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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이1974년 네 번째 개인전에서 즉흥적으로 선보인는 간단하지만 많은 것을 시사하는 그의 대표작이다. 오래된 부처상을 텔레비전 시청자로 삼고 맞은 편에 설치된 비디오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어 부처가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도록 한 이 설치작업은 당시 과거와 현재, 동양의 신과 서양의 미디어 사이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극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금 내(부처)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곧 나 자신(텔레비전 속의 부처)인 바 주체와 객체의 뚜렷한 구분이 무의미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물질적인 실제 부처와 비물질적인 이미지로서의 부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느냐 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따라서 이는 동서양의 만남이나 예술 매체로서 텔레비전의 새로운 맥락화와 같은 당시의 평가 외에도 주체와 객체의 희미해진 구분과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이후 등장한 인터랙티브 아트의 본질적인 정의에 암시하는 바가 크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자라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인 관계에 대한 회의로부터 비롯된 관람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인터랙티브 아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배경은 인터랙티브 아티스트로 불린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인터랙티비티(이하 상호작용성)’를 작품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는 비디오 설치 작가다. 이는 그가 컴퓨터 기술을 전면에 부각시키기보다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성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며, 그러한 그의 인터랙티브 아트가 기계적이기보다는 영상적임을 말하고자 함이다. 대학 졸업작품에서 처음 비디오를 사용한 이후 독일로 건너가 비디오 아트를 전공한 그는 줄곧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싱글채널 비디오가 가진 선적인 시간개념과 관객을 향한 일방향적인 성격 때문에 이후 상호작용성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아트로 전공의 범위를 넓혀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인터랙티브 아트는 어디까지나 싱글채널 비디오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이러한 사실은 작가 이배경의 작업 성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로 인해 작품이 완성된다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기본적인 정의에서는 동일하나2003년 이후 현재까지 선보여온 일련의 그의 작업은 컴퓨터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는1990년대 미국에 등장한 일단의 인터랙티브 디지털 아트나 웹아트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한다. 오히려 그의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는 간단한 기술로 큰 철학적인 깨우침을 암시하는 백남준의와 같은 초창기 비디오 아트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상 대부분 그의 작품의 구조는 단순하다. 프로젝터로 벽면이나 패널에 영상을 투사하고 비디오 카메라가 감지한 관람자의 입력신호에 따라 영상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변화하도록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해놓은 것이다. 물론 화면에 투사되는 영상이 때로는 실시간으로 특정한 공간을 촬영한 것일 때도 있고 때로는 미리 찍어놓은 것일 때도 있으며, 비디오카메라가 관람자의 움직임, 색, 소리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거나 심지어는 그 공간 안에 있는 관람자의 것이 아닌 엉뚱한 특정 공간의 입력신호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 대부분은 프로젝터, 비디오카메라, 컴퓨터 크게 세 부분의 상관관계로 이루어진 영상작품이며, 다만 이 세 부분에 관람자의 개입이 더해져 이들의 역학관계가 작가의 계획 하에 다양하게 변주될 뿐이다. 또한 그는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접점인 인터페이스(interface)를 가능한 쉽게 하여 미디어 아트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벗고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의 첫 인터랙티브 비디오 작업<비디오합창(Videochapel)>(2003)은 이러한 특징 모두를 잘 보여준다. 공간의 벽면에 투사된 파도 치는 바다의 영상은 천정에 부착된 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관객의 위치와 움직임에 따라 반응한다. 10개로 분할된 화면 중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한 해당화면만 구동되고 나머지 화면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되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구동과 정지를 반복하며 파도 치는 바다의 온전한 이미지는 깨지고 흐트러지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관람자가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카메라 밖으로 나오면 이미지는 흐트러진 상태로10초간 구동되고원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의 작품의 인터페이스는 이렇듯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그 주변을 움직이다 보면 바로 파악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상호작용성을 원하지 않으면 카메라 밖으로 나와서 원래의 영상을 감상하면 된다.

