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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기복들을 짓는다. 즐겁게 그리고 아프게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들이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서 처음 꽃을 받은 날, 나를 찔러왔던 어떤 느낌이 있다. 그 순간. 내 몸을 관통한 어떤 것, 그 표정, 그 목소리, 그 냄새, 그리고 그 연약함…. 미안함을 표현하는 누군가의 시선을 외면했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떤가.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과 그가 남기고 간 화해를 구하는 징표 앞에서 내가 느꼈던 어떤 감정. 그것은 안쓰러운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시원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며, 비릿한 느낌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두와 전혀 다른 감정일 수도 있을 게다. 이런 느낌들, 감정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명확히 표현될 수 없다. 달리 말해 그 느낌을 원래대로 다시 살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렇게 명확히 표현할 수 없고, 원래대로 표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서지형 근작들은 이렇게 명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엄연히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느낌들을 보듬고자 한다. 이 작가는 그것을 ‘감정적 기억들(emotional memories)’이라고 부른다. 그녀에게서 이런 감정적 기억들은 의식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라기보다는 몸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들이다. 의식이 붙들고 있는 기억이 아니기에 그것은 명확한 꼬리표-이름을 붙여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사물,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색채, 어떤 질감, 어떤 형태들에 몸이 정감적으로 반응하여 일어나는 어떤 떨림, 어떤 진동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몸에 각인된 기억이다. 이렇게 몸에 각인된 기억은 명확한 꼬리표를 부여할 수 없기에 애매하고 모호하다. 항상 모든 것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애매모호한 것은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일 테지만, 좀 더 솔직하게, 좀 더 감정적으로 세계-나를 마주대하고 싶어하는 작가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 작가는 애매하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대신 그와 더불어 즐거워하거나 아파할 것이다. 서지형이 바로 그런 작가다.

그러면 서지형은 어떤 방식으로 감정적 기억들을 보듬는가?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떤 떨림, 어떤 감정의 기복을 가져왔던 사건과 연관된 사물, 색채, 질감, 형태들을 입체와 평면으로 빚어내는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가령 그녀는 사탕의 형태를 만들어 그 사탕과 연관된 달콤한 느낌을 불러내고 즐거워하거나 아파한다. 그 달콤한 기억이란 오래 전에 내 사탕 선물을 받고 어떤 선생님이 내게 던진 말-“너는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과 그 말이, 또는 그 순간이 내게 가져다 준 어떤 행복감, 어떤 포만감 같은 것이다. 그런 감정이 그녀를 즐겁게 하면서 또한 아프게 하는 건 그녀는 여전히 그것을 간직하고 있으나 그것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것, 부재하는 것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녀는 유년 시절 불현듯 그녀를 엄습했던(!) 무당개구리의 붉은 배에서 느꼈던 어떤 공포나 두려움을 불러오기도 하고, 신발과 의자, 오징어, 공구의 형태를 빚어 가족이나 친구, 또는 연인과의 어떤 미묘한 감정적 교류의 느낌을 되살리기도 한다. 또한 여행길에서 그녀를 잡아끌었던 어떤 장면에 대한 감정적 기억들을 되살리기도 한다. 즐거워하고 아파하면서. 또는 아파하고 즐거워하면서.
이런 느낌들을 되살리고, 저런 감정들을 불러오는 그녀만의 재료가 바로 고무찰흙이다. 고무찰흙은 따뜻하게 데우면 말할 나위 없이 유연해져서 어떤 형태로든 만들 수 있다. 손으로 반죽해 나가다 체온과 거의 같은 온도가 되었을 때 특히 그렇다. 평면 위에 하늘색 고무찰흙 층을 올리고 그 옆에 좀 더 두껍게 자주색 고무찰흙의 층을 붙인다. 그 사이의 빈틈에는 분홍색 층을(마치 도자기를 상감하듯, 어떤 감정이 내 몸에 각인되듯) 끼어 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따뜻한 체온을 불어넣고, 누르고, 두들기는 일이 오랜 시간 반복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형태는 자꾸만 변할 것이고 하나는 다른 하나와 불가분하게 뒤섞이게 된다. 마치 누군가에게서 처음 꽃을 받은 날, 나를 찔러왔던 어떤 느낌이 내게서 계속 간직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고 다른 느낌들과 불가분하게 뒤섞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놀라워라. 그 고무찰흙은 그렇게 굳어지면 결국 지우개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즐거우면서 아프다. 또한 아프면서 즐겁다. 나는 서지형의 작품을 그렇게 느낀다. 그것은 내게도 서지형의 작품과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감정적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느낌은 애매한 것이다. 이 애매한 것을 분명한 것으로 되돌리는 대신에 애매한 것 그 자체로 마주 대하는 것은 꽤나 곤혹스럽고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작품과 만나는 일, 관계를 맺는 일이 본래 그러할 것이다. 나는 이 작가가 애매한 것을 분명하게 만들라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애매함 자체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계속 그 감정의 기복들을 지어나갔으면 좋겠다.
 
홍지석 / 미술비평




작업노트
 
나의 작업은 지우개(클레이 형태이며 가열하여 지우개로 만듦)를 재료로 하여 기억 속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 재료는 이십여 년 전 나 자신이 유년시절에 가지고 놀던 동일한 재료이기도 한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료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남달랐던 점이 나의 현재 작업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지우개라는 것 자체가 존재와 망각의 상징이며, 이러한 재료로 지워지거나 남겨진, 그리고 곧 지워질지 모르는 기억의 영역을 다루기에 내겐 재료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또한 가열 전 고무찰흙이라는 물성은 그 자체로 유년의 기억을 담아내기에 알맞다. 마치 아이가 찰흙놀이를 하듯 하는 제작 방식 또한 전문가적 재료를 쓰지 아니하고도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미술은 난해하지만은 않으며 우리 생활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자신을 구성하는 그 자체인‘기억’에 대한 소중함과 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싶다.
이러한 과정으로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의식하는 동안에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떠올려 낼 수 있는 기억의 영역을 다룬다. 이는 기억이라는 정신작용이 시작된 그 어느 때부터 지금 현재의 찰나-그러나 바로 지금 과거가 되어버린-를 비롯한 모든 시간의 영역을 포함하는데, 그 중 현재의 상황과 연관되는 기억의 조합을 미리 다루었다. 시각적이거나 물리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의 축적은 바로 현재의‘나’이기에 내 안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의 토막을 연상시킬 수 있는 매개물을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작업을 이끌어낸다. 결과적으로 볼 때 유년시절 속 감정의 기복을 가져왔던‘사건’으로 자리 잡은 것들과, 인생의 전환기turning point에 관련된 것들을 우선적으로 만들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선별적으로 선택된 기억이 갖는 현재와의 연관성을 드러낸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선은 나 자신에서 출발하였지만 점차 주변의 것을 돌아보고 연관된 상황들로 확대되어 가고 더 나아가서는 동시대를 살기에 다수가 공유하는 기억들, 환경에 대한 이야기 또한 다루게 되었다.
나는 나의 작업이 진솔하고 솔직하기를 바라며 자신과 주변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애정을 담고자 한다. 동시에 일반적으로 쉽게 취하거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와 재료를 다루면서 대중과 그리 멀지 않은 예술을 구현하는 작은 통로가 되고자 한다. 기억은 나 자신을 구성하는 그 자체이자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며, 기억이 있기에 추억과 사랑, 아픔까지도 존재한다. 나의 작업은 그러한 것들의 기록이며, 일기이며, 또한 따뜻한 에세이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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