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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강원의 작업을 이미지로 처음 대한 것은 바닥에 고즈넉이 놓여있는 작은 오브제들과 그들의 그림자 혹은 실루엣이었다. 루버 스펀지로 만들어진 오브제들과 분신처럼 떨어진 스펀지 가루가 그림자를 이루고 있는 풍경에서 느껴진 것은 ‘겸손함’이다. 타인의 영역을 범하는 불손한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겸허하고도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역시나 이강원은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공격적 설명보다는 작품의 후렴부는 감상자의 판단에 무한히 열려 있다는 관대한 태도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슬그머니 감추어 두고 감상자의 눈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곰곰이 바라볼 때 그제서야 서서히 드러나는 그의 이야기에는 관찰, 관조, 추적을 동반한 사물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담겨 있다.


이강원의 작품에는 스토리 라인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고와 선택, 사건과 상황에 대한 것, 그리고 그 유래와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상상을 통해 만들어진 잔해와 파편들’이라고 얘기한다. 이강원의 작품을 처음 대하는 관객들은 잠시 시지각적 혼동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다가, 만져지지 않는 색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관념 속의 모호한 풍경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브제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 언뜻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오브제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관객들의 궁금증은 증폭된다.
형식적으로 모으기와 떨어뜨려놓기를 반복하는 이강원의 이번 출품작은 내용상3가지로 분류된다. 실내 공간 속의 사물들과 문양(기억 속의 방), 마치 고분에서 발굴된 듯한 상상의 파편과 그릇(오래된 그릇), 그리고 미사일과 포탄(위험한 설계)이 그것이다.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적인 공간 안의 사물들과 그들이 놓여 있는 행태를 눈여겨보다가 시작된 오브제 만들기가 유물 캐기와 같은 역사적 추적행위로 이어지고 살상무기의 부분을 확대시켜 형태를 따는 식의 다큐멘터리로 확대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는 그 추적과정을 아카이브 같은 설치로 제시하여 형태의 원류를 짐작할 수 있도록 관객을 배려한다.
오브제로부터 파생되는 빛과 어둠, 즉 반사광, 실루엣, 그림자는 작가에게 감춤의 장치이자 모호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며 풍경을 이루는 오브제들, 그들이 놓여진 받침대, 그리고 받침대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도록 면밀히 배치하는 작가에게서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좋은 작가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만들어진 잠재의식에 상상력을 담아 원하는 마음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그려내는 사람이다. 이강원은 담담하게 자신의 주변을 관찰하고,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집요하게 파고드는 고고학자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관찰과 조사가 수반된 그의 오브제들이 남색, 분홍색, 보라색, 빨강색 등 형형색색의 형태로 제시되면 사람들은 일견 색과 형태에 압도되어 작품의 내용을 눈치 채지 못하다가 찬찬이 들여다보면서 실체를 깨닫게 된다. 빨강색은 도기의 재료인 흙과 불을 연상케 하며, 금속성을 갖고 있는 불안정한 보라색은 미사일과 포탄의 위험성을 전달하는 등, 색이 갖는 의미 또한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형태 안에 녹아있다. 형태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위험한 미사일과 포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부분에서 묘한 배반감이 느껴지는데, 인간의 망막에 맺혀져 관념적으로 자리하는 형태의 미학이 실제 용도와 상충되는 것은 흑백논리의 경계선상에서 엇갈리는 선택의 문제를 은유한 것이다. 어떤 것들은 원형을 전혀 알 수 없도록 부분적으로 확대되어있는데, 작가에게 있어 부분 확대의 의미 또한 모호함에 닿아있다. 작지만 거대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빛과 어둠의 조합을 빚어내는 오브제들의 원류로 구체적 사물들을 제시한 것은 거시와 미시 사이에서 맞닥뜨려지는 모호함을 표현하기 위한 시지각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원형을 숨긴 채 또 다른 풍경으로 전이되어있는 그의 오브제들은 크레센도와 디크레센도를 천천히 오가며 결코 가볍지 않은 작은 울림을 저마다 가지고 흔적으로 남은 기억의 파편들이다. 이 파편들은 오롯이 떨어져 기억의 양화가 되기도 하고 파노라마로 집적되거나 자가분열한 행성과 같은 형태로 관념 속 음화가 되기도 한다. 생각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드로잉이라 칭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의 흔적, 오브제와 그 실루엣은 관념적 풍경 혹은 파편을 낳으며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생명체가 되어 있다. 이강원은 이렇듯 관찰과 관조 사이에서 주변의 사물로부터 기억의 음화와 양화를 만들어내고 즐거움을 동반한 불가사의한 통증을 겪으며 관객에게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박윤정 / SOMA 책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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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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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jsqls 사진으로만 봐서는 색감이 좋네요, 하지만 실제로 보면 작품마다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하니 눈으로 확인하고 싶네요. 2010.09.29 16:47:50
kim_042 예전에 봤던 전시인데 다시 보니 반갑네요. 세련된 색감과 늘어지면서도 구조적인 파편의 집합이 멋진 전시입니다. 2010.09.28 10: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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