이처럼 복잡하지 않은 구조와 용이한 접근성을 특징으로 하는 이배경의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는 영상의 이미지 역시 특별한 조작이나 왜곡 없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서 단순한 이미지가 십 여 초 단위로 계속하여 반복된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들은 간결한 표면적인 이미지 너머 깊은 의미를 응축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매체의 본성에서부터 인간과 자연을 소재로 한 상징적인 함의까지 한결같이 작가의 오랜 고민과 숙고 끝에 나온 것이다. “작업 전체에서 몸, 시간, 공간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 온 바 있는 작가는 인간의 몸이 자신이 속한 세계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본인의 작품에서 구체화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것은“시간이 멈추거나 선택적인 진행이 가능하다면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느낄까”하는 물음(<비디오합창>)이나“각각의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시간”은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관한 표현(<셀프타임>), 같은 시간 내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탐구(<섬>, <빅뱅이 있기 전>, <그 시간>),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이 한 데 만나는 가상의 현실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인(<관계>), “같은 공간,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지만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현대 도시의 사람들”의 비유적 형상화(<도시, 사람, 바람>) 등 다양한 양상으로 보여져 왔다. 그러나, 단 하나 돌연 갑자기 등장한 주제 없이 처음 그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작품으로 연결, 발전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 역시 내용 면에서 이전 작품들과 자연스러운 연결지점을 갖는다. 특히 한 도시의 이미지는 결국 그곳에 있는 대형 건물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며 700명의 얼굴을 소재로 하여 만든 최근작<도시, 사람, 바람>(2007)에 이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발전시켜 보여주고 있다. 먼저 이번 전시 작품 중 형식적인 면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준<반복되는 자유(Repeated Freedom)>는 내용면에서 전작과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거대한 도시공간에 갇혀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하는 현대인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일정 기간을 단위로 반복되는 자유가 과연 진정한 자유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고층 아파트를 연상케 하는 높이230cm의 나무로 된 기념비적인 육각 기둥 조각물을 만들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여섯 면마다 군데군데3개의 모니터와16개의 스피커를 삽입해 넣었다. 3개의 모니터에는 남녀 무용수들이 좁은 상자 안에서 일정한 동작을 행하고 있는 영상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는 작가가150cm의 정방형 나무상자를 만들고 한 달여에 걸쳐 그 안에서 두 사람에게 그 공간을 활용해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되는 동작을 하도록 주문하여 촬영한 것 중 각각 두 동작만을 선택한 것이다. 한편 조각물 안쪽에 컴퓨터와 함께 감춰진10채널 앰프를 통해 무용수들의 동작에 따른 반복적인 소리와 바람소리가 만들어져16개의 스피커를 돌아다니면서 흘러나오도록 함으로써 차갑고 싸늘한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소리로써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우선 프로젝터를 이용한 영상 투사가 아닌 새롭게 제작된 조형물 형태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기존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와 크게 다르다. 또한 상호작용성의 면에서도 천정에 부착된 카메라가 관객의 움직임을 포착하되 화면 속 동작이 다른 동작으로 바뀌는 최소한의 변화로 국한시켜 하나의 완결된 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을 강조했다. 이는 지금껏 해오던 일관된 방식의 영상 투사에서 조각을 전공한 작가의 전력이 자연스럽게 발휘되어 독립된 하나의 조형물로서의 새로운 인터랙티브 비디오 설치를 보여주고자 한 의미 있는 시도이며, 평소 음악을 미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위대한 예술장르로 생각하는 작가에게 청각적인 요소를 시각적인 요소와 대등한 위치로 여겨 한 작품 안에 녹여놓은 야심 찬 시도이기도 하다.

