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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진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식물/동물, 자연/인공, 멈춤/움직임, 평면/입체 등 끊임없이 경계선상에서 모호하게 서 있는 것을 즐긴다”고 하였다. 사실 작가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최근 일련의 연작들에서 잘 드러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연기의 움직임에서 순간적인 형태를 포착함으로써 움직임과 정지의 중간단계에 서 있고자 했으며, 그 형태조차도 유연한 기체나 액체의 형태가 아니라 매우 견고하고 딱딱한 조각적인 형태를 취하게 함으로써 기체, 액체, 고체의 물질성의 경계에 머물고자 하였다. 그녀의 잔디나 나무는 작가의 표현처럼 극악스러운 동물성을 드러내며 식물과 동물의 중간에 머무르고자 하고, 역으로 동물들, 특히 인간들의 형상은 진화의 초기 단계로 후퇴하여 기능이 분화하기 전의 형태, 즉 식물적인 단순한 손가락 인간들로 퇴행한다. 그리고 그녀의 풍경들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동시에 공존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강한 폭풍이 휘몰아치는 험한 원시림이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전혀 다른 우주 속의 자연을 연상케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식할 듯이 엄격한 규칙에 종속된 인공적 풍경처럼 드러난다. 그러면서 자연은 인공에게 그 자연성을 제공하고 역으로 인공은 자연에 그 인공성을 빌려줌으로써 자연은 더 이상 주어진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고, 인공물 역시 그 본래의 유용성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기괴한 형상으로 변모한다. 그녀가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천착하고자 한 평면성과 이미지의 관계에서도 무한 공간의 상징으로서 우주적 질서를 내포한 단일한 색조의 평면, 즉 아플라와 그 아플라로부터 분할하거나 폭발하듯이 솟아나는 또 다른 평면이 무한한 공간감과 함께 극히 얇은 표면성을 공유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눈도 마치 적록 색맹에 걸린 것처럼 색채의 혼합과 혼란을 극도로 회피하고 모노크롬의 세계로 흡수되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에 적과 녹은 이제 거의 구분이 필요 없는 상태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모든 작품들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구성되어 그 현란한 변화가 극치에 이르렀다. 이제 그녀 나름대로의 상징적 체계가 그 폭과 깊이를 한층 더하여 우리를 오묘한 상징의 숲 한 가운데로 인도해주는 것 같다.


모든 예술의 기본은 낯설게 하기 속에 들어 있다.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허무맹랑해 보이는 아라비안나이트가 그렇게 널리 그리고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작이란 한 예술가의 독특한 세계관이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조립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 시선이 포착하는 세계는 예술가의 상상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형을 겪는다. 그러한 변형 작업을 통해서 렘브란트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고호의 세계가 만들어지며 세잔느나 피카소의 전혀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독특한 시선을 가진 예술가들 덕분에 자신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하나 더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에는 일종의 무언의 계약이 체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제시한 작가의 세계관을 용납해주고 거기에 잠시 거주한다는 것이다.

송명진은 일찌감치 이러한 낯설게 하기 수법의 필연성과, 그에 따른 작가와 관객 사이의 무언의 예술적 계약 관계를 파악하였다. 그래서 초창기의 작품부터 새로운 눈으로 사물을 파악하기 위한 격한 몸부림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녀는 맹목적인 낯설게 하기가 자신의 그림들을 너무 거칠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한 수법의 상투적 남용은 자칫 기괴함이나 무의식 세계의 탐사, 동화적인 상상 세계, 꿈과 같은 허무맹랑한 세계 속으로 안주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다시 피상적으로 초현실주의를 답습하도록 할 위험이 있다.

송명진 회화의 최근 전개 과정을 보면 그녀가 피상적인 낯설게 하기 수법을 벗어나 이제는 일관되게 자신과 회화와의 관계, 더 나아가서 회화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고심하고 있으며 그 문제를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고찰의 단계에까지 끌어올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바탕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이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만을 주기를 원치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어떤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만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그녀가 손가락 인간들의 역사를 우스꽝스러운 바보짓으로 기술하였다고 해서 그 서술적 기능만을 읽어내려고 하는 것은 그녀의 회화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회화 속에서 철학적 메시지란 결국 사물을 마음으로부터 다르게 보기 위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진정으로 그 낯선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을 주어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 즉 경계선상에 위치한 눈으로 보게 되면 사물들이 가지는 거대한 은유의 세계가 드러나게 되며 숨겨진 새로운 의미가 모습을 드러낸다. 송명진의 회화는 바로 이 독특한 은유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그 곳에서 사물들은 공통의 것을 교환하고 다름을 더욱 다르게 한다.

이수균 /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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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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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rzns 캔버스위에 아크릴 작품은 언제봐도 색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10.09.29 12:08:09
whali 2009년에 성곡미술관에서 작가님 작품전 보고 많이 감명받았었습니다. 온라인에서 다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2010.09.18 22:37:51
taegoon A foolish step 2.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소유할 수 없고 보기만 하는 현실이 ^^ 2010.09.15 12: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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