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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 작업실/ 창() / 저 밖의 풍경

일단, 작업실부터 찾아가 보자(<Open Studio(2004)>). 덩그러니 책상이 놓여 있다. 두 권의 책은 포개어 있으며 책 한 권은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의자는 삐딱하게 놓여 있다. 그간의 김보민의 작업처럼 그것들은 선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그린 것이 아니라 붙인 것이다. 라인 테이프를 이용해서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광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묵의 뿌연 안개에 갇혀 있다. 그러나 이상하다. 개중 두 개의 사물은 예외다.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은 책상 위에 놓인 거울과 책상 저편에 있는 블라인드가 치켜 올라가 있는 창(窓)이다. 거울은 정체 모를 하얀 빛 만을 발하고 있으며, 창(窓)은 가득<몽유도원도(1447)>를 담고 있다. 더욱이 거울과 창(窓)은 의자에 앉아 눈을 돌리면 한 번에 포착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왜 그것들은 그곳에 놓여 있으며, 왜 수묵의 안개에서 예외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가.
<Open Studio>에 있는 거울은 자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텅 비어 있다. 그러나 거울을 바라보는 시선을 연장해보면 그곳에는<몽유도원도>로 가득한 ‘창(窓)’이 놓여 있다. 곁다리 하나. 자신을 보고자 했던 나르시스가 선택한 것은 거울이 아니라 ‘수면(水面)’이었다는 사실. 물은 속성상 빛을 통과시키기도 하지만 표면에서는 반사시키기도 한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물에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보고자 했던 나르시스의 수면(水面)은 유리‘창(窓)’ 이미지와 통한다. 그렇다면<Open Studio>의 창(窓)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고자 의자에 앉을/앉아 있었을 사람을 반사하기도 하며 혹은 ‘저 밖의 풍경’다른 세계를 보이게도 하는 ‘수면(水面)’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작업실은 열려 있었다(‘Open’Studio). 창(窓)을 통해 작업실(현재)은 저 밖의 풍경(과거)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창(窓)을 통해 저 밖의 풍경(과거)은 작업실(현재)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이러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사의 과정을 통해 창(窓)에서 반사되고 있는 작가의 상(像)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 밖의 풍경: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서 라인테이프와 세필이 만나다



‘저 밖의 풍경’을 따라 나오니 정작 보이는 것은 도시의 삭막함뿐이다. 도시, 그것도 서울. 이곳에는 환상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서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에게나, 서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나 마찬가지이다. 지방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진화해 가는 유기체적 생명체인 도시, 서울을 지향점으로 상정하고 동경하고 그곳에 환상의 그림자를 덮는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또한, 서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서울이 서구 대도시의 쌍생아로 불릴 만한 정치․경제․문화적층위를 점하고 있다는 허위적 환상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제도나 이데올로기의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 잠시 제쳐놓고 말이다.
김보민은 서울의 이러한 친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을 선(線)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전통적 동양화의 방법론에서 선은 ‘그리기’와 ‘쓰기’라는 이중적 의미의 층위를 점하고 있다. 한 폭의 그림은 선을 통해 드러나는 그림과 글씨의 조화를 통해 그 완성미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김보민이 형상화하고 있는 서울 풍경은 선의 ‘그리기’적 층위는 유지하고 있으나, 선의 ‘쓰기’적 층위는 ‘붙이기’로 대체되어 있다. 김보민은 라인 테이프의 투박함과 황량함을 이용하여 서울 풍경을 스케치한다. 규격화된 아파트와 고층 건물들, 그리고 그 빈틈을 메운 거리. 뿐만 아니라 개발의 현재 진행형을 알리는 탑형 크레인. 김보민의 시각에 들어온 서울의 이미지들은 라인 테이프 선을 빌려 미니멀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라인 테이프가 아니라, ‘붙이다’라는 행위이다. 외형의 형태를 따라 선을 붙인다는 것은 선을 경계로 안과 밖을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을 비움의 공간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즉 김보민이 형상화하고 있는 도시는 텅 빈 기표로서의 도시이다. 거리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차 하나,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도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은 사각의 천편일률적 모습을 하고 있다. 텅 빈 공간으로 비현실적 모습으로 묘사된 김보민의 서울은 서울의 환상을 들추어낸 이후의 서울의 모습이다. 이러한 서울의 묘사는 세필을 통해 모사하고 있는 ‘그리기’ 영역과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충만함으로 보이는 ‘그리기’의 영역은 사실은 이상향이지 않는가. <몽유도원1(2005)>에서 창 밖 너머로 보이는 그림 속의 그림인 안평대군의<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에 지나지 않는 공간이지 않았던가. 사실 그곳은 빈곳이며,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리기’의 반복을 통해 그 공간을 마치 실재처럼 구체화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기의 공간과 붙이기의 공간이 혼재하고 있는 도시. 이곳은 전통(몽유도원도, 인왕제색도)과 현대(고층 빌딩, 거리, 탑형 크레인), 세필과 라인 테이프 등 이분법적으로 감지되는 많은 요소가 공존하면서 비현실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통시적 시간 구조에 놓여 있는 서울의 모습이다. 그러나 김보민은 눈을 돌려 한강에 주목한다. 한강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유유히 서울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한강에는 과거적 표상물인 나룻배와 현대적 표상물인 배가 그곳에 동시대적 시간대에 흐르고 있다. 그것은 화면이 가로의 긴 형식을 취한 것과도 상통한다. 수평으로 긴 화폭의 구성은 관객의 시선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시선의 이동은 이분법적으로 보이는 관계들을 공시적 시선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다시 돌아와 어슷하게 놓인 의자에 앉아 거울과 창()을 보다