또 다른 작품<에피소드#2> 역시 시각적 요소를 노이즈로 변환시켜 청각을 통해 이미지를 인식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에 작가의 소리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일출과 일몰의 시각에 강변이나 산등성이의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들을 연결하여 순환하는 동영상으로 전환한 뒤, 영상의 한 가운데 흰 색 띠를 넣어 영상이 그 띠를 지날 때 지형의 변화에 따라 노이즈가 달라지도록 하였다. 사실상 흰 띠를 지날 때의 지형의 변화는 색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서 작가는 모니터 화상의 삼원색인RGB 값 중R(빨간색)의 수치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래밍한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은 관객이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영상은 방향과 속도를 달리하고- 오른쪽에 설수록 화면은 왼쪽으로 빠르게, 왼쪽에 설수록 오른쪽으로 빠르게– 노이즈는 그 크기를 달리하며, 관객이 화면에서 멀어지면 다시 원래의 영상과 소리로 돌아오게 하는 비교적 풍부한 상호작용성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제 과정을 통해 이 작품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흔히 감상적이 되는 시간과 공간을 포착하여 그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노이즈로 변환함으로써 그러한 상투적인 상황에 대한 우리의 무조건적인 반응을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환기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나무액자를 씌운 가로200cm, 세로120cm의 특수 아크릴 화면을 허공에 매달고 뒤 편에서 빔프로젝션을 투사함으로써 마치 액자 안에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듯한 색다른 느낌을 부여했다. 이는 앞서의<반복되는 자유>처럼 보여지는 방식에 이전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읽혀지는 지점이다.

끝으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한 작품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 특히 지난2004년에 선보였던<섬> - 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벽면에 투사되는 인터랙티브 영상<내 속의 거울>이다. 전시장 한 쪽 벽면에 조금씩 흔들리는 강물의 영상이 투사되고 바닥에 놓인 비디오카메라가 관람자를 포착하면 관람자의 등장과 움직임에 따라 물방울이 굴러가는 듯한 인위적인 효과음과 함께 실루엣 안의 이미지는 마치 돋보기를 댄 듯이 확대되어 보인다. 작가는 흐르는 물이 아닌 방향성이 없고 일렁이는 물의 이미지를 위해 인공 폭포 밑을 찾아 실제로 촬영했다고 한다. 이렇게 촬영한 이미지는 소리와 더불어 관람자에게 화면이 울렁거리는 착시와 어딘가 모를 불안함을 주고, 다가선 사람의 실루엣 안쪽으로 확대된 강바닥의 이미지는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보듯 당혹스럽다. 물의 표면 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엔 자신의 얼굴이 보이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얼굴이 아닌 물 표면을 보게 되고 종국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처럼, 잔잔하던 물의 풍경 안으로 들어간 관람자는 달라진 전체 풍경 속에 자신의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실루엣 안쪽으로 확대된 바닥을 보게 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마치 내 속에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해석이다. 어쩌면 작가는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 물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전과는 달라진 변모된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스로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단서를 던지고 있다. 먼저 물의 이미지(<내면의 거울>), 바람의 소리(<반복되는 자유>), 일출몰의 풍경(<에피소드#2>)과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하지만 그것들이 상징하는 의미는 오히려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 속에 빗대어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이전 작품에 비해 보다 간접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주제를 전달하고 산문적이기보다는 운문적인 작가의 고유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간의 작품에서 이미지의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했던 소리를 비중 있는 요소로 부각시켜 이미지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밝혔듯이 작가의 음악과 소리에 대한 평소의 지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앞으로 그의 작업에서 사운드 아트에 관한 새로운 방법론과 영상과의 상관관계를 탐구하는 미디어 아트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한편 이번 전시가 작가의 앞으로의 작업방향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읽혀지는 또 다른 지점은 조형성과 완결성에 대한 추구이다. 대형 조각물을 작품의 주요 구성요소로 포함시키거나 영상을 보여주는 데 있어 좀 더 완결된 형식을 추구한 이번 전시의 작품들로부터 그가 앞으로 기존의 비물질적 미디어 아트와는 차별성을 갖는 물질과 비물질이 혼합된 형식의 다양한 인터랙티브 아트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길에는 지금처럼 컴퓨터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도 그러한 기술을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을 유도하고 개념적 깊이와 정서적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감동을 위한 기술로 사용하려는 작가의 원칙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정의에 충실한 채 풍부한 함의를 내포하는 백남준의처럼 말이다.
 
신혜영 /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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