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색채와 다소 모호하게 표현된 노충현의 회화에는 인간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물이 주인공이 된 풍경들이 공간 그 자체로 건조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동물원, 한강시민공원와 같이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소를 화면에 담아낸다. 그러나 그 공간은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부재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원래의 기능이 사라진 채 공간 그 자체의 모습으로만 드러난다. 그리고 공간이든 사물이든 햇빛에 따른 명암의 대비를 약화시켜 그림자가 없거나 시간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는 방법으로 인해 필요이상으로 대상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접근방법을 통해서 지극히 평범하지만 메마른 모하함을 지닌 공간을 심리적 표상으로 재해석 하고 있는 것이다.