에 투사하는 이른바Method acting이란 테크닉을 사용하기에, 더더욱 감정연기 안에서 픽션과 리얼리티, 마스크와 페이스, 이미지 메이킹과 자기몰입 사이의 경계는 허물어지게 된다. 이 일련의 사진들은 이러한 경계지점을 포착 한다.  관객들은 비록 이 모든 상황이 스테이지 된 것임을 명백히 알기에 사진이미지로부터 브레히트가 말한  ‘비평적 거리'를 유지하겠지만, 동시에 사진에 드러난 배우들의'리얼'한 감정표현을 통해, 사진속의 인물과 심리적 관계를 형성하게 될것을 기대한다. 이를 통해서, 이 프로젝트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사진이미지를 통해 인물을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에 대해서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갖게 되길 희망한다.

정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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