라인테이프와 세필을 들고 도시 곳곳에서 시간을 넘나들며 돌아다니던 김보민이 다시<Open Studio>로 돌아왔다. 그간 라인테이프로 대변되는 현재와 세필로 대변되는 전통의 조우는 사람들에게 매혹적이었다. 그러기에 ‘퓨전 동양화’니 ‘도시’니 해서 부르는 곳도 많았다. 전시장뿐만 아니라 미술․패션잡지, 일간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해 보건대, 그가 ‘저 밖의 풍경’에 매료되어 박차고 나간 의자에 앉을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의자에 앉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의 방법론이 스타일처럼 굳어 버리기 이전이었기에 현명했다.
김보민은 이번 전시에서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바라봤던 ‘저 밖의 풍경’에서 지시대명사 ‘저’를 떼어 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저’에는 시간(과거)과 공간의 의미가 모두 함축되어 있다. 그러기에 ‘저’를 떼어 자신의 삶의 주변으로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원경에서 전체를 조망하던 시선은 근경으로 바뀌면서 전체적 스타일(전통과 현대의 조우)에 의존하던 벗어나 ‘지금-여기’를 볼 수 있는 시선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간의 작업에서 보이던 전통과 현대를 반드시 마주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은 매혹적이나 단순하고 강박적인 만남은 그저 ‘만남’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점에서<이주단지(2006)>, <송정(2006)>, <긁는 개(2006)>, <새들(2006)>은 주목을 요한다.
기존의 작업과 유사해 보이는 실내 공간 역시 삶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그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사물들은 어지럽게 널려 있다. 냉장고는 열려 있고, 청소기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고, 옷장은 열려 있으며, 욕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여기까지는 이전 작업과 유사하다. 그러나<주방(2006)>의 창(窓)을 통해 들어온 세계는 ‘지금-여기’에서 보이는 외부의 풍경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이전 작업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일상과 가상현실의 미묘한 어긋남과 기이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작가노트)”는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두 관계의 충돌을 단지 전통과 현대의 맥락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역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Open Studio>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서 했던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덧붙여 말하자면 가끔 항상 열려 있는<Open Studio>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보기를 바란다. 지금처럼.

이대범 /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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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jsqls 김보민 작가님의 이 표현 기법..마치 만화를 보는 듯 하네요. 2010.09.29 14: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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