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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영의 작품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그가 청바지를 사용하여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이 방식은 2001년 갤러리 블루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고, 언론들에 무수히 노출되며 이른바 ‘청바지 작가’로 불릴 만큼 그 소재는 작업 속에서 주요한 요건으로 인지되어 왔다. 청바지를 작품에 사용한다는 것은 재료의 신선함과 친숙함으로 인해 대중적인 소통을 가져오는데 주요한 강점으로 부각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소재주의에 천착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 글을 청탁 받고 현대미술 전공자로서 내가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소재주의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소위 스타작가로서 언론에서 상업적으로만 다루어진 부분에 대한 저항감도 있었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기 위해 부산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도 ‘청바지 작가’라는 표면적 식견을 뛰어 넘는 어떠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최소영의 작품들에서 느낀 첫 인상은 유행하는 미술 언어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평범한 전달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영리한 계산으로 연출되지 않았다는 점과 재미있는 재료를 처음 만난 학생과도 같이 여전히 소박한 태도, 노동집약적 밀도를 통해 전해지는 성실한 에너지와 완성을 향한 집요함에 호감이 갔다. 장시간의 기술적 몰입 과정이 요구되는 공예적인 접근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측면으로 보인다. 특정한 개념이나 철학을 전하기보다는 청바지의 색채, 형태, 질감이라는 한계 속에서 풍경의 정서를 담아낼 무한한 표현의 변주를 손끝으로 찾아가는 과정이자 결과가 바로 그의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념미술의 후예들이 점유하고 있는 현대미술계에서는 매우 드문 것으로, 동시대 담론의 주류에서 비껴난 지점에 있다. 소위 ‘컨템포러리 아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작가에게 질문을 던져보니, 주저 없이 평범하지만 심지 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탐구하기보다 그가 ‘살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풍경들이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손이 움직이는 것과 그림 자체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이러한 단순한 접근이 주는 신선함이 난해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의 호응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라면, 그것도 소위 ‘컨템포러리 아트’의 요건 중 하나라고 해석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최소영이 ‘청바지 작가’라는 사실에 대해 유념하여 볼 필요가 있다. 최소영의 작품에서 청바지는 단순한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청바지라는 소재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입을 수 있고, 특정한 지식이 없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블루칼라 계층에서 소위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기에, 그 자체로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소영의 작업에서의 청바지라는 소재는 단순히 물감을 대신하는 재료의 의미를 넘어 그것이 가지고 있는 대중문화적 기반과 연결됨으로써 자연스러운 파급력을 획득한다. 최소영의 작품은 애초부터 이러한 기반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작품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 대중적인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미술시장에 일으키고 있는 반향을 생각해보면, 현대미술을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인문학적 지식들과 고급 트랜드 정보들 사이를 배회하는 대신, 지극히 평범한 소통을 원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최소영의 작업이 바로 이 지점 위에 서 있는 것이며, 이는 동시대의 빠른 움직임 보다 박수근의 작업이 지닌 근대 미술의 소박함과 같은 것에 여전히 이끌리는 대중적 향수와, 청바지라는 전 세계 공통어이자 소비사회 거대 패션시장의 제1 품목이 만나고 있는 독특한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최소영의 작업실은 마치 작은 가내수공업 의류 공장과 같았다. 청바지의 천, 단추, 윗 단, 아랫 단, 옆 선, 고리, 앞 트임, 라벨, 안감, 박음선, 지퍼, 장식 등 청바지의 모든 요소들은 물감의 색처럼 분류되고 그림 속의 선과 면, 색채와 질감 표현을 위하여 다양하게 조합된다. 작가가 사진으로 찍은 부산의 실제 풍경은 이러한 직물적 요소들로 대치되면서 한 조각씩의 천들로 점진적으로 쌓아올려지며, 결과적으로 그림이자 텍스타일의 경계에 있는 작품으로 완성이 된다. 그러나 최소영의 작업 속 요소들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풍경 자체로서의 리얼리티를 지닌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청바지의 소재가 부산이라는 바닷가 도시를 표현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이라는 항구 도시의 느낌과 푸른 색 청바지의 소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부산의 대기는 “물 빠진 광목의 색깔”과 같이 밝아서, 서울의 차가운 대기의 빛깔과 다르다고 한다. 부산 해변가의 바람과 태양이 발산하는 청명하고 밝은 대기의 느낌과 바다의 풍성한 색감, 바다 바람을 안고 있는 산비탈 집들의 풍광은 그의 작품 속에서 물 빠진 다양한 푸른 데님 천들의 밝고 따스한 느낌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그가 여행 중 본 해외 도시를 다룬 작품과 그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을 다룬 작품은 그 전달력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작품은 부산에 눈이 내린 희귀한 풍경에 대한 감흥을 담은 <눈 내린 풍경>이다. 빽빽한 산동네와 전봇대, 전기 줄, 하늘, 조각 낸 청바지 천으로 빼곡하게 쌓아올려진 집들의 모양이 아기자기하다. 바닷가 도시의 활력과 빛 바랜 청바지 천이 주는 친숙함 때문에, 부산이라는 낯선 거대 도시가 내 방 창문을 열면 보일 듯한 동네 풍경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장시간의 수공을 통해 형성되었을 작품 전체의 강한 밀도에서 풍경의 온전한 구축에 대한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눈 풍경인 <첫 눈>은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형 크기의 이 작품 속에는 눈 내린 부산의 하늘, 바다, 건물의 풍경이 프레임이 없이 시원하게 열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작품 속에서 구겨지며 넘실대는 데님 천이 단지 바다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바다 그 자체가 펼쳐진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이는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이전의 작업들이 천 조각들을 레고 퍼즐처럼 하나씩 붙여서 풍경으로 구축했다는 느낌을 주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풍경이 재료를 쌓아올린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애초부터 천과 하나였던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지 궁금해진다. 청바지라는 소재 자체를 뛰어 넘는 표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은주/독립 큐레이터,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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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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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데님이라는 자체만으로 멋있는데, 정말 데님은 영원한 소재 인가 봅니다. 2010.11.04 15:09:16
k2703 정말.. 새롭고 신기한 작품인것 같습니다. 고해상도 보기를 통해 작품을 보시면.. 더 잼있게 작품을 감상하실수 있을것 같아요.. 하하 2010.10.28 11: